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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25. 2023

살고 싶은 집을 찾아 전국을 여행하다

내 식대로 제육볶음

* 2023.12.22 에 발행한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에 이은 다음편입니다.


남편과 나는 대강 살게 되는 곳에서 살지 말고, "정말로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자"는 생각으로 집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조건들을 정리하면 대략 아래와 같았다.


1. 미세먼지 적은 곳

2. 피톤치트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곳 (산이 가까우면 좋겠다)

3. 습도가 낮은 곳

4. 대형 병원과 가까운 곳

5. 대도시(서울이나 부산)에 쉽게 갈 수 있는 곳

6. 좋은 도서관이 있는 곳


우리 부부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채워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우리 부부는 며칠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기상청 자료들과 미세먼지 관련 자료들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1. 미세먼지 적은 곳

일단, 미세먼지는 서울 경기 지역과 부산이 있는 남동쪽 지역에 많았다. 서울이 가장 심할 것 같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천안이나 청주 부근의 경기 지역이 가장 안 좋은 것 같았다. 그 쪽에 공단들을 많이 지어서 그런가보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는 큰 산맥이 어느 정도 막아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태백산맥 오른편이나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아래편이 미세먼지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다.

원주는 강원도라 괜찮을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산이 동쪽에 있어서, 중국에서 밀려온 미세먼지가 산에 막혀 지나가지 못해 원주시 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2. 피톤치트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곳 (산이 가까우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워낙 많으니, 일단 다른 조건들을 충족하는 지역부터 찾고 난 다음에 그 지역 안에서 산과 가까운 쪽의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3. 습도가 낮은 곳

남해안이나 동해안은 바닷가니까 무조건 습도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시별 자료를 잘 살펴보니 진주시나 김해시는 습도가 비교적 높지 않은 것 같았다. 동해안에 있는 강릉시가 오히려 건조한 편인 것으로 나왔다. 건조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4. 대형 병원과 가까운 곳

강릉에는 대형 병원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듯 했다. 게다가 강릉시가 워낙 크다보니 우리가 살게 될 곳으로부터 대형 병원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미세먼지가 적은 전남에는 순천이나 여수쪽에 대형 병원이 있었지만 그 쪽은 습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

진주시에는 큰 병원들이 몇 있었다.


5. 대도시(서울이나 부산)에 쉽게 갈 수 있는 곳

전라남도 쪽은 서울도 부산도 너무 멀었다.

습도가 낮으면서 대형병원이 있는 강릉의 경우, 서울역에서 강릉시청까지가 224km로 차로 세 시간 가량이나 걸렸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진주시가 유력했다. 습도도 높지 않은 것 같고, 부산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어 한시간 반 안에 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대형병원도 몇 있었다.


6. 좋은 도서관이 있는 곳

우리의 조건에 가깝다 싶은 도시들의 도서관을 모두 검색하고 각각 소장하고 있는 도서가 몇 권 정도인지 알아보았다. 적어도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제주도의 한라도서관의 규모였으면 했다. 진주시의 도서관 중에서 가장 큰 곳의 자료 현황이 21만권 정도였다. 자료 규모가 33만권인 한라도서관에 비하면 적은 양이었지만 다른 조건들을 충족하는 듯 하니 이 정도는 받아들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우리는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차에 한가득 싣고 제주에서 육지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을 자료만 보고 고를 수는 없었다. 실제로 가서 우리가 머리 속에 그리는 모습과 큰 차이가 없는지, 그 곳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어떤지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진도항에서 출발한 우리는 남원부터 둘러 보았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아기자기한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지리산의 기운도 느껴지는 것 같았고 사람들도 순해 보였다. 광한루원에서 저녁마다 남편과 둘이 산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부동산에 들러 집을 알아보니, 놀랍게도 나온 집이 별로 없었다. 그 마을은 떠나는 사람도, 들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는 우리가 살 인연이 아닌가 보구나.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남원에 대해 좋은 인상만을 담아둔 채 다음 여정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광주, 목포, 보성, 순천, 구례, 하동을 거쳐 우리가 후보지로 올려 놓았던 진주시에 도착했다. 진주시는 자료상 데이타로 보았을 때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진주시 중에서 어느 지역이 우리가 살기에 적합할까에 대해서까지 알아놓았던 상태였다. 차를 타고 진주시를 둘러보다가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지이이이 내렸다.

