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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24. 2023

사랑이 고통이 될 때

새우 토마토 파스타

* 이 글에는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스포일러가 아주아주 살짝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동화 속 결혼의 마무리는 대개 이랬다. 신데렐라도, 백설공주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모두 멋진 왕자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동화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안에 어떤 믿음 체계를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으레 나도 결혼을 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될거야 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설레이는 핑크빛으로 결혼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이 '행복하게' 에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걸 자주 간과하는 것 같다. 남자가 생각하는 행복과 여자가 생각하는 행복이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이 같지 않을 때, 결혼은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보면서 서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스토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레니가 원하는 행복의 모습에서 펠리시아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행복의 모습으로 레니를 억지로 끌어올 수도 없었다. 레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도 없었다. 분노와 슬픔과 고통 속에서 끝없이 인내하는 수밖에. 결국 펠리시아는 사랑하는 레니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면서 레니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처음부터 슬픔이 예정되었던 결혼이었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스틸컷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싱그러운 꽃들 가운데에서 설렘 가득한 결혼 서약을 한 후, 결혼생활이라는 상자가 서서히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그 결혼이 슬픔으로 가는 열차인지 기쁨으로 가는 열차인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막상 결혼을 해보기 전에는, 자신이 그리는 행복이 어떤 그림인지에 대해 자신조차 애매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그리는 행복의 그림이 상대와 같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상대의 그림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살아갈 생각이라.


서로 다른 행복의 그림을 하나로 만들어 가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에는 굉장한 노력이 든다.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옳다고 붙들던 신념을 내려놓는 것도, 내가 보아온 살림의 기준과는 다른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다. 그래서 내가 힘들여 변화하기보다는 차라리 상대가 나로 인해 아파하며 살아가는 걸 은연 중에 선택하게 된다.


나의 전 결혼이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람이 그렸던 행복한 삶과 내가 그렸던 행복한 삶은 겹치는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그 사람의 그림 한가운데에는 자신의 엄마가 있었지만, 나의 그림에 그 분과 한 집에 사는 모습은 없었다. 그 사람의 그림은 맞벌이였지만, 나는 현모양처를 그리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청소가 중요했지만, 나는 청소가 삶의 우선순위권에는 없었다.

겹치는 부분이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도 나도, 상대를 위해 자신의 그림을 변화해 보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 너무나 완고한 나머지 사랑이 비집고 들 틈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걸 몰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마음 한켠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끌림의 감정만을 믿고 나 또한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손에 쥔 채 슬픔이 예정된 결혼 열차에 올라탔다.


결혼한지 몇 달 안 되어 크게 싸웠던 어느 날,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집 밖으로 뛰쳐 나왔다. 내 뒤로 문이 쾅! 닫혔다. 그 때는 그 길로 이혼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도, 쾅 소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나중에 보니, 슬픔으로 가는 열차에서 내렸던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저 두 사람에게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정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행복의 그림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또 필요로 하고 있어 함께하기를 원했다. 사랑은 고통이 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무작정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까.


펠리시아가 레니에게 말한다.

If summer doesn't sing in you, then nothing sings in you.

And if nothing sings in you, then you can't make music.

(만약 여름이 당신 안에서 노래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당신 안에서 노래하지 않을 거에요.

그리고 아무것도 당신 안에서 노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음악을 만들 수 없을 거에요.)


레니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건 펠리시아의 사랑이 레니 안에서 여름처럼 노래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녀의 기쁨과 고통과 사랑 그 모두가 레니 안에 녹아들어 그만의 음악으로 창조된 건 아닐까.

그런 거라면 사랑의 고통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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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에서 새우를 사온 기념으로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니... 기분 좋은 감동이 밀려와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마음이 빵빵해졌다.


새우 껍데기와 머리를 올리브유에 볶다가 물을 붓고 끓여서 육수를 낸다.


프라이펜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붓고 약불에서 편으로 썬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익혀서 향을 내게 한다.

마늘이 노릿노릿하게 익으면 페퍼론치노와 함께 덜어내고 새우살을 익힌다.

새우살이 익으면 덜어내고 다진 양파와 다진 당근과 다진 샐러리를 볶는다. 양파와 당근과 샐러리의 비율은 3:1:1 정도가 좋은 것 같다. 다진 엔쵸비를 한 사람당 3조각 정도의 양으로 같이 볶아준다. 월계수잎도 같이 볶아준다.

양파가 다 익으면 토마토 소스를 몇큰술 넣고 같이 볶은 후 화이트와인을 좀 넣고 계속 볶아준다.

새우 머리 육수를 붓고 졸여준다.

육수가 거의 다 졸아들면 익힌 면과 면수를 넣고 같이 볶아준다.

아까 덜어둔 마늘과 새우살과 새우머리를 다시 넣고 같이 비벼준다.

마지막으로 다진 파슬리를 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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