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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an 25. 2024

내가 분노한 대상은 전 시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이혼을 경험한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진심으로 그 분과 그 분의 가족들의 행복을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가다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이 왜 아직까지도 내 안에서 독한 불쾌감을 주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 겪었던 그 분들은 지금의 나에게 그 어떠한 가치도 영향력도 없는데,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한 행동에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게 과연 자연스러운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뭐 그런 기억이라면 기분이 나쁠만 하지 라고 넘겨 왔다. 


오늘 아침, 문득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넌 너 자신한테 화가 난 거야."


이 말이 무슨 뜻일까를 잠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거였다. 내가 마음이 힘들었던 건 그 분들이 나에게 어떻게 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함부로 해도 되게끔 두 팔 벌려 용납했던 내가 미웠고 용서하기 싫었다. 나 라는 사람이 응당 받아야 할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자존감 있게 지켜내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10년 내내 화가 나 있던 거였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아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전 시어머니가 나를 처음 만났던 날, 내가 평균 이하의 집안의 딸이라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빠는 건강하게 경제활동 중이셨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얼굴 표정과 몸짓과 말로 풍성하디 풍성하게 표현했던 바로 그 날, 나는 나를 반기지 않았던 그 분으로부터 돌아섰어야 했다. 

그 분이 마음을 넓게 가지고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전해 왔을 때, 그래 주시니 된 건가가 아닌, 첫날 나를 그렇게 대한 데 대한 사과를 정중히 요청드렸어야 했다.

당시 외국에 살고 있었던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를 드렸다고 해서 "니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시던?" 이라고 경우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을 때, 얼떨결에 했던 "아니오..." 라고 대답하며 그 태도를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어야 했다.

반면에 전남편이 나의 부모님에게는 그 어떤 연락도 방문도 일절 하지 않는 데 대해서 대화의 장을 열었어야 했다.

내가 하루에 몇 번 엄마에게 전화하는지 확인하고 다섯 번 전화했다고 화를 냈을 때, 미역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물어보려고 했다고 변명을 할 게 아니라, 그게 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에 대해 묻고, 답변을 들어보고, 만약 그럼에도 납득이 안 된다면, 이에 대해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어야 했다.

결혼 후 처음 시댁에 갔던 날, 시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셔서 듣고 있던 중에 저 쪽에서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내가 부엌에 가서 과일을 깎지 않는다고 온 집안에 다 들리게 속닥거렸을 때, 못 들은 채 하지 말고 아까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게 예의인 것 같았다는 나의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했어야 했다.

전 시댁의 집안 사정에 대해 나에게는 숨기거나 거짓말을 해왔을 때 나도 이제 그 집안의 일원이니 분리시키지 말고 포용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전 남편이 나에게 가계부를 썼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 의도가 내가 살림에 대해서 잘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 자신은 볼 생각도 없다고 진지하게 말하고, 며칠 후 제대로 안 쓴다고 화도 냈는데, 막상 쓰고 나니 금액을 확인하고 이제 그에 맞추어서 생활비를 줄이겠다고 하며 걸려들었다는 듯 삐딱한 미소를 지었을 때, 내 마음 속에서 금이 갔던 부부간 소통의 신뢰에 대해서 표현했어야 했다.

종종 거짓말을 했던 전 남편이 오히려 내가 하는 말들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추궁했을 때, 억울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격을 갖춘 자리를 마련해서 표현했어야 했다.

시누이가 내 연락을 씹기 시작했을 때, 도망가지 말고 당당하게 해결을 했어야 했다.


* 그 모든 소통은 절대적으로 예의를 지키는 선상에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나를 존중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분들이 나의 표현에 더 큰 두려움으로 대응하든, 아니면 마음을 열든, 그것은 나로서는 크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확신하지는 않지만, 내가 그렇게 인격적인 소통을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종국에는 이혼을 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랬더다면 최소한 나 자신에게 떳떳했을 것이다. 

몇 달 안되는 전 결혼 기간 동안 비굴하게 굴다가 뛰쳐나온 나에게 어그러진 건 그 분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였다.



나는 왜 그랬던 걸까.

왜 그렇게도 비굴했던 걸까.


아마도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맞으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때리면 맞는 상황이 감정적으로 익숙했다. 

대항하지 않는 대응 방식이 자연스러웠다. 

나를 때리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애뜻하고 따뜻했다. 

때리는 것 마저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려주는 거라고 믿었다. 

맞으면서 들었던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말들을 진실이라고 마음 속 깊이 받아들였다. 

엄마는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그게 나에 대한 합당한 대우라는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혼했던 당시에는 나의 심리가 어릴 때 자라난 환경과 연관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이제는 나 자신을 전보다 조금은 더 이해하면서, 나를 미워했던 마음을 다독여 본다. 

그래, 그래서 그랬었구나. 하고.

앞으로는 나를 지키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보자. 하고.

변화할 수 있음을 믿어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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