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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22. 2023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통밀빵

일단 5년 동안 살았던 제주도를 떠나기로 결정하자,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


남편과 나는 화이트보드를 거실 한가운데로 끌어온 후 와인 한 병을 땄다. 향기로운 와인을 한 잔씩 손에 들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회의 시작이다.



살 곳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맥도 사업지도 아닌, 바로 공기의 질이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항시 높았던 상하이에 살았을 때 공기의 질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금세 뭉탱이 먼지가 온 집안에 굴러다녔다. 몸이 찌뿌둥 해서 밖에 나가 조깅을 30분 하고 들어오면 목이 칼칼해지고 속이 더부룩해져서 안 하느니만 못했다.

제주도에 살면서는 피톤치트의 맛을 알아버렸다. 피톤치트를 듬뿍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 집에서 가까웠으면 했고, 창문을 열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피톤치트가 들어왔으면 했다.


두번째는 습도였다. 상하이에서 살다가 제주도에 살면서, 이제는 정말로 습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특히 남편은 체질상 습도를 많이 힘들어한다. 날씨가 습해도 힘들어 하고, 입는 옷이 빠삭하게 마른 상태가 아니어도 힘겨워 한다. 습한 제주도에서 옷을 빠삭하게 관리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빨래를 하다 하다 눈물이 다 나왔다.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세번째로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대형 병원과의 근접성이다.

제주도에 살던 때의 일이다. 어느날 밤, 곤히 잠들어 있던 나를 남편이 깨웠다.

"일어나봐. 오빠가 배 아래쪽이 심하게 아파... 지금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침대에서 튕겨나왔다. 말도 행동도 느릿느릿한 내가 그 날은 30초만에 옷을 다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밤운전은 보통 남편이 담당해 왔지만, 그 날은 남편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은 제주도 시내와는 많이 떨어져 있는 제주도 서남쪽 이었다. 네비에 병원 응급실을 찍어보니, 교통량이 거의 없는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50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남편이 저토록 아파하는 모습이 처음이라 너무 놀라고, 처음 해보는 밤운전이라 안 그래도 무서운데, 피곤했는지 그날따라 빛이란 빛은 다 번져 보여서 뭐가 뭔지 분간이 잘 안갔다. 살면서 가장 길게 느껴졌던 50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해보니 신장결석이었다.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고 노곤해진 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과 이야기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우리 앞으로는 응급실에서 너무 떨어진 곳에서는 살지 말자고.


네번째는 도시 문화권이다. 제주도에 살면서 우리의 욕구에 대해 좀 더 깨닫게 되었다. 백화점, 코스트코, 그 외 특색있는 제품들을 취급하는 가게들, 전시, 공연, 그 외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흥미로운 창조물들이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모두 다르겠는데, 우리 부부는 자연도 무척 좋아하지만, 그보다 도시 문명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자연에서 살면서 도시 문명권으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 도시에 살면서 자연으로 여행을 가는 편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대도시의 도심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대도시에서 충분히 가까운 곳에 살면서, 대도시에 가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부담없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섯번째는 좋은 도서관이 가까우면 좋겠다는 거였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책을 아주 좋아한다. 남편은 주로 논픽션을 읽고, 나는 주로 소설이나 에세이들을 펼쳐든다. 높은 에너지의 영성 도서들은 우리 둘 모두 좋아해서 같이 읽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를 즐긴다. 삶의 방향성에 의문이 들거나,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창조적인 생각들을 접하고 싶은 때 책들을 찾아보게 된다.

제주도에는 한라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시설은 아주 좋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주기적으로 다니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아예 한라도서관 옆으로 이사를 갈지를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집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


오늘은 우리 부부가 거의 매일 아침 즐기는 메뉴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 통밀빵 >


발효를 여러차례 시켜야 하는 빵은 만들기가 부담스럽다 보니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던 차에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참 맛있는 레시피를 만나게 되었다.


물 120g 을 따뜻하게 (그러나 뜨겁지는 않게) 데운 후 메이플 시럽 20g 과 드라이 이스트 5~6g 을 잘 섞어준다.

5분쯤 지나면 물 위에 하얀 거품이 뒤덮인다.

통밀 125g 과 소금 적당량을 섞어서 잘 섞어준 후 올리브유를 두른 파운드틀이나 식빵틀에 넣어준다.

20분 후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 정도 익힌다.

겉면이 옅은 브라운 색을 띄면 다 익은 것이다.


통밀빵에 샐러드, 그리고 커피.

우리 부부가 질리지 않고 매일같이 먹고 있는 아침 식사다.


* 통밀빵 레시피는 유튜브 채널 <요리하는 유리> 의 '우주최강 맛있는 초간단 비건 통밀빵'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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