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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28. 2023

엄마의 원망, 그리고 나의 Daddy issue

토마토 주키니 파스타

"널 임신했을 때 회가 그렇게도 간절히 먹고 싶은거야. 아빠에게 회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아빠는 나를 시장엘 데려갔어. 몸이 무거운 나를 데리고 시장을 두바퀴나 돌고 나더니 회는 사주지 않은 채 그냥 집으로 다시 데려갔단다."


"널 임신했을 때 집안을 청소하다가 항아리 안에서 아빠의 옛 연인이 아빠에게 보냈던 편지를 발견했었다. 아빠에게 그 편지를 내밀자마자 아빠는 그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버리더구나. 편지의 내용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하지만 그 때는 엄마가 이미 널 임신한 상태였어서 어쩔 수 없었다."


"결혼 전에 아빠의 사촌이 아빠가 일하고 계셨던 병원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마침 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지라 함께 식사를 하러 갔어. 그런데 아빠가 엄마는 옆의 테이블에 따로 혼자 앉히고 아빠는 사촌과 합석을 하는 거 있지. 엄마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었다."


결혼 전의 일들부터 시작하는 엄마의 아빠에 대한 원망 리스트는 아빠와 함께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콘텐츠들로 묵직해졌다. 그 리스트에는 지우개가 없었다. 한 번 리스트에 올라간 아이템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무한 반복되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약 30년의 시간 동안 엄마의 원망 리스트를 수백번 (혹은 수천번) 반복해서 들은 나는 엄마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상처받아 아프다고 말하는 엄마를 안쓰럽게 여겼고, 위로해 주고 싶었고, 엄마의 원망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며 같이 아파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아빠를 미워하고 무시했다.


"아빠는 엄마를 슬프고 아프게 만든 사람이다.

아빠는 능력없는 사람이다."


아빠를 째려보는 이 시각이 나의 내면을 발기발기 찢어놓는 사시미칼 같은 생각이었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부모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정신없이 밀려드는 혼란과 죄책감과 후회가 너무 고통스러워 몸부림쳤다. 엄마가 했던 원망들이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는 했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놀랍게도, 아빠가 정말로 "내가 당신을 아프게 해야겠소." 라는 의도로 했던 일이나 말은 하나도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경멸이나 미움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 아니셨다. 분별없이 아빠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아빠는 패밀리맨이셨다. 일평생 엄마, 나, 그리고 동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며 살다가 떠나셨다.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환자들을 대하셨고 (과도한 검사를 하시지 않았다.), 훌륭한 수술 실력을 가지고 계셨다. 아빠는 오랫동안 인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셨었는데, 아빠가 인천을 떠나고 나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아빠에게 수술받고 싶다며 아빠를 찾는 환자분들이 계셨다. 자신에게 악의적으로 잘못했던 이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품으셨다. 엄마가 몇 번이나 사기를 당해 아빠가 성실히 번 돈을 다 잃어도 그런 엄마를 원망하지 않으셨다. 나의 아빠는 마음판이 순하고 고운 분이셨다.


그러나 엄마의 원망은 곧 나의 원망이었기에,  

아빠는가 평생 나를 사랑해 주셨어도, 나는 내내 아빠를 밀어냈다.

좋은 아빠가 되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빠가 항상 나의 곁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지해 주고 계셨어도, 내 안에 아빠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빠에게 끝없는 거절감을 주고, 아주 가끔은 나로 인해 비참한 기분까지 느끼도록 만들어도 나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빠의 마음이 소중하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아빠의 마음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는데,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원망을 넘어서, 아빠가 나에게 어떠셨었는지가 보이고 느껴졌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잘못 대했는지도 그제서야 보였다. 나는 나를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또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나의 뿌리인 아빠를 어떻게 느끼는가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빠를 별볼일 없고 답답한 사람으로 보는 내가 자존감이 높을 리 없었다. 낮은 자존감은 내가 맺는 모든 관계들과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아빠의 가장 큰 약점들 중 하나를 꼽는다면, 판단력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처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거나 바람직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걸 어려워하셨다. 나도, 아빠를 닮아, 좀 그렇다.


아빠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빠가 했던 행동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30년을 함께해온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엄마를 향한 진심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말 몰랐을까 - 지금의 나로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혹시 엄마는... 그냥 원망 자체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을 피해자로 놓는 게 은신처에 있는 것 같은 일종의 편안함을 주었던 건 아닐까.

아빠를 가해자로 놓고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빠를 엄마의 남자로 지켜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빠의 약점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걸까. 그랬던 거라면 엄마는 아빠의 의사 타이틀만 좋아하고 아빠에 대한 사랑은 없었던 걸까.

...... 잘 모르겠다.


엄마는 아빠에게 나쁘다고 부들부들 분노하는 대신 아빠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남편에게 사랑을 주는 모습을 나와 동생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다.

내가 아빠의 사랑을 잘 받아먹고 내적으로 무럭무럭 커가도록 해줄 수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패면서 키운 것보다도, 나에게 아빠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으며 키운 것이 나에게는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망은 없다. 엄마는 그게 나에게 그토록 상처가 되는 일인 줄 알지 못했고,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엄마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나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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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업상 미팅이 있어 외부에 나갔다.

오늘 만든 파스타는 오롯이 나를 위한 음식이다.


<주키니 토마토 파스타>

토마토를 썰어서 올리브유를 발라 오븐에 익힌다. 180도에서 40분 정도? 익히는 시간은 토마토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꼬들해 지면 된 것이다.

주키니 호박을 면처럼 얇게 썰어서 올리브유에 익힌 후 따로 그릇에 덜어 놓는다.

올리브유에 다진 마늘 충분한 양을 익힌다.

익힌 면을 마늘과 섞고 면수를 부어가면서 마늘과 면이 잘 어우러지도록 한다.

잘게 다진 엔초비 3조각 정도를 섞어준다.

익혀놓은 주키니 호박을 섞는다.

익힌 토마토를 섞는다.

후추를 뿌려준다.


오호라... 단백한 풍미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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