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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an 30. 2024

우리에게 적합한 여행 스타일을 찾기로 했다

여행을 좋아한다.


집에서의 뻔한 루틴에서 벗어나 한 시간 뒤에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막연함을 사랑한다.

끌어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여행하는 동안 만큼은 발걸음이 나를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낀다.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목표를 만들어 굴러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경험 자체를 찬양한다. 그래 산다는 건 이루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거였지. 비로소 정신이 든다. 

그래서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는 사실보다 좋은 건, 여행 모드를 'ON' 한 나의 정신 상태다.



그랬는데...

근래 들어, "우리가 원하는 여행은 어떤 거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 먹는 문제.

우리는 해가 갈수록 외식과 멀어지고 있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데에 재미가 들리면서 식사를 준비하고 뒷정리하는 과정에 나름의 애정이 생겼고, 그러면서 집밥이 점점 맛있어 지기도 했다. 작년에 외식을 언제했지 생각해 보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그러자 집밥에 익숙해진 우리의 몸이 외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을 거부하는 건지는 우리도 잘 모르겠다. 간수를 빼지 않은 소금 혹은 화학 소금 때문인지, 집에서는 쓰지 않는 미원이나 백설탕 때문인지, 사카린이나 쇼트닝 때문인지, 그릇에 남아있을 수 있는 잔여세재 때문인지, 야채 안에 들어있는 농약 때문인지. 먹은 음식에 따라 거부 반응도 제각각 다르다. 어떤 때는 위가 쓰라리고, 어떤 때는 장이 안 좋고, 어떤 때는 신장이나 방광이 힘들다. 졸릴 때도 있고, 머리가 우지끈 아플 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인도 음식점마다 다를 수도 있겠다. 

남편의 배는 외식을 얼마나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여운 척도다. 한 끼 외식을 하면 배가 슬그머니 나와 있고, 두 끼 외식을 하면 배가 조금 더 나오고, 이틀 동안 외식을 하면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해진다. 


외식을 하고 나면 몸이 힘들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든다. 

물론 먹고 나서도 우리 몸을 힘들게 하지 않는 음식점들이 몇 있었다. 그렇다고 그 음식점들에서만 식사를 하는 것도 어쩐지 재미 없게 느껴진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새로운 곳에 있는 새로운 맛집들을 경험하고 싶어서인데, 음식점에 가지 않고 먹는 걸 해결하려면 여행을 왜 가지? 가서 뭘 하지? 



둘째, 자는 문제.

우리 부부는 건강한 침구를 구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남편은 키가 큰 편인데다 젊었을 적 허리를 다친 적이 있어 침대와 베개에 예민했다. 나는 호흡기가 예민해서 침구의 원단에 예민했다. 둘이서 몇 년에 걸쳐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면서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지금은 우리가 세팅한 침구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우리는 목화솜으로 만든 요 세 개를 깔고, 거위털로 만든 베개를 베고, 순면으로 만든 베개 커버와 이불 커버에 피부를 부빈다. 우리가 에너지를 모아 만든 수면 환경은 자는 동안 우리에게 그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준다. 


호텔에서 자면 에너지가 충전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호텔 침구가 아무리 깨끗해도, 호텔의 인테리어가 아무리 쾌적해도, 우리는 집에서 얻는 것 만큼의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잘 잤더라도, 왠지 피곤하다. 5성급 호텔에서 자 보았는데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이틀째부터는 남편의 볼록 튀어나온 배와 나의 부싱부싱해진 얼굴을 마주하기 불편해서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둘 다 지쳐서 일주일은 골골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마음의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지고 싶다.

더 많은 것들을 보며 영감을 얻고 싶다.


스테이형 여행은 어떨까.

우리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곳에 한달 동안 머무르면서 그 곳을 느껴보면 어떨까.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식사를 하고 아늑하게 만든 잠자리에서 잠을 자면서도 여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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