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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an 24. 2024

상처라는 유리벽

남편과 함께 앞으로 살 집을 찾기 위해 전국을 여행하고 다니던 때의 일이다. 

그 날 우리가 묵었던 수도권 지역의 어느 호텔은 로비인 1층과 2층의 경계를 일부 없애서 높은 층고의 느낌을 주고 1층과 2층을 아우르는 한 쪽 벽면에 통창을 설치해서 햇빛이 호텔의 로비 전체로 쏟아져 들어오게 하는 멋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의 2층에 있는 공용 세탁기에 그 동안 돌아다니느라 왕창 밀려있던 빨래감들을 넣어두고 나오던 참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이었던 나는 눈 앞의 광경을 보고 정신이 확 들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들어왔는지 모를 까치 한 마리가 계속해서 있는 힘껏 날아가 통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었다. 살려면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유리가 어떤 건지 모르는 까치의 입장에서는 눈 앞에 훤히 보이는 건물 밖의 세상으로 왜 나갈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부딪히고 또 부딪혀 보아도 나갈 수 없자, 점점 절박해진 까치는 더욱 더 세게 통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었다. 계속 저러다가는 머리가 깨져버릴 것 같았다. 부딪히면서 빠진 까치의 털들이 주변에 온통 굴러다녔다.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죽어가고 있었다.


마음의 상처라는 게 저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조금만 마음을 뻗어보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사는 것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상처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치유하지 않으면 절대 나갈 수 없는 유리벽이 어느샌가 마음 안에 세워져 있다. 보이지 않지만 철통같이 단단한 이 유리벽은 아무리 세게 달려가 부딪혀도 뚫을 수 없다. 그래보았자 나만 다칠 뿐이다. 감싸안아야 녹아 없어진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내 인생의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종종 내가 말하는 방식에 상처를 받는지, 

왜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하는지, 그리고 그게 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게 마음을 닫도록 하는지, 

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운지,

내 생각에 나는 참 좋은 사람인데, 왜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딱히 그렇지가 않은 건지,

왜 내가 그 사람과 결혼을 했고 또 이혼을 하게 되었던 건지,

왜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려운 건지,

왜 남편이 나에게 서운하게 했던 기억들이 목에 낀 가시처럼 마음 속에서 없어지지가 않는지,

왜 행복으로 마음이 터져나갈 만한 귀한 순간에서 마저도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어려운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마음의 상처라는 유리벽을 이해하게 되면서 많은 부분 답을 얻었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에 많은 것들을 경험해 왔다. 회사도 오래 다녀보고,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주변인들에게 찬양과 존경도 받아보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일로 인해 사업과 돈 모두를 잃어보기도 했고, 이혼도 했다. 사업도 가정도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 남편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의 모든 경험들과 생각들과 마음들을 끝없이 적어보면서 자기 내면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만났을 때 즈음에 남편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나름의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결혼 9년차인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건, 내가 맥락없이 남편을 아프게 했던 말이나 행동들을 남편이 방어적으로 받지 않고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상처로 인한 것임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나의 내면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남편도 나도 아프고 힘들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가 멀어지게 하지 않고, 대신 내면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로 보겠다는 선택을 해 왔다.


마음을 치유하려고 애쓰다 지쳐갈 때쯤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하필 내 안에 유리벽 같은 상처들이 생겨서 세상과 분리되고 나 자신과도 분리되게 하는 걸까.

유리벽이 꼭 나쁘기만 한 걸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는 유리벽으로 인해 삶을 향한 간절함을 얻었다. 유리벽이 단단할수록 나의 간절함은 그만큼 더 커졌다. 유리벽이 없었더라면 별 감동 없이 날아다녔을 나의 내면이 유리벽으로 인해 더없이 소중해졌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유리벽이 없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 가슴 속 유리벽에 진정으로 감사할 때 유리벽이 말랑말랑해지고 틈이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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