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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22.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4화 : 첫 번째 미션

  첫 번째 미션



  모두 체육관으로 모였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뒤여서 그런지 나무 냄새가 났다. 체육관에는 네트도, 공도 하나도 없었다.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달린 창문들 너머로 먹구름이 지나가고 쨍하게 맑아진 하늘이 보였다.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축구 같은 건 안 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세 명의 고깔모자 중에 가장 키가 큰 대장 고깔이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미션은 ‘농사’다.”


  아이들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뻔하네. 몸 쓰는 일 시키려고 저러는 거잖아. 하여간 어른들 생각은 다 똑같다니까.”


  흰 색 옷을 입은 천사조 애들 중 한 명이 투덜거렸다.


  “작년에도 이거랑 비슷한 캠프 가 봤어. 하루종일 뛰고 구르게 해. 줄넘기나 고무줄 놀이, 자치기, 널뛰기 그런 거나 시키고. 해보니까 더 싫어지던 걸.”


  ‘하드캐리’라는 닉네임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있던 무사조 애가 말했다. 


  “수련원 뒷마당에는 정사각형으로 된 세 개의 밭이 있다. 거기에는 각종 작물들이 있지. 많이 수확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농사를 게임처럼 즐겁게 시켜보려는 속셈이다. 땀 흘리며 일하는 게 즐거울 리가. 대장고깔이 마이크에 대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미션에서 1등한 조에게는 적립금 5만 원, 2등 조에게는 3만 원이 든 카드를 지급한다.”


  대장고깔은 그 카드로 곳곳에 있는 음료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기 들어 있는 모든 음료는 다 코코콜라였는데 색깔과 가격이 달랐다. 여기 오자마자 건물 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는데 가장 눈에 띈 게 그 자판기였다. 흔들어도 보고 손도 넣어봤지만 투명한 유리 너머에 있는 색색의 캔 음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전을 넣는 구멍도 없었다. 


  간식은 하나도 주지 않고 흔한 편의점조차 일절 없는 이곳에서는 오직 자판기만이 생명줄이라는 걸 모두 깨달았다. 

  그 안에 든 음료들을 생각하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러나 꼴찌를 한 조는!”


  웅성거리던 애들이 말을 뚝, 멈추었다.


  “0원 카드를 받는다!"


  끔찍한 소리였다.


  "오늘 저녁에 굶지는 않으나 식사를 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밥을 준다는 건지, 안 준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귀찮아. 그냥 대충 하자. 땀 흘리면서 움직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그래도 음료는 먹고 싶다!”


  고깔모자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볼수록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웃음이었다. 다들 돌아서려는 찰나, 고깔모자가 약을 올리듯 마이크에 대고 속삭였다.


  “세 개의 밭 어딘가에는 열쇠가 하나 있지!”


  아이들이 이제야 호기심이 생겼다는 듯이 고깔모자를 바라보았다.


  “그 열쇠로 본체를 넣어둔 수납장을 열 수 있다! 본체의 전원 버튼만 누르면 바로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세팅이 다 되어 있지. 이건 보너스다!”


  드디어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본체는 어디에 있는데요?”


  무사조의 누군가가 손을 들고 물었다. 


  “수련원 본관 건물 어딘가에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은 너희의 몫이다.”

  “치사하다.”

  “어떻게든 운동시키려고 작정을 했네.”


  다들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컴퓨터라는 말 한 마디가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컴퓨터를 쓰지 못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온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밥 먹을래, 컴퓨터 할래? 물으면 당연히 컴퓨터를 선택한다.  


  고깔모자는 그 열쇠로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것은 딱 30분뿐이라고 덧붙였다.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지덕지다. 만져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종이 울리자마자 검은 옷, 빨간 옷,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 뒤섞여서 달려나갔다.


  “힌트는 ‘성문을 여는 창’이다!” 


  뒤에서 고깔모자가 낄낄 웃으면서 외쳤다.


  작정을 하고 만든 듯 밭은 무지하게 컸다. 마을 전체가 온통 논밭밖에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금 전에 내린 비로 땅이 축축했다. 밭과 밭 사이에는 포대자루, 빨간 고무대야, 가위, 호미, 꽃삽, 대형 드라이버 등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 어떻게 사용하라는 말도 없었다. 


  “난 이런 거 못해.”


  슬로맨이 주저앉았다가, “앗! 차가워!” 하며 일어났다. 똥이 묻은 것처럼 엉덩이가 누레졌다. 슬로맨이 울상을 지으며 이리저리 바지를 돌려 흙탕물이 묻은 부위를 확인했다.


  “더러워!”

  “야, 슬로맨. 그냥 흙인데 뭐 어때.”

  “키보드에 세균이 더 많을 거다.”

  “뭐 그케 벌벌 떠노.”


  알거지만 빼고 한 마디씩 핀잔을 주었다. 하긴, 알거지는…… 깔끔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그럼 넌 일단 열쇠부터 찾아봐.”


  내가 슬로맨에게 말했다. 계속 울상만 쓰고 있어서 수확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괜히 애한테 귀티가 흐르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눈 뜨고, 잘.”


  넓은 밭 세 곳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하나 보이고 밭 테두리에 상추, 대파가 옥수수와 함께 질서 없이 심겨 있었다. 다른 조 아이들이 벌써 캐낸 것들을 보니 땅 속에는 양파와 감자, 고구마도 있는 것 같았다. 뿌리도 잎도 없는 걸로 봐서는 미션을 위해 대충 묻어둔 게 분명했다.


  다들 열심히 안 할 것처럼 말하더니 컴퓨터라는 말에 정신이 팔렸는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저마다 등을 돌린 채 쭈그리고 앉아 온 몸에 흙이 묻는 것도 모르고 땅을 파헤치고, 손닿는 것이면 아무거나 주워 담고 있었다.


  그때 요셉슈타인이 나를 돌아보며 웃더니 갑자기 윗옷을 벗었다.


  “옷 벗지 말라는 조건은 없었어, 안 그래?”

  “어? 어…….그렇긴 한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검은 색 셔츠를 벗자 그 안에 요셉슈타인이 원래 입고 있던 하얀 셔츠가 있었다. 


  “옷을 두 겹 입고 있었던 거야?”

  “조별 옷에는 무늬가 없잖아?”


  대답은 안 하고 뭘 자꾸 나한테 묻는 건지.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만 녀석이 왜 옷을 벗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카더라랑 너랑 둘이 작물을 캐고, 알거지는 다른 애들이 우리 것 못 훔쳐가게 감시하면서 대야에 담는 걸 맡아. 슬로맨은 열쇠를 찾고.”


  요셉슈타인이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랩을 하듯이 빠른 속도로 말했다.


  “니는?”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까?”


  요셉슈타인은 대답 없이 으쌰으쌰 몸을 풀더니, 하얀 셔츠를 입은 천사조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보호색을 띤 카멜레온처럼 요셉슈타인도 천사조처럼 보였다. 다들 쪼그려 앉아 있어서 금세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어졌다.


  “쟈 와 저라노?”


  카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천사조가 땅에서 파서 급한 대로 근처에 늘어놓은 채소들을 요셉슈타인이 슬금슬금 주워 담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애들은 정신이 없어서 옆 사람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두더지처럼 땅만 파고 있었다. 아무도 요셉슈타인이 무슨 조에 속하는지 따져보지 않았다.


  “역시, 슈타인은 슈타인 아이가.”


  카더라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허리가 아프고 햇볕에 등이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세 명의 고깔모자는 멀찍이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수첩에 뭔가를 기록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양파를 만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옥수수