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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an 22. 2024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순간에

아아 나는 이럴 때 내가 진짜로 싫다.


누군가를 대하다 보면 그 사람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을 넘어올 때가 종종 있다. 생각이 느리고 사람 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런 순간에도 하하 허허 하고 있다가 이야기가 다 끝난 시점 혹은 그 만남이 아예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아 저 사람이 아까 함부로 말했었던 거네' 라는 슬로우한 깨달음이 밀려오곤 한다.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면 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선 넘는 말을 듣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러고보니 기분이 나쁘다 라고 표현을 할지, 아니면 넘어가 버렸으니 그냥 지나갈 것인지... 두 옵션 다 썩 마음에 안 든다. 


대부분의 경우 두 번째 옵션을 택한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가 거북해서. 또는 한참 동안이나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맥락없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어려워서. 


그러고 나면 나는 틈만 나면 그 때의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바닥을 닦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상상 속에서 그 경우에 어긋나는 말이 공기 중에 울리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색하며 말한다. 방금 했던 그 말, 나를 불편하게 했다고.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딱 부러지게. 


아무리 그렇게 상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상상은 상상일 뿐. 마음이 후련해 지지가 않는다. 점점 더 답답해진다. 




이번에도 딱 그 짝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기신 유산을 아빠가 돌아가셔서 나와 동생이 대신 받기 위해, 작은 아버지와 고모와 함께 은행에 있었다. 조금 앉아있으려니까 작은 몸집에 야무진 인상의 부장님께서 오셔서 우리 일을 맡게 되었다며 인사를 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부장님이 자기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그 안에 한달동안 1억을 넣어두면 백화점 상품권을 주겠다는 홍보를 하셨을 때, 나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거절할 생각을 했다. 


원래는 간단히 끝날 절차였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몇 십년 전에 가족관계증명서라는 게 처음 생기면서 전산상의 실수로 작은 아버지의 성함이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누락이 되어 있었다.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다른 서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면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유독 이번에 찾아간 은행에서 승인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우리 일을 맡은 부장님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승인과 관련된 분들을 상대로 얼굴까지 울그락 불그락 해가면서 겨우겨우 일처리를 하셨다. 


이토록 성의껏 일을 해주시는 부장님께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있을 때쯤, 그 부장님이 일을 다 해결하고 나서 말씀하셨다.

"아까 말씀드렸던 계좌요, 그거, 해주셔야겠어요. 저 이거 하느라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나와 동생이 상속받은 돈을 타은행의 계좌로 송금하는 데 대해서도 자기한테 손해라며 한껏 눈치를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계좌를 만들어 주셔야 겠다는 거였다. 

결국 작은아버지께서 총대를 메고 계좌를 만드는 데에 동의하셨다.


한참이 걸려 계좌를 만들고 그 안에 1억을 넣고 나자 딸랑 영수증 한 장을 주면서 다 되었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가 1억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증명할 방법이 이 종이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하자 부장님도 수긍을 했지만, 4시가 지나 은행 업무가 이미 모두 마감되었기 때문에 인터넷 뱅킹이나 카드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찾아보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작은 아버지는 네 시간에 걸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 되셨기 때문에 안 그래도 많이 힘드셨던 상태셨다. 배낭에 기저기를 챙겨들고 몇 시간마다 갈아주면서 일을 보고 계셨다. 부장님이 일을 보는 동안 그 곳에 앉아서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계신지가 옆에서 느껴졌다. 나중에 가서는 어디어디 사인을 하라는 부장님의 말 조차도 따라갈 수 없어 내가 옆에서 다시 천천히 말씀드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부장님은 흑빛이 된 작은아버지를 붙들어 놓은 채, 피가 날 듯 입술을 물어 뜯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미친듯이 컴퓨터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


......


일이 끝나고 만난 남편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네 명이서 아무도 화를 안 냈단 말이야? 청아네 집안 분들은 정말 다 착하시구나..."


남편은 남편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대강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서비스 받은 은행 업무는 응당 해주어야 하는 업무였다. 열심히 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계좌 상품을 강매할 수는 없다.

. 자금에 대해 사람마다 계획이 있는 건데, 한 달 동안 1억을 묶어 두라고 푸쉬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자괴감이 들었다. 

아아 나는 오늘도 누군가가 나에게 함부로 하는 걸 용납했구나...

그게 함부로 하는 것인 줄도 몰라서 '불편하다' 표현할 수도 없었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오히려 미안해할 뻔 했다. 


나는 또다시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 은행의 부장님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었다. 부장님이 

"계좌. 해주셔야 겠어요."

라고 하는 순간, 그 분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오. 감사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저에게 은행 상품을 강매하실 수 없어요. 전 이 상황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나서 너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작은 아버지와 함께 은행을 나서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남편은 내가 은행 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상황이 파악이 잘 안 되었던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음에 그런 상황을 만난다면 그 때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순간적인 대처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해 주는 거다.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 안 되는 걸 가지고 자꾸 왜 안되냐고 나 자신을 다그치는 것 좀 그만할 수 있을까.


가슴에 짜증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아직 그만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언젠가는 될 수도.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관용이 지금보다 조금 더 커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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