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아 Jan 10. 2024

엄마가 그리울 땐 김치찌개를 끓인다

김치찌개

삼겹살을 넣은 구수한 김치찌개는 나와 동생이 한창 자라나던 시기에 많이 먹었던 메뉴다.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는 정말 특별히 맛이 있었다. 벌겋고 윤기나는 김치찌개를 따끈한 밥에 비벼서 먹었던 그 맛은 아마 평생 내 기억 저장소 중에서도 중요한 포지션에 모셔져 있을 것이다. 그 안의 삼겹살은 또 얼마나 맛나던지.. 마지막 삼겹살 한 조각을 동생과 동시에 젓가락으로 집으며 싸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는 김치찌개를 만들 때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양의 삼겹살을 넣어서 만들어 주었다. 


재작년까지 우리집 요리 담당이던 남편은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면 으레 김치찌개를 끓여주곤 했다. 파와 양파와 김치를 볶아서 고추가루를 좀 넣고 김치 국물도 좀 넣은 다음 멸치 육수를 넣고 끓이는 식이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먹어오던 엄마표 김치찌개의 맛과는 많이 달라서 아쉬움이 컸다. 


작년부터 내가 요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김치찌개를 마주해 보았다. 여러 유튜브 동영상을 검토해 보고 네이버에 검색도 해보면서 엄마가 만들었던 김치찌개의 그 맛을 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지만, 어떻게 해보아도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아아 엄마 살아있었을 때 좀 배워 놓을걸... 김치찌개 어떻게 끓이면 맛있냐고. 이제는 엄마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현타에 고개가 떨구어지고 목이 메였다.


김치찌개를 끓이던 어느 날이었다.

참기름에 다진 파와 마늘과 삼겹살을 넣고 간장을 조금 더해서 볶고 있었다. 그 때였다.


"딸아 된장을 좀 넣어보렴."


!!!!!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엄마의 목소리였다. 


난데없이 들려온 한 마디에 온통 혼란스러운데, 그 내용도 못미더웠다. 

김치찌개에 왠 된장?? 


내가 잘못 들은게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마음이 찝찝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준 편지를 그냥 쓰레기통에 넣는 듯한 기분이랄까.

된장을 좀 넣어? ......말어? 


일단 불을 꺼놓고 한참을 굳은 듯이 서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된장을 좀 넣어보지 모. 잘못들었다 해도 망치기밖에 더하겠어. 


다시 불을 켜고 된장을 한큰술 넣고 같이 볶았다. 설탕도 반 티스푼을 넣어 주었다. 썰어둔 김치와 멸치액젓과 까나리액젓 조금씩을 넣어주면서 계속 볶은 후 고추가루를 좀 넣고 약불에 잠시 볶았다. 그러고 나서 물을 붓고 끓였다. 양파도 넣어주고. 

그렇게 한소끔 끓이고 나서 숟가락을 가져가 한 스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아아아.....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었다. 정말 그 맛이었다. 동생과 마주 앉아 퍼먹던 그 김치찌개의 맛.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엄마가 만들어 주던 맛. 


엄마는 김치찌개를 만들 때 된장을 넣었었구나. 

엄마는 죽고 나서도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땐 옆에 있어주나보다.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치찌개를 식탁으로 옮긴 후 남편을 불렀다.

"오빠, 식사하세요." 


남편이 그 김치찌개를 한입 떠먹은 순간부터 남편의 최애음식은 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되었다. 몇 달 동안 뭐가 먹고 싶냐고 묻기만 하면 김치찌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치찌개를 만들 때마다 엄마와 함께하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돈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