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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21. 2023

그렇게 우리는 제주를 떠났다

굴전

힐링을 하자.

힐링을 하려면 제주로 가자.

그렇게 간단한 생각 하나로 갔던 제주도에서 5년 정도를 살았다.


첫 일년 정도는 참 좋았다.  

제주도의 하늘은 굉장히 성실한 천재 미술가의 캔버스 같았다. 매일같이 새로운 아름다움이 머리 위로 펼쳐졌다. 저녁마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석양을 마음에 담았다. 운전을 하다가도 하늘의 아름다움이 도를 넘어선다 싶어질 때면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잠시 서서 하늘을 머금곤 했다.

이런저런 오름에도 올라보고, 한라산 코스들도 올라보고,

둘레길도 걸어보고, 바닷가도 구경하고,

운치있다는 카페들과 커피 맛있다는 카페들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가 느껴보고,

추사 김정희 박물관에 가서 힘있는 글씨체를 보며 감동도 하고,

비자림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교감도 하고,

당근이 많이 난다는 제주 동쪽 구좌읍에 당근 케잌도 먹으러 다녔다.

곶자왈 (제주도의 숲) 이 너무 좋아서 그 옆으로 아예 이사를 가서는 매일같이 그 곳을 한바퀴씩 걸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관광객 모드에서 차츰 현지인 모드로 변환하기 시작하면서, 이 곳이 우리가 정말 살고 싶어하는 곳인가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상하이에 살면서 습한 기후에 이미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특히 상하이의 겨울은 습기를 머금은 추위라서, 잠깐 여행 정도 다녀올 땐 별로 춥다는 느낌을 받지 않지만, 그 곳에서 머물며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냉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온도가 0도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도, 건조한 추위보다 훨씬 힘겹다. 몸에 열이 원체 많은 사람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몸이 냉한 사람들은 그런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서 부황이나 마사지를 달고 살면서 몸 안에 들어오는 습기를 빼내기 바쁘다.

제주도의 습한 겨울은 상하이의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빨래를 아무리 말려도 축축해서 결국 건조기를 구입했다.


습기 때문에, 잠시 마음을 놓고 있으면 집안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났다. 특히 화장실에 피어나는 곰팡이와는 거의 장기 전쟁 수준이었다. 청소를 해놓아도 뒤돌아서면 변기와 벽면에 곰팡이가 또다시 나타났다.

일 년 내내 제습기 세 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매일 몇 번씩 물을 비우고, 집 안과 옷들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도 은근 피곤한 일이다. 특히 장마 기간에 집을 비우고 여행을 다녀오면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걸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그 기간에는 여행도 피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바로 앞의 집에 대해 로망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바닷가 앞의 집은 섬 안쪽보다 더 습해서 살기 힘들다. 빨래를 널어 놓으면 바다의 습기와 냄새를 머금는다.


두번째 이슈는 바람이었다.

바람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말이 좀 생소할 수 있을 듯 하다.

제주도에는 세가지가 많다는 말이 있다 - 돌, 바람, 여자. 제주도에 가서 살아보니 정말 그 세가지가 많았다.

제주도에 살았던 첫 3-4년 동안은 바람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5년째에 들어서자 바람 좀 그만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계속 이렇게 바람을 맞는 거를 힘들어 하는구나.

아늑한 집안에 있다가 잠깐 나와서 바람을 느끼다 다시 들어가면 시원하고 좋지만, 바람 속에서 몇 시간을 서 있으면 굉장히 지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잠깐 여행 가서 바람 맞고 오면 괜찮지만, 계속 바람을 맞으면서 사는 건 좀 힘들다. 추운 바람이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만, 특별히 춥지 않아도 그렇다.


기후 외에도 제주도에 계속 살기가 꺼려지는 이유들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도심의 문명을 좋아한다.

