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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19. 2023

왕따 반장

굴국

나의 청소년기에는 웃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학교에 가면 나는 왕따 반장이었다.


공부를 잘 해서 반장으로 뽑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리더십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감투만 좋았지 좋은 반장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친화력에 있어서 나는 그 누구보다 떨어졌다. 친구를 사귀는 법을 잘 몰랐다. (지금도 서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도 몰랐고, 어떻게 대화를 하면 좋을지도 몰랐다. 다른 학생들을 보면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금새 친해지는 것 같았는데, 나는 몇 마디 나누고 나면 할 얘기가 없어져서 친해지기는 커녕 불편해졌다. 나와 친해져 보려고 다가왔던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심사가 너무 달라 결국엔 흐지부지 되었다. 그들이 방과 후에 같이 다니는 분식집이나 만화방이나 노래방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그 부분에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내가 전날 밤 자기 전에 보았던 할리우드 영화나 조정래 님의 장편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은 주눅들어 하기 일쑤였다. 나는 점점 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을 아꼈다.


당시 그  지역에서 우리집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편이었고, 엄마가 굉장한 자식 바라기였고, 나의 학교 성적이 좋았고, 내가 이런저런 경시대회에서 자주 상을 타왔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나를 특별대우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학생들은 10분만 지각을 해도 벌을 받았지만, 나는 몇 시간 지각을 해도 '그랬구나' 하고 혼을 내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이 나를 고깝게 여긴 것은 당연했다.

나 자신 조차도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점차적으로 왕따가 되었다.

왠지 우러러 보게 되면서도, 어쩐지 되게 싫은 사람.


왕따가 반장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관계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할 수가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숙제 검사를 하는 일은 할 수 있었다. 숙제를 하면 반장이 확인을 하고 공책에 싸인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학생들이 나의 싸인을 받고 싶어서 줄을 섰던 것이다. 부반장의 싸인을 받아도 된다고 해도, 다들 나의 싸인을 받고 싶어했다. 싸인을 못 받았던 학생은, 얼른 숙제를 하고는, 화장실 가는 나를 쫓아와서 공책을 내밀며 싸인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 때는 학생들의 마음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맞나?


지금 생각하면 저들이 나를 왕따시켰다는 게 본질이 아니었다.

내가 저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저들이 나에게 마음을 닫기 이전에, 내가 나의 특별함을 지키기 위해 저들에게 마음을 닫았다.

반장이라는 역할조차 내가 더 특별해지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나의 특별함을 위해 다른 이들을 이용한 거였다.


이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다. 아니었던 거다.


======


찬바람이 불자 굴이 통통해졌다.

우리 부부는 굴로 굴전을 해먹는 걸 좋아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좀 다르게 굴국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국물이 정말 시원했다.

맛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시큰둥했던 남편이 큰 대접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러고는 몸이 뜨거워져서 겉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는 한동안 나시만 입고 있었다.


< 굴국 >


전날 저녁, 약간의 다시마를 물에 담가 냉장고에서 불린다.


굴은 오래 끓이면 질겨질 수 있으니 굴을 넣기 전에 국물과 나머지 재료들을 준비해 놓는 게 좋다.

무를 적당히 썰어서 다시마 불린 물에 다시마와 같이 넣고 멸치액젓과 새우젓과 소금을 조금씩 넣고 끓여서 익힌다. (굴도 간간하다는 걸 고려해서, 지금은 70% 정도의 간만 하는 것으로 한다.)

다시마는 물이 끓은 후 10분쯤 지나면 건져낸다.

무가 거의 다 익으면 적당히 채썬 파와 적당히 썰은 애호박을 넣고 같이 끓여둔다.


국은 이 정도 준비해 놓고 먹기 직전에 넣을 재료들을 준비해 놓는다.

- 다진 마늘 많지 않게 (2인분 기준 반큰술 정도), 다진 청량고추 (취향껏), 3cm 정도로 잘라놓은 부추, 식초


굴을 밀가루에 범벅한 후 잠시 놓아 두었다가 살살 씻어준다. 절대 빡빡 문지르지면 안된다. 굴이 터지지 않도록 손가락에 힘을 빼고 살살 헹궈준다. 생각보다 이물질이 많이 나와서 나는 여섯번 정도 헹군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채반에 올려 물기를 빼준다.

달걀을 풀어서 물기가 빠진 굴을 넣어둔다.


굴은 2분 정도만 끓인다고 생각하고, 먹기 5분 전에 요리를 시작한다.

준비해둔 국물을 다시 끓인다.

다진 마늘과 청량 고추를 넣고,

한 소끔 끓으면 굴을 달걀물과 함께 떠 넣는다.

2분 정도 지난 후 마지막 간을 본다. 간이 모자라면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조금씩 더 넣어준다.

그리고 부추를 넣고 불을 끈다.

불 끄자마자 식초 반큰술이나 한큰술 정도 넣어준다.



* 굴국 레시피는 유튜브 <빅마마 이혜정> 채널의 '요즘같이 추운날 뜨끈하고 건강 가득한 굴국 어떠세요?' 편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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