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담백 Nov 21.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2화 : 29만 원짜리 고지서

  29만 원짜리 고지서



  내가 여기 온 건 다 할머니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한테 끌려가다시피 해서 통신회사의 고객 센터에 함께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가 다짜고짜 요금 고지서를 들이밀었다. 날카로운 종이의 날에 직원의 턱이 베이는 줄 알았다.


  “이게 뭐요? 나랑 애랑 단 둘이 사는 집에 무슨 놈의 전화세가 29만 원이 나와요? 휴대폰에 도둑놈이 달렸나!”


  직원은 고지서를 꼼꼼히 읽어보더니 또야? 하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보고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사무실 뒤편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그 방에서 배불뚝이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는 대뜸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자분이시죠?”


  할머니 대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어르신, 혹시 패턴이나 지문 잠금 쓸 줄 아십니까?”

  “그게 뭔데 그러셔.”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사준 건 아빠였다. 여행 다니는 아빠를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채팅 앱을 깔아서 선물한 거였다. 할머니는 검색도 할 줄 모르고 음악도 듣지 않는다. 데이터나 와이파이가 뭔지도 당연히 모른다. 폰은 전화하는 기계일 뿐이다.


  할머니는 원래 쓰던 폴더 폰이 튼튼한데다 숫자가 적힌 패드가 도톰해서 더 좋다고 했지만 아빠는 “써보시면 이게 더 좋아요. 노인회관 가서 꼭 자랑하세요!”하고는 휙, 떠났다. 최신형은 아니지만 제법 쓸 만한 폰이어서 나만 내심 좋아했다.


  “휴. 어린 학생들이 어르신들 폰을 이용해서 게임 머니 결제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귀찮거나 잘 몰라서 폰을 안 잠가 놓으시니까 이런 문제가 자꾸 생깁니다. 오신 김에 요금 결제 상한도 정해 놓고 가세요.”

  “철봉아,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나는 소파의 천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여기, ‘렐크’라는 글자 보이시죠? 이 앞으로 3천 원씩 네 번, 1만 원씩 여섯 번…… 결제된 거 쭉 보이시죠?”

  “그게 어디 있는 마트요? 나는 그런 데서 상추 한 장 산 적이 없는데.”


  배불뚝이가 나를 노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건, 손자분이 대답해 주실 것 같은데요.”


  29만 원이나 나올 줄은 몰랐다. 조금씩, 조금씩 할머니 폰을 좀 썼을 뿐이다. 승진이가 2주 안에 골드4까지 레벨을 올려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실버5에서 골드4까지 짧은 시간에 올라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실버1에서 단계를 올리는 거야 쉽다. 열 판씩만 이기면 금방 올라가니까. 하지만 실버5에서 골드1로 가는 건 완전히 다른 고생이다. 열 판을 연속으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홉 판까지 이겼어도 마지막 판에서 지면 처음부터 다시 승부를 시작해야 한다. 한 게임 당 30분이 걸리니까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게임을 해도 계속 이길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아홉 판까지 이겼을 때, 마지막 한 판을 지더라도 레벨이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죽기 직전에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부활콘’을 구매하는 것이다. 부활콘의 가격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비싸지니까, 조금씩 돈을 더 썼다.


  메디크의 핑크색 링거액을 받는 방법도 있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무기를 미리 사놓는 게 안전하다. 그런 이유일 뿐이다. 휴대폰으로 전송된 문자에 적힌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살 수 있다. 그건 다 승진이가 알려준 방법이다.


  할머니는 요금 고지서를 들고 학교까지 찾아왔다.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한테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애가 무슨 렐 어쩌고 마트에 가서 전화로 29만 원어치 물건을 사는 동안 학교에서 교육을 똑바로 안 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담임이 내게 다시 물었다. 승진이 무리인 우연이, 정현이가 상담실 창문 너머로 나를 힐끔거렸다. 승진이가 날 감시하라고 시킨 게 틀림없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 큰돈을 썼다면서 집에는 아무것도 배달된 게 없다. 사기당한 게 아닌지 선생님들이 알 것 같아서 찾아왔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고 담임이 아까의 질문에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물었다.

  

  할머니는 통신회사에서 나오자마자 집으로 가서 마루 밑이며 장롱 서랍, 다락방 선반과 찬장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렇게 많이 샀으면 어디다 숨겨놓았을 텐데, 왜 안 보이냐?”

  “할매, 그건 눈에 안 보이는 거야.”

  “나 아직 백내장 안 왔다.”

  “그게 아니라, 만질 수 있는 물건을 산 게 아니라고.”

  “그럼 먹어서 다 없앴나?”

  “아니, 먹을 수도 없어.”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의 바늘이 툭툭툭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었을 때 실밥이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면……. 만질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그 큰돈을 주고 샀다는 거냐?”


  컴퓨터를 켜서 아이템 구매 목록에 들어가면 눈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설명해도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복잡한 화투 패는 다 짝을 맞추고 계산도 틀리지 않는 할머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세계니까.


