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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21.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3화 : 닉네임 짓기

  닉네임 짓기



  고깔모자는 한 시간 동안 서로의 닉네임을 지어주고 친해지라는 숙제를 주었다. 이곳에서는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른다는 말에 모두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운이 쭉 빠졌다. 방에 컴퓨터가 없는 풍경이라니  세계가 멸망한 기분이 들었다.


  입소할 때 휴대폰과 보드게임, 카드에 큐브마저도 싹 다 압수당했다. 뭐라도 반복해서 두드리고 딱딱딱, 클릭하고 싶었다.


  컴퓨터 소리가 그립다. 전투가 격렬해질 때 심장이 멎을 것처럼 쏟아지는 폭파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총소리, 캐릭터들 특유의 더빙 음이 귓가에 맴돈다.


  특히 내가 주로 쓰는 무사 캐릭터인 ‘이순신’이 공격을 당할 때마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하던 말은 수천 번 들어서, 캐릭터의 표정과 쓰러지는 각도까지 다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다.


  냉각 팬 돌아가는 소리, 띵띵 거리는 채팅 알람 소리, 헤드셋을 끼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아주 크게 들리던 내가 과자 씹는 소리마저 듣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들리는 거라고는 먼 데서 천둥이 울리는 소리밖에 없다.


  아까 이곳에 올 때 보니 수련원은 표지판도 없는 아주 작고 외진 마을 깊숙한 곳에 있었다. 버려진 학교를 수리해서 만든 곳처럼 보였다. 마치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조용한 동네였다.


  수련원 뒤에는 엄청나게 험하게 생긴 바위산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마른 실개천에는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 따뜻한 본체가 정말 그립네.”


  먼저 입을 뗀 건 폭탄머리였다. 그 말에 나머지 넷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체가 달아오를 때의 그 온도. 공기를 따끈따끈하게 데우던 열기가 그리웠다. 마치 컴퓨터도 36.5도의 체온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난 정전기.”


  얼굴이 하얗고 통통한 남자애가 말했다. 모니터 앞에서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손끝을 찌릿하게 하던 정전기. 그 느낌이 뭔지 나도 안다.


  “손목에 파스 붙여 봤어?”

  “난 병원도 갔다아이가. 손목터널증후군이라 카더라.”

  “병원 안에는 왜 피시방이 없냐? 있으면 대박일 텐데. 나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렐크 한정 스킨 나온다 그래서 몰래 탈출한 적도 있어. 무단 횡단하다가 사고 날 뻔 했지.”


  검정 깃발 조, 일명 해골조에는 나, 나요셉, 김알지, 피묘석, 천전희가 들어왔다. 나와 폭탄머리 요셉이는 서울에서 왔고, 김알지는 의정부, 천전희는 대전에서 왔다. 묘석이는 꼭 여자애처럼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는데, 대구에서 와서 사투리가 특이했다.    


  우리 방에는 이층침대 두 개와 일층침대 하나가 디귿자로 놓여 있고 다섯 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남은 공간을 다 차지했다. 방문 맞은편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운동장과 나무,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는 텅 빈 동네의 썰렁한 모습이 전부였다.


  차라리 화성에서 사는 게 낫겠다.


  “…근데, 요셉이 너… 정말 마스터 렙이야?”


  천전희가 물었다. 내가 묻고 싶었던 게 그거였다. 그런데 나요셉 표정이 너무 안드로이드 같기만 해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요셉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게 가능한 거야? 내 말은, 어떤 버그도 없이? 다이아 이상은 현질도 소용없는 걸로 아는데.”

  “맞아. 화이트다이아부터는 그래. 아이템을 아무리 사도 그걸로는 레벨이 올라가지 않아. 무조건 전투 능력이지.”


  내 질문에 나요셉이 머리카락을 쓰윽 쓸어 넘기면서 대답했다. 신처럼 보였다. 머리 위에 금색 링이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렐크 게임의 마스터 렙을 직접 만나본 건 처음이었다. 그건 열세 살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레벨이다.


  우리는 회의 끝에 나요셉의 닉네임을 ‘요셉슈타인’으로 지어주고 조장으로 정했다. 빙어 낚시를 가서 뚫는 얼음처럼 두꺼운 안경 너머로 깨알같이 작은 눈이 웃었다. 눈이 너무 작아서 눈동자 대신 매직으로 찍은 점 하나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눈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뭔가 묘한 기분이 끓어올랐다.


  끊임없이 코를 훌쩍훌쩍 마시는 김알지는 ‘알거지’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그런 별명으로 불린다고 했다. 김알지는 그게 이름 때문인 줄 알지만 우리가 지켜본 바로는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알거지는 게임 얘기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저 계속 어딘가를 후비적거렸다. 손가락을 드릴 삼아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파고드는 취미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덥수룩하게 자라 귀밑으로 내려왔고 귓구멍에서 노란 딱지 같은 것이 후드득 떨어져서 어깨에 붙어 있었다. 머리를 긁적인 뒤에 손톱에 낀 뭔가를 앞니로 빼서 먹기도 했다.


  수련원에서 조별로 색깔이 다른 옷을 주었는데 각 깃발과 같은 색이어서 우리 조는 검정 셔츠를 받았다. 그래서 알거지의 몸에 있던 온갖 먼지나 딱지 같은 것들이 더 두드러지게 보였다.


  대구에서 온 피묘석은 ‘카더라’와 ‘아이가’ 중에 고르라고 하니 좀 더 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카더라’를 골랐다. 카더라는 삭발을 한 데다 눈썹이 엄청 짙고 쌍꺼풀 없이 긴 눈 때문에 호위무사처럼 보였다.


  천전히는 ‘천천히’처럼 들리는 이름 때문에 ‘슬로맨’이라 붙였다. 통통한 몸에 얼굴이 뽀얗고 한여름인데도 두 볼이 발그레했다. 그리고 닉네임만큼이나 천천히 움직이고 한참동안 뜸을 들였다가 말해서 답답했다. 하지만 수련원에 들고 온 가방이나 입고 온 옷에서 부티가 잘잘 흘러서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내 닉네임을 붙이는 순서가 되었다.


  “니는 아무 특징이 없노.”


  카더라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존재감이 없다. 올해 봄에, 만라초등학교로 전학을 올 때도 슬퍼해주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이철봉이 누구였지?’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투명한 물 같은 아이다. 어디에 담아야만 있는 줄 안다. 나는 입김 같은 아이다. 차가운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야 비로소 존재가 보이듯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다. 그래서 전학 온 첫날부터 친구를 사귀려고 애를 쓴 게, 하필 승진이네 눈에 띄어서 학교생활이 꼬인 것이다.


  “닉네임으로 그냥, ‘철봉’은 어때?”


  알거지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요셉슈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슬로맨이 천천히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찰나,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각 조장은 닉네임을 적은 명단을 관리실로 가져올 것.”


 그렇게 나는 그냥 ‘철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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