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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27. 2023

모태솔로였는데요, 사랑을 배우는 중이에요

휴지 커버

나는 서른살까지 모태솔로였다.  

사람과 친해지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이성과의 관계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건지 전혀 몰랐다.


어릴 때 잠에서 깨면 가끔 부엌 쪽에서 아빠와 엄마가 말씀을 나누시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아빠가 저렇게 남성의 느낌으로 말씀을 하실 때가 있었나? 엄마 목소리가 저렇게 예쁘고 여성스러웠었나? 대화의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두 분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다정한 연인의 느낌이 좋아서 잠시 그대로 누운채 그 소리를 듣고 있곤 했다.

그런데 그게 거의 다였던 것 같다. 내가 두 분의 모습에서 연인의 감성을 느꼈던 건.

둘이서만 있을 때는 연인이었을지 몰라도 나와 동생과 함께할 때는 연인이라기보다 자식을 같이 키우며 삶을 만들어 가는 동지의 느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두 분이서 오붓하게 데이트 하는 경우 (또는 하고싶어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고 (나와 동생 앞에서는 안 한 걸 수도 있지만) 두 분이 달콤한 말을 주고 받는 경우도 없었다.

아빠는 버는 돈을 모두 엄마 손에 쥐어주기는 했지만, 엄마에게 꽃이나 선물을 주는 등의 로맨틱한 제스처를 취한 적은 드물었다.

엄마는 아빠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시기 전에 낮잠을 잠시 자고 일어나 뽀얘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긴 했지만, 아빠를 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사랑하는 내 남자'가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고 등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딱 하나의 꿈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남자와 뜨겁게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아빠도 엄마도 가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가족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시는 분들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미래의 내 남편과 가족원이기 이전에 '연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부모님의 케이스가 별로 와닿지 않았고 사회성조차 많이 떨어져서 주변인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사는지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배웠다.


1. 사랑은 외모로 하는 거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순간 남자 주인공의 영혼이 빨려 들어간다. 대부분의 사랑 스토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아 그렇구나. 일단 확 예뻐야 되는 거구나.



2. 여자는 캐릭터가 분명해야 된다.


로맨스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들을 보면 몇 가지 종류가 있다.

   1) 도도녀

   2) 4차원녀

   3) 기쎈녀

   4) 애교녀

등등.


도도녀의 캐릭터를 보면 함부로 눈길을 주지도 않고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말도 웃음도 눈길도 헤픈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20대 내내 좀 괜찮다 싶은 이성이 있다 싶으면 바로 눈을 내리깔고 신비주의 모드를 취했다. 내가 신비주의 모드를 취하고 있는 줄을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영화에서 본 모습을 믿고 꿋꿋하게 신비주의를 계속했다. 대부분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 인식조차 못한 채 지나쳐 갔다.


백 번 신비주의 모드를 취하면 그 중에 한 번 정도는 괜찮다 싶은 이성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2)번 4차원녀로 돌입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처럼 독특해야 남자의 마음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도 나를 지나쳐 갔다. 좀 이상한가 생각했는지.


4차원 모드로 돌변했는데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제 3)번 기쎈녀가 될 차례였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면 평범한 여주인공이 화를 내며 달려가서 잘생기고 가진 것 많은 남자 주인공의 따귀를 때린 순간 남자는 여자한테 반해버린다. 아 남자의 마음은 이렇게 얻는 거구나. 따귀까지는 아니어도, 화도 잘 내고 기가 쎄야 남자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4)번 애교녀는 애초에 나에게 무리였다.


음 그렇게 남자를 다아아아 내쫓아 버렸다. 



3. 케미를 느끼면 (반하면), 그건 사랑하는 거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반하다' 와 '사랑하다'의 개념이 거의 같다.

   1) 남자가 여자에게 반한다.

   2) 여자는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고, 남자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목숨까지도.

내가 접했던 로맨스 드라마는 거의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는 반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순서의 차이일 뿐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 9년차인 지금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그 때와는 많이 다르다.


1.  사랑은 외모로 하는 거다.

---> 내가 지금의 남편과 경험해 본 사랑은, 외모 이전에,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상대의 외모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은 어디까지나 마음이었다.

상대를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

상대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

둘이서 같이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마음... 이런 마음이 사랑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아름다운 신체를 즐기고 소비하겠다는 의도와는 많이 달랐다.


2. 여자는 캐릭터가 분명해야 된다.

---> 지금은, 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건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토대였다. 그 토대가 있어야 남편도 나를 알아가는 기쁨을 느껴갈 수 있었다. 남편이 사랑하는 건 나 라는 사람이지, 드라마에 나왔던 어느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편안하게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수록 오히려 남편에게 더욱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점차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억지로 톡톡 튀는 성격을 구현해 낸다고 해서 남편이 나를 매력적이라고 느끼지를 않았다.


남자건 여자건, '이런 캐릭터가 매력있는 캐릭터다'라는 명제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3. 케미를 느끼면, 그건 사랑하는 거다.

---> 반하는 것(케미를 느끼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전남편이 나에게 반했다고 했을 때 나는 그걸 사랑이라 여겼고, 연인과 사랑하며 살겠다던 나의 꿈이 이제야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반했다는 그 사람을 놓기가 싫었다. 영화에서 그랬듯이, 나에게 반한 감정(당시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이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남편은 '반했다' 와 '사랑한다'의 차이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우리의 관계를 시작할 때 나에게 '사랑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분명한 의사를 물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미칠듯이 끌리고 있지만, 이 감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반했을 뿐이에요.

사랑은 우리 둘이서 만들어 가는 거에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케미를 느낄 수 있지만, 둘이서 만들어간 사랑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 사랑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당신도 나와 함께 사랑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입니까.

우리가 같은 마음입니까."


그 날에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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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옷 만들기> 프로젝트의 걸음마를 어떻게 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휴지 커버를 만들었다.

휴지의 모습이 우리집 거실과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쉬웠는데, 그 부분을 개선도 할 겸,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봉제가위도 없이, 그냥 종이 자르는 가위로 둘둘 잘라서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처음 하는 거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할 것도 많고, 바느질도 잘못 해서 몇 번이나 뜯고 다시 하느라, 하루 종일이 걸렸다.


자세히 보면 수줍다. 그래도 언뜻 보면 그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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