  어른들은 게임 얘기만 하면 “그럴 집중력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가겠다”거나 “게임을 하면 쌀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 한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도 똑같은 거 아니냐고 따지면 그건 어른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거라고 변명한다.


 우리도 스트레스 받아서 하는 거라고 하면, 대답은 뻔하다. “어린 것들이 무슨 스트레스냐. 밥 먹여 줘, 재워 줘, 학원 보내 줘,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쉽지”라거나 “커 보면 그 시절이 좋은 줄 알 거다”라고 한다. 그럴 때 한 마디라도 덧붙였다가는 “가서 공부나 해!”, “어디 어른 말에 말대꾸야!”라고 할 뿐이다. 그러니 어른들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하면서 내가 불리할 때 할머니한테만 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학원도 하나 안 다니잖아. 학원비 썼다 생각하면 되지. 게임도 잘만 하면 억대 연봉 받는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다고. 내 미래에 할매가 투자한다 생각하면 되잖아.”


  할머니가 잘 모르는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큰소리를 치는 것.


  “내가 아빠도 엄마도 없이 사는 게 불쌍하지도 않아? 집에만 오면 외롭고 힘들다고. 이런 거라도 안 하면 친구들한테 놀림만 받고, 친해질 기회가 전혀 없단 말이야.”


  불쌍하고 가엾은 신세에 호소하는 것.


  할머니에겐 둘 다 먹히지 않았다.


  “내 오늘 여기에 사인하고 왔다.”


  다음 날,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냈다.


  “이게 뭔데?”

  “교장 선생님이 너 같은 애들 모이는 데라고 꼭 사인하라더라.”

  “나 같은 애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참가 신청서>


렐크 게임 중독 학생을 위한 위플러스캠프 참가자 모집!


인원 : 6학년 학생 열다섯 명

대상 : 학교와 가정에서 렐크 게임 중독으로 인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킨 학생

장소 : 교육 위탁 업체에서 선정한 특수 수련원

시기 : 여름방학 시작일로부터 약 3주간

교육 목적 :

게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미래 사회에 알맞은 인재를 양성한다


*주의사항 : 교육 기간 중 학부모와 면회 및 통화 금지!  

                (어떤 사유로도 중간에 퇴소 불가함)



  단정하고 차분하게 말하면서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글이다.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캠프다. 뇌를 네모나게 만들어서, 로봇처럼 생각하고 말하게 가르칠 것만 같다. 게다가 3주씩이라니!


  “공짜로 밥도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사람도 만들어 준다던데. 그게 29만 원어치는 될 거란다.”


  “할매, 나 안 가. 여름방학 때 할 일 많아. 그리고 나 이미 사람이야.”


  “네가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일단 승진이가 시킨 레벨 업을 완수해야 한다. 내가 이런 캠프에 가버리면 3주 동안 승진이와 연락도 끊기고, 승진이 아이디로 한정 아이템을 모을 기회도 사라진다.

  그럼 난 끝장이다.


  또 하나. 여름방학 때는 아빠가 잠깐 돌아온다. 큰소리치기와 불쌍한 척하기의 두 전략을 써서 아빠에게 얻어낼 것이 좀 있다. 그래픽카드를 교체해서 게임 하나를 더 깔아야 하고, 아빠 민증으로 아이디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할매 민증은 이미 써먹었는데 그걸로는 ‘영정’ 즉, 아이디 영구 정지를 먹었다. 상대 팀 애한테 욕 한번 했다고 바로 신고를 당했다. 시비 터는 건 그 애가  먼저 시작했는데.


  “방학 때 나 공부할 거야. 못 가. 안 가.”


  나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그때 뒷면에 적힌 작은 글씨가 보였다.


    보호자의 서명을 받은 뒤에는 어떤 사유로도 신청을 취소할 수 없음.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방학식이 열렸다. 교문을 나서는데 검은색 리무진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나와서 할머니의 사인이 있는 캠프 참가 확인서를 들이대었다.


  “만라초등학교 6학년 3반 이철봉 학생, 맞습니까?”

  “아닌데요.”


  두 남자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았다. 한 남자가 갑자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손을 잡자 다른 남자가 내 등 뒤로 가서 가방을 열었다.


  “뭐예요? 남의 가방에 왜 손을 대요!”


  악수를 청한 남자가 내 손을 놓지 않아 몸이 기우뚱했다.


  “6학년 3반 이철봉.”


  다른 남자가 가방에서 꺼낸 필통에 내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악수를 하던 남자가 나머지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네, 이철봉 학생 보호자 되시죠? 네네, 할머님, 저희 철봉이 잘 데려가서 교육하겠습니다. 네?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남자는 전화를 끊고 담임과 교장 선생님에게도 차례대로 전화를 걸었다. 내용은 안 들어도 뻔한 것 같았다. 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접고 지각을 일삼는 녀석이니 꼭 데려가라고 했을 것이다. 책상에 적어놓은 게임 아이템의 사용 순서와 가격, 각 레벨마다 궁극의 무기가 무엇인지 분석해 놓은 노트 같은 것을 들킨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어린이로 사는 건 이럴 때 제일 안 좋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게. 취소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는 게.

작가의 이전글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