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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an 02. 2024

멸치와 새우의 매직

멸치육수 된장찌개

죽어서 나의 냄비 안에서 끓여지기 전에, 멸치와 새우는 둘이서 친구였을까.

멸치를 우려낸 육수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면 너무 맛있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우정 각이다.

오늘은 그들의 우정을 된장찌개로 우려냈다.


멸치 똥을 딴 후, 물도 기름도 더하지 않은 마른 냄비에 넣고 약불에 뒤적이면서 잡내를 날린다.

비린내가 가시고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잠시 기다려준다. 남은 냄새까지 모두 날아가도록.

물을 붓고 강불에 끓였다가 물이 끓어오르면 중불에 놓고 우려낸다. 무우는 익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이 때부터 같이 익혀준다.

물이 구수한 노란 빛을 띄면 다 된 것이다. 나는 한 20분 정도 끓이는 것 같다. 다 우러나면 멸치는 건져준다.


이 때, 물은 전날 다시마 몇 조각을 넣어놓아 두었던 물이면 더 맛있다.


다른 냄비에 다진 파와 다진 마늘과 된장 두 큰술 정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아준다.

새우젓을 약간 더한다. 소금(죽염)도 아주 조금만 더해준다.

된장이 고소하게 익어간다 싶으면, 불을 약불로 줄이고 고추가루를 취향껏 더한다. 오늘 나는 두 티스푼 정도 넣었다.

고추가루가 맛있게 익었다 싶으면 멸치 우린 물을 붓는다. 그 안에 익히던 무우도 같이 넣어준다.

물이 끓으면 일단 깍두기처럼 썰은 감자를 넣어준다.

감자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썰은 양파와 애호박을 넣어준다. 알배추를 썰어서 같이 넣어 주어도 맛있다.

청량고추도 취향만큼 다져서 넣어준다.

야채가 다 익으면 두부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놓는다.


불을 끈 후 10분 정도 지난 후에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어쩌면 불을 끄고 난 후에 재료의 맛이 더 어우러지는지도 모르겠다.


된장찌개가 이토록 맛이 있었나.

오늘의 된장찌개는 나의 남편에게 깊은 위로와 기쁨과 에너지를 주었다.



어떻게 하면 멸치와 새우의 어우러짐처럼 내가 만나는 이들과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을까.

1 + 1 이 2 가 아니라, 1 + 1 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10 이 되는 듯한 매직.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나는 인간 관계의 미니멀리스트다.

나 자신도 에너지가 별로 없다고 느꼈었는데, 그 상태로 이런 저런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에너지마저 쪽 빨려버리곤 했다.

왠지... 1 + 1 을 했는데 마이너스 2 가 되어버린 듯한 또다른 매직.

그래서 마이너스 매직을 만들어 내는 이들과 점차 거리를 두다 보니, 나의 관계의 풀 안에 사람이 거의 없어 무인도가 될 지경이다.


멸치도, 새우도, 자신만의 맛과 향이 분명하다.

나 자신의 맛과 향이 스스로에게 불분명하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한다 해도 매직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맛과 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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