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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26. 2023

이름 찾아 삼만리 관두고 자아 찾아 첫걸음

피칸 파이

이름 이라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단, 나는 나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좀 예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면 좋겠는데 내 이름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딱히 독특하거나 입에 착 붙는 어감도 아닌 것 같고,

나하고 어울리는 이름인지에 대해서도 뭔가 갸우뚱 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미국 사람들은 내 이름을 발음조차 하지 못했을 뿐더러, 알파벳으로 쓴 내 이름을 보며 매번 나에게 물어왔다.

"이 이름은 어떻게 읽는 거죠?"

흠......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점쟁이를 찾아갔다.

십만원인가를 내고서 내 사주에 좋다고 받은 이름은 서연이. 원래의 내 이름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서연이라고 하면 야들야들한 긴생머리의 여성이 떠올랐다. 부드러운 어감도 좋았다.

그래, 서연이로 하자. 이제부터 나는 서연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나 이름 바꾼다고 다 알려주었다. 친구들은 나의 새 이름을 축하해 주는 마음으로 약간의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그런데 이름을 서연이로 바꾸겠다고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이라는 이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스러운 느낌이 좋긴 한데, 막상 부르다 보니 뭔가 부족한 것 같달까.

또다시 불만족스러워졌다.


이번에는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고 내가 스스로 옥편을 찾아가며 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었다.

희원이.

'ㅎ' 으로 시작해서인지 희원이라는 이름은 서연이보다 조금 더 발랄한 것 같았다.

영어로 표시하기도 편할 듯 했다. 영어에 Fiona(피오나) 라는 이름이 있으니, F 를 H 로 바꾸어서 Hiona(히오나) 라고 하면 쉽게 인지할 수 있겠지.

그래서 Hiona 라는 이름을 들고 영국의 어느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내 예상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모두들 내 이름을 읽기를 어려워했다.

"이 이름은 어떻게 읽는 거야?"

"이름을 다시 한 번 말해줄래?"

영국 사람들에게는 그저 새로운 알파벳의 조합일 뿐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매번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It's Fiona with H. (Fiona 라는 이름을 F 대신 H 로 발음해 주면 되요.)"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1년 후 영국에서 부모님이 계셨던 상하이로 돌아오면서 나는 희원이라는 이름도 버렸다.

그냥 원래의 내 이름으로 불리며 살았다. 그 이름이 갑자기 마음에 들어져서는 아니고, 내 마음에 드는 다른 이름이 무엇일지를 찾는 걸 포기해서였다.


그리고 그 즈음 되자, 혹시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건 내 이름이 아니라 나 자신인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슬금슬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닌데, 몇 년 전에 내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어느 웹툰이 엄청나게 흥행을 하면서 내 이름이 예쁜 애의 대명사 같이 불리는 걸 보게 되었다. 인플루언서가 예쁜 옷을 입고는 "저 OO 같지 않아요?" 라며 미소짓고 있었다.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걸 나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나보다.


천계영 님의 <오디션> 이라는 만화를 좋아한다. 그 만화의 메인 캐릭터 중에 '송명자' 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명자.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촌스러워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그 이름이 너무 좋아서 혼자 전철을 타던 중에도 가끔 중얼중얼 그 이름을 발음해 보곤 했다.

그 이름이 멋지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사실 그 이름의 어감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신이 있고, 항상 자신 스타일이 있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결국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던 송명자의 내면이 나에게 울림을 주어서였다. 그 캐릭터의 이름이 명자가 아닌 다른 어떤 이름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 이름을 좋아했을 것이다.

멋진 이름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스타일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나.

나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가.

나는 인생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가.

나는 언제 무엇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나.

나는 왜 슬픈가.

......

나 자신에 대한 그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아니, 답할 수 없다기 보다, 왠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보기도 싫었다.


불안감은 거기서 오는 거였다. '나' 라는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두둥실 떠있으면서 언제 어디까지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것 같은 느낌.

이름을 바꾸면 그 불안에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눈 가리고 아웅 하듯 괜히 이름표에 마음 속 불안을 쏟아낸 거였다. 이름을 백 번을 바꾼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할 거였다.

반대로, 자존감이 자라나면,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속에 내 이름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을 거였다. 이름이 뭐가 되었든 간에.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이름에 대한 불만을 내려놓고, 끝없이 이름 찾아 삼만리를 했던 방황에서 벗어났다. 삼만리는 이름 리스트를 향해서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향해서 했어야 하는 거였다.



말로 모건이 쓴 <무탄트 메시지> 의 후속편에 보면, 참사람 부족은 자신의 이름을 부모가 지어주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짓는다고 한다.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느끼고 그걸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청아' 는 본명은 아니지만, 현재의 내가 느끼는 나 자신이다.

나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세상적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편인 것 같고, 그래서인지 뭔지 모르게 깨끗한 느낌이 있다.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고운 느낌도 있는 것 같다. 상처나 두려움에 휩싸일 때면 내 내면의 본성을 잃을 때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타고난 본성은 여전히 그 느낌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남편도 그런 나의 느낌에 공감해서 나를 청아라고 부른다.


"청아야~, 오늘 우리 디저트는 모야?" 하고.


======


청아가 만드는 오늘의 디저트는 피칸파이다.

이 피칸 파이를 먹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나는 도대체 얼마나 멋진 사람인거야...?!'



파이 크러스트를 만든다.


밀가루 150g 에 차가운 채로 잘게 썰은 버터 80g을 소보로 가루나 옥수수빵 가루처럼 될 때까지 짓이기고 비벼준다.

작은 달걀 1개와 설탕(비정제 갈색설탕) 20g 과 소금 2g 을 섞고 잘 반죽해준다.

물 8~10g 정도를 섞으면서 반죽한다. 질퍽하지 않을 정도의 물만 섞는다.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1시간 정도 휴지시킨다.


파이 속을 만든다.

피칸 150g 을 씻어서 오븐에 10분 정도 익힌 후 식혀준다. 나는 피칸을 반 정도 씩으로 자른 게 좋은 것 같다.


버터 100g, 비정제 갈색 설탕 80g, 메이플 시럽 2큰술, 꿀 1큰술, 조청 1큰술, 소금 적당히 넣고 약분에 잘 녹인 후 잠시 식힌다.

거기다 바닐라 익스트랙 2g (생략가능)

좀 식으면 달걀 2개를 잘 섞어준다.

준비한 피칸을 같이 섞어둔다.


파이 크러스트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잘 펴서 타르트틀에 예쁘게 넣고 종이 호일을 얹고 그 위에 콩을 좀 얹은 후 180도 오븐에서 20분 정도 익힌다.


파이 크러스트에 파이 속을 넣고 165도(오븐에 따라 170도) 오븐에서 40~45분 정도 익혀준다.


잠시 식혔다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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