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밀빵, 샐러드, 달걀반숙, 커피
밤에 자리에 누워 잠에 들기 전, 남편에게 말하곤 한다.
"빨리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어요."
"왜?"
"아침 먹게."
내 말을 듣고 남편이 웃는다.
아침 식사 시간은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사랑하는 시간들 중 하나다.
식사를 만들고, 식탁에 차리고, 남편과 마주앉아 식사와 대화를 즐기고, 설거지를 하며 마무리하는 그 루틴이 매일같이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한데도, 전날 밤부터 기대를 하며 잠에 들만큼 그저 좋다.
다섯시 반쯤 일어나면 명상이나 글쓰기를 하는 시간을 좀 가진 후에 여섯시 반부터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내내 머리가 맑아서 식사 준비를 하면서 지치지 않는 것 같다.
여섯시 반쯤 일어나면 바로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이따가 달걀을 삶을 건데, 차가운 채로 삶으면 달걀이 터지니까 지금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 놓는다. 남편 꺼 두개, 내 꺼 한개.
빵을 만드는 데에는 발효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니, 가장 먼저 빵을 만드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따듯한 물 110g 에 메이플시럽 15g 과 드라이 이스트 4g 을 넣고 부드럽게 섞어준 뒤 그대로 10분 정도 놓아둔다.
그 동안 커피를 내린다. 내가 사는 곳이 아파트여서 아침에 전기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가는 게 여의치가 않다. 한 번 그렇게 했다가, 뭐 가는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해달라는 아파트 방송이 나온 후로, 원두는 전날 미리 갈아놓고 있다.
드리퍼에 여과지를 한 장 깔고 물을 조금 부어 적셔준 다음 어제 갈아놓은 커피 원두 30g 을 붓는다. 저울 위에 드립주전자를 놓고 끓인 물을 60g 부어준다. 그 물로 커피 원두를 골고루 적신다. 원두 가루가 뜨거운 물을 만나면서 공기 방울들을 만들며 숨을 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물에 적신 원두 가루는 최소 40초 정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니, 나는 다시 빵을 만들던 곳으로 돌아간다.
가보면 내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이스트가 메이플 시럽을 먹고는 뽀글뽀글 거품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통밀가루 115g 과 소금을 적당히 넣고 살살 저어준다. 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나서 올리브유를 발라둔 오븐 용기에 반죽을 붓는다. 이 상태로 20분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오븐을 180도에 맞추어 놓고 예열을 시작한다.
자 이제 커피로 돌아왔다. 젖은 원두 가루를 느껴본다. 우러나올 준비가 되었니?
드립 주전자에 넣은 끓은 물 80g 을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뱅뱅 돌려주면서 커피 원두에 부어준다. 원래 커피를 내릴 때 물의 온도는 95도가 가장 좋다는데, 일단 100도로 끓였다가 드립주전자로 옮기고 드리퍼에 부어주는 과정에서 5도 정도는 자연스럽게 식지 않을까. 거품이 좀 올라오는 모양새를 보니 아무래도 오늘 이 커피가 많이 맛있을 것 같다. 물이 반쯤 빠지면 다시 뜨겁게 끓인 물 40g 을 뱅뱅 돌리면서 부어준다. 물이 반쯤 빠질 때마다 40g 씩 세 번 더 반복.
이제 샐러드를 준비할 차례다.
샐러드 준비는 샐러드 드레싱부터 시작한다. 드레싱 안에 여러 재료들이 들어가니, 그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질 시간을 주기 위해서 드레싱 준비부터 하는 게 좋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늘은 어떤 드레싱을 만들어볼까. 지난번에 마트에서 사온 사워크림을 활용하면 좋겠다.
좋아. 그렇다면 오늘은 크림 드레싱이다.
직접 만들어둔 마요네즈 1테이블스푼, 마늘 작은 거 한 알 (또는 반 알), 크림치즈 50g, 사워크림 50g, 레몬즙, 소금 조금, 설탕 몇 톨(설탕은 넣지 않아도 된다) 정도 넣고 살짝 갈아준다. 파슬리나 딜 가루도 섞어준다.
빵을 반죽한지 20분쯤 지난 걸 보고 빵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23분 동안 익힐 것이다.
오늘 샐러드에 들어갈 야채는 양상추와 브로콜리와 파슬리다.