그 순간 우리는 뚱그레진 눈으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시 지이이이 창문을 올리고는 그 길로 아무런 미련 없이 다음 도시로 떠났다. 제주도에서 질리도록 맞았던 습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김해는 어떨까. 부산과 가까우면서 주변에 산이 많은 김해도 살기에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김해에서 수십채의 집들을 둘러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다. 김해 한켠의 숲 속에 사뭇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게 만드는 주택들이 있어 흥미로웠지만, 편의 시설들과 너무 멀어서 우리가 거주할만한 곳을 아닌 것 같았다.


부산도 둘러보았다. 해운대의 엄청난 아파트 숲과 상업지역은 우리의 취향과는 맞지 않을 뿐더러 습도도 높았다. 부산에도 숲 바로 앞에 지어진 아파트가 있었다. 두 동밖에 없는 작은 단지였는데, 단지에 들어서자 피톤치트의 향기가 느껴져 좋았다. 하지만 역시 높은 습도 때문에 패스했다.


아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보면 좋을까....... 집을 찾기 위해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집이 애초에 딱히 없었던 건 아닐까.


그 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도서관은 어디일까.

그 동안 다른 조건들 중심으로 도시를 선정하고 그 도시의 도서관 시설은 어떤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었기 때문에, 도서관을 중심으로 자료를 찾아본 적은 없었다. 남편과 함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국내 도서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은 대전에 있는 한밭도서관이었다 (2017년 기준).

그래? 우리는 당장 대전으로 출발했다.


대전의 미세먼지는 어떻지? 나쁘지 않았다. 경기 지역을 벗어나 있어 공단에서 뿜어내는 공해로부터 거리가 좀 있으면서, 서해안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어서 중국으로부터 오는 미세먼지도 직격으로 맞지는 않았다.

적당한 높이의 보문산이 있어서 운동 겸 오르기 좋을 것 같았다.

대전은 내륙 한가운데에 있어서 건조한 기후였다.

성모병원과 충남대병원이 있었다.

압구정역까지가 약 160km 로 두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고, KTX로는 한시간 거리였다.


그렇게 간 대전에서 우리는 작은 뒷산을 두르고 있으면서 한살림 매장으로부터 8분, 대전성모병원과 고속도로와 대전역으로부터 10분, 보문산과 코스트코와 한밭도서관으로부터 15분 거리에 있는 어느 오래된 아파트의 집을 보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왠지 이 집이 우리는 반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집이었구나. 우리의 이 길었던 여정이 바로 이 집을 향했던 거였구나.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약 한달 여의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여행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단단한 자존감과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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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방식대로 삼겹살을 수육으로 만들어 제육볶음을 한다.

이렇게 하면 전체 걸리는 시간은 좀 길지만, 고기를 프라이펜 위에서 저어주면서 한참동안 익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기가 부드러우면서도 들이는 노력은 비교적 적다. 수육을 하면서 들어간 향료 덕분에 풍미도 깊이가 있어진다.


일단, 삼겹살을 수육을 한다.

물에 생강가루, 계피가루, 파 초록색 부분, 진간장 (또는 쯔유), 팔각, 월계수잎, 통후추 몇 알, 설탕 약간을 넣고 약 5분 끓여준 후 통삼겹살을 넣어준다.

중불에서 30~40분 정도 끓인 후, 삼겹살을 건져내어 되도록 얇게 썰어준다. (소고기는 좀 두께감 있게 써는 게 식감이 있는 반면, 삼겹살은 얇게 썰수록 맛있는 것 같다.)

수육을 하는 동안 양념을 만든다. 양념은 좀 여유있게 만드는 게 고기를 익혔을 때 맛이 좋은 것 같다.

양념 : 고추가루, 고추장, 진간장, 설탕, 사과즙이나 배즙 조금, 소금, 후추, 다진마늘, 식초, 생강가루 조금, 청주

얇게 썬 삼겹살을 양념에 비벼준 후 양념이 스며들도록 차가운 곳에 30분 정도 놓아둔다.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펜을 달구어서 채썬 양파와 파에 소금을 조금 뿌려주고 살짝만 익힌다.

양념한 고기를 섞어서 2~3분 정도 휘리릭.

이미 고기는 수육을 하면서 거의 다 익은 상태인데다 두께도 얇아서 금방 다 익는다.

오래 익히면 고기도 질겨지고 야채도 너무 숨이 죽는 것 같다.


깻잎에 싸먹으면 너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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