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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정 Jan 03. 2024

너와 나 사이에..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바쁘게 움직이던 어느 날, 어슴푸레 동이 터오던 그 시간에 나는 태어났다. 엄마는 갓 태어난 나를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 곁에서 저만치 밀어내셨다고 한다. 작은 엄마는 어린 나를 붙들고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전하셨다. 느그 엄마가 그랬다고….


엄마와는 그렇게 생겨난 간격을 제대로 메꾸져지 않았다. 자라는 내내 엄마에겐 늘 주눅이 들어 안아달라, 이뻐해 달라 아양한 번 떨어보지 못했다. 그런 까닭인지 사람에게 마음 열기를 힘들어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여자아이라면 당연스레 가지고 있는 단짝 친구 한 명이 딱히 없었다. 친한듯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깊은 관계를 거부하는 나에게 실망했는지 친하게 지냈던 몇몇 아이들도 결국 한 명, 두 명 멀어져 갔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내 주위에 보이는 비슷한 반응들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사실 단계 없이 훅 다가오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멈칫해진다.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선을 긋고선 선을 침범하는 모든 것에  위험신호를 느끼곤 했다. 그 선 밖에서라면 모든 관계가 자유로웠으며 즐거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유쾌한 사람이 되었다. 나를 침범하지 않는 거리들이 편안했다. 아이 아빠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주는 안전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나의 민감함을 좀처럼 선을 넘지 않는 무심함으로 대해주는 것이 좋았다.


보호색마냥 나를 지키던 선들이 허물어진 건 뱃속에서 열 달을 품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 아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아이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내 분신이 나에게 왔음을 느꼈다. 거리가 존재할 틈은 애초에 보이지 않았다. 몹시 추웠던 어느 겨울밤, 덜컹거리는 오랜 된 나무창을 뚫고 들어온 차가운 공기에 시린 목덜미를 잔뜩 움츠리던 그날. 멀리 인도에 있는 남편이 그리워 몸도 마음도 얼어가던 그 새벽. 깊은 외로움에 잠 못 이루다 작디작은 내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작은 몸에서 퍼져 나오는 온기는 놀랄 만큼 따스했고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작은 몸으로 엄마를 지켜주는 아이를 위해 기쁨으로 아이의 손발이 되기를 결심했다. 울음소리가 날 틈이 없이 내 팔 안에 끼고 살았다. 아이 아빠와는 떨어져 지냈지만 아이와 둘만이라도 내 삶은 충분했다. 힘든지도 몰랐고 아낌없이 사랑했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여태 몰랐던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마치 하나인듯한 우리 둘의 사이가 좋았다. 존재만으로도 자식은 이렇게 완벽한 기쁨을 주는데 나를 밀쳐냈다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딱 맞는 퍼즐 같았던 관계는 아이에게 고집이 생기면서부터 끝이 났다. 아이는 엄마 품에 있는 것으로 더이상 만족하지 않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잘 맞춰둔 퍼즐 조각이 흩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떨어져 나가는 퍼즐 조각을 보며 힘들어했다. 아이가 신고 싶어 하는 신발까지도 용납하지 못해 마찰이 생겼다. 내 집착은 날로 심해졌고 감정 조절이 서툰 미성숙한 엄마는 난폭해지기까지 했다. 결국에는 두 돌이 갓지난 어린 딸을 붙잡고 엄마를 도와달라고 울며 불며 사정을 하곤 했다.


아이와 행복했던 순간들이 고통으로 변하면서 거리 두기가 필요함을 느꼈다. 아이와 나의 관계를 다시 되돌리려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했다. 내 집착의 원인이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에게 외면받았던 상처와 외로움 때문임을 깨달았다.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을 달래려 딸을 통해 안쓰러운 나를 안아주었고 외로웠던 나를 쓰다듬어 주었었나보다. 이 두려운 집착에서 아이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와의 사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이이고 나는 나다. 아이에게 몰려가는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되뇌고 되뇌었다. 나를 찾아가고 내 아이를 찾아내는 여정을 시작했다. 내 울음소리인 양 괴로웠던 아이의 울음소리를 참아내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이 생기면 지지해 줬다. 예쁜 점들을 찾아서 칭찬의 말을 전하고 아이에게 향하는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내 일을 찾으려 노력했다.


나의 되뇌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내 딸은 내가 아니다. 축복 속에 태어나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밝고 건강한 우리의 아이다. 나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는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색으로 입혀지고 커져갈 것이다. 아이에게 그 공간을 지켜주기 위해 나는 딸과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


어젯밤 우연찮게 잠들어 있던 아이의 등에 내 등이 닿았다. 여전히 아이는 다정한 온기로 나를 데워주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더라도 마주 댄 등의 온기만으로도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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