상하이에 살 때 우리 부부는 예쁘게 차려입고 상하이 도심에 있는 이태리 식당에 가서 배불뚝이 이태리인 쉐프가 만든 훌륭한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이기도 했고, 프랑스 식당에 가서 멋들어진 스트라이프 무늬의 셔츠를 입은 프랑스인 쉐프가 만든 크레페를 먹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는 특히 즐길 것들이 많았다. 맥주 한잔을 해도 맥주와 함께 그 주변의 운치를 같이 들이마시는 느낌이었다. 보세 옷가게들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지금도 우리의 옷장에는 그 곳에서 산 옷들이 있다. 그 곳의 마트에는 수입 제품들이 많아서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 우리에게 제주도에서의 삶은 조금 갑갑했다. 우리가 상하이에서 즐겼던 문화적인 요소들이 제주도에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여러 카페들을 다니며 커피&디저트와 함께 운치를 느껴보려 했지만, 어쩐지 카페들만으로는 우리의 문화적 허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서울 가는 날이 며칠 남았는지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살았다. 한달이나 두달에 한 번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가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백화점에 진열된 예쁜 것들을 샅샅이 눈에 담고, 그 중 정말 예쁘다 싶은 것들은 손에도 담고, 핫한 음식점에도 가고, 운치있는 거리도 걸어다니다가, 대형 서점에도 가서 놀이 동산 간 거 마냥 설레여 하고는, 아쉬움을 남겨둔 채 돌아오곤 했다.


흔히 제주도가 서울에서 한 시간 비행이니 가까운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녀보면 그렇지가 않다.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 비행 시간,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에서 나오는 시간, 김포공항에서 서울의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을 따져보면 적어도 네다섯 시간은 잡아야 했다.


기본적인 생활비도 내륙보다 많이 들었다.

제주도는 섬이라서 그 곳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물을 건너 와야 한다. 그 건너는 값은 우리의 생활비 속에 모두 들어 있었다. 물을 건너오지 않는 물건들도 많아서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고, 온라인으로 배달시키는 물건마다 배송비를 몇 천원씩 더 지불해야 했다.

거기다 관광지라는 이유로 외식값도 비교적 쎘다.


제주도에서 산다고 하면 주택이나 타운하우스에서 사는 모습을 꿈꾸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비추다. 서울에 있는 타운 하우스들과는 질적으로 좀 다른 것 같다. 제주도에는 견고하게 지은 집이 많지가 않았다. 샷시가 좋지 않아 웃풍이 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견고하게 잘 지은 집들을 보기는 했지만 굉장히 소수였기 때문에, 좀 잘 지었다 싶으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내륙에서는 보통 집값에 대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기준점들이 있다. 어느 위치의 어느 정도 크기에 몇 층이면 얼마 하는 식으로. 제주도에서는, 완전히 도심 한가운데 부분의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그런 기준점들이 없는 것 같았다. 집값들이 모두 제각각인 듯 해서, 집을 구할 때마다 '이 가격은 좀 뜬금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제주도에 산 지 5년이 다 되어갈 무렵, 남편이 부부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 제주도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 > 였다.

우리의 마음은 분명했다.


"여기서 계속 살고 싶지 않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우리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


제주도에 살 때 겨울만 되면 즐겨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굴전" 이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우연히 굴전을 독특하게 만드는 레시피를 보고는 한번 따라해 보았는데, 남편의 반응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신이 나서 정말로 자주 만들어 먹었다. 이 굴전은 와인과도 잘 어울려서, '오늘은 기분을 좀 내면서 식사하고 싶다' 할 때도 괜찮은 메뉴였다.


제주도를 생각하던 오늘은 오랜만에 그 곳에서 먹었던 굴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전 반죽을 만든다.

밀가루와 감자전과 옥수수전을 2:1:1 의 비율로 섞는다.

물을 꾸덕하지 않을 정도로 섞어준다. 숟가락으로 떴다가 부었을 때 또르르 떨어질 정도. 물을 처음에는 조금만 부어서 잘 섞어준 다음에, 나머지 물을 조금 더 넣어주는 것이 좋다.

전 반죽은 몇 시간 먼저 만들어서 냉장고에 차갑게 숙성시켜 놓았다가 요리하면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굴에 밀가루를 묻혀서 잠시 둔 다음 살살 헹구어준다. 나는 보통 대여섯 번 헹구어 주는 것 같다.

씻은 굴을 채반 위에 놓아 두어서 물기를 빼준다.


굴에 밀가루를 묻힌다.

달걀을 풀어 놓았다가 밀가루를 묻힌 굴을 담근다.


프라이펜에 기름을 두르고 적당히 달군 다음, 전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프라이펜 위에 대강 얼기설기 부어 익힌다.

2-3분 기다려서 전 반죽이 약간 노릇하다 싶게 익으면 그 위로 달걀옷을 입힌 굴을 얹어준다. 굴은 1분 정도만 익혀도 되는 것 같다. 오래 익히면 맛이 없다.

전을 뒤집어 준 후 잠시만 두었다가 바로 꺼낸다.



*굴전 레시피는 <happycooking120180> 채널의 '튀김처럼 바삭한 굴전 만들기' 영상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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