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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Mar 09. 2023

[꿈의 기록]

생일파티


어릴 때 다니던 길을 지나고 있는데

도로에 기다란 황색 리무진이 섰다.

매우 길고 큰 차였는데 차체는 낮아서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차의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 세 칸으로 나뉜 넓은 자리가 있고 인도쪽을 향해 테이블이 하나 놓였다. 그 흰 천이 둘러진 테이블에는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틀어올린 초등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누가봐도 재벌딸.

테이블에는 장미꽃이 수북하게 올려진 예쁜 케이크가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은색 롱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운전석쪽으로 가더니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들고 아이에게로 향했다.

이 모든 것이 도로 위에서 이루어졌다.

행인들이 많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생일 축하송을 불러주었다.


그러자 강을 등에 지고 푸른 잔디밭이 나타나고 우리는 어느새 언덕에서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리무진이 트럭으로, 다시 실내가 있는 통유리창의 카페로 바뀌었다.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는데 나는 장미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행인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점차 눈치를 보며 음식 트럭 주위로 갔다.

뷔페가 차려진 상 옆으로 외국인들이 길게 줄을 섰고 나는 줄을 서지 않고 얼쩡거리다가 접시를 들었다.


자세히 보니 차려진 건 거의 나물 위주였고 먹을 게 많지 않아 갈비 몇 점과 생맥주를 집었다. 그 순간에는 나는 줄을 서지 않고도 먹어도 되는, 주최자와 아는 사이라는 걸 내심 생각하며 있었다. 하지만 줄도 서지 않고 먹은 것이란 생각과 허락없이 음식을 먹은 것이 찔려서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하고 옷걸이에 걸린 털옷 외투와 또다른 외투를 들었다. 옷이 무거웠다. 그걸 왼손에 올리고 맥주를 마시고 고기를 뜯으며 밖으로 나왔다.


단발머리의 아이 엄마와 마주쳤는데 내가 저 아이가 네다섯 살 때 가르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우아하고 조곤조곤했지만 왠지 그게 다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충 인사하고 계단을 올라 잽싸게 도망가듯이 나왔다.


길을 걷는데 나는 고글을 쓰고 물에 젖은 수트를 입고 있었다. 물놀이를 가는 중이었다. 도심 한복판에 그런 걸 입은 건 나뿐이었고 물은 멀었다. 사람들이자꾸 쳐다봐서 길바닥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갈아입을 옷은 없고 이 쫄쫄이 같은 수트를 입은 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글을 벗고 걷는데 두 지역을 지나야했다. 나는 어째서인지 걸어서 가기로 결심했지만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살던 동네 밖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아스팔트고 하나는 물에 잠긴 숲길이었는데 아스팔트에서 아이를 안은 아빠가 내려오고 있어서 나는 질척이는 숲길을 걷기로 했다.

갈 길이 멀지만 아름다운 길이었다.



*수트와 고글은 내가 프리다이빙을 배우기로 해서 날짜가 다가오는 압박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

생파 장면은 딱 드라마 같다.

뷔페 장면이 꿈에 나오면 항상 온갖 고난으로 먹지 못하거나 접시에 담고 자리에 앉으면 깨어나서 억울했는데 오늘은 생맥주에 갈비를 먹었다!

뷔페 앞에 줄을 선 외국인들을 떠올리니

아마 내가 해외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점심을 기다릴 때의 줄 서 있던 외국인들ㅡ그때 나 혼자 한국인이었다ㅡ이 나타난 거 같다. 그러고보니 채소볶음이 대부분이었던 메뉴도 그때 배에서 먹은 반찬들이다.


오늘은 둘 다 물에 관한 경험을 꿈으로 꾸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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