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머리를 묶은 30대 여자였고, 가스 검침을 나왔다고 했다. 나는 어질러진 방안을 민망해하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검침원을 불편하게 느꼈다.
여자는 가스배관이 없는 창문 밖부터 점검했다. 나는 이 여자가 초보 검침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관이 있는 발코니에서 여자가 검침하는 시늉만 하더니 내게 와서 쪽지를 내밀었다. 하얗고 네모난 작은 종이에 가스와 상관 없는 문장 하나가 쓰여 있었다. 여자는 내게 그 문장 아래 서명 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게 가스와 무슨 상관이냐며 몇 번 거절했지만 여자는 집요하게 서명을 요구했고, 나는 결국 찝찝한 마음으로 서명을 했다.
여자는 사실은 자신은 검침원이 아니라며 그 종이를 파쇄기에 넣은 듯 세로로 갈가리 찢어서 허공에 던지고 나갔다.
나는 누군가 나를 쫓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져서 집밖으로 나갔다. 집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한테 이 상황을 톡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걸음이 무겁고 행동이 느려져서 도저히 문자를 쓸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