찬 물에 식초를 조금 섞어서 오늘 먹을 야채들을 담가주었다. 10분쯤 지나면 이 야채들이 수분을 머금고 파릇파릇해져 있다.
작은 냄비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인덕션 위에 올려 물이 끓으면, 먼저 씻어놓은 브로콜리를 잠시만 데쳐준다. 브로콜리를 꺼내고 나서 끓고 있는 물에 달걀을 넣어준다. 숟가락에 달걀을 하나씩 올리고 그대로 잠수시키면 달걀이 안전하게 뜨거운 물 속으로 들어간다. 타이머에 5분을 맞춰놓고 끓여준다. 타이머가 울리면 불을 끄고 달걀은 냄비 안에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다시 타이머를 맞춘다. 달걀이 좀 크다 싶으면 2분 30초. 달걀이 좀 작은가 싶으면 2분 10초. 다 되면 흐르는 찬물에 1분 정도 헹구어 주었다가 껍질을 까고 반으로 자른다.
짜자잔. 완벽한 반숙이다.
남편은 달걀을 심히 좋아한다. 반복을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달걀만은 매일 먹어도 질려하지 않는다. 삶은 달걀을 먹을 때에는 반숙의 상태를 좋아한다. 흰자는 다 익고, 노른자는 다 익지 않은, 노른자의 수분감이 살아있지만, 그렇다고 흐르지도 않는 상태. 달걀을 좋아하는 만큼, 자기가 원하는 반숙의 상태에 조금은 까탈스럽다.
원래는 '달걀을 12분 정도 삶으면 반숙이 된다.' 고 알고 있었는데, 이 방법으로 하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변수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 그때 냄비에 넣는 물의 양에 따라, 냄비의 종류에 따라, 계절마다 달라지는 수돗물의 온도에 따라, 결과물이 모두 달랐다. 어떤 때는 노른자가 흘러버릴 만큼 덜 익고, 어떤 때는 노른자가 뻑뻑해질만큼 너무 익어버렸다. 이런 저런 방법들을 시도해 보는 나를 지켜보면서 남편은 반숙에 실패한 달걀들을 먹으며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밀라논나> 님이 달걀 반숙을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매일같이 남편이 기뻐하는 달걀 반숙을 만든다.
양상추를 물에서 건져 물기를 뺀 후 적당히 썰어 그릇에 담았다. 어제 사온 사과가 냉장고 안에 있다. 반 개만 잘라서 작은 조각들로 잘라 양상추 위에 얹었다. 사과는 브리치즈와 잘 어울리지. 브리 치즈도 조그만 조각들로 잘라서 그 위에 얹어 주었다. 파슬리도 다져서 얹었다. 올리브는 남편은 네 알, 나는 세 알. 그 옆에 반으로 썰어놓은 달걀도 얹었다. 드레싱을 숟가락으로 퍼서 샐러드 위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띵! 빵이 다 되었다. 윗면이 노릇노릇한 게 참 예쁘다.
빵을 식탁으로 가져가고 그 옆에 둔 소스 그릇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적당히 부었다.
남은 드레싱도 식탁 한가운데 둔다.
물을 뜨겁게 데워서 드립 주전자에 넣고 아까 내려둔 커피와 나란히 식탁 한 켠에 놓는다. 드립 커피에 물을 섞어 적당한 농도를 맞추는 건 남편의 몫이다.
여러 색깔이 섞여 아름다운 샐러드도 식탁에 놓고 그 옆에 냅킨도 한 장씩 놓아둔다.
포크와 빵을 썰 때 쓸 칼도 준비한다.
자. 이제 식사 시간이다. 남편을 부른다.
"식사하세요~!"
남편은 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음미해 준다. 눈을 감고,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하나하나 느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흐아..." 숨을 내쉰다. 정말 맛있다는 신호다.
나는 초반에는 샐러드를 중심으로 먹고, 샐러드를 다 먹고 나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루틴을 좋아한다.
내 루틴을 남편은 웃기다고 생각한다.
어제 저녁에 보면서 웃었던 유튜브 동영상 이야기, 뉴스에 나온 소식들, 웃지 못할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는 정치판 이야기, 그 외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 떠올랐던 생각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몇 번을 크게 웃었다.
아침 식사를 하다 보면 창문으로 싱그러운 햇살이 비춰오기 시작한다.
그냥 행복해서 또 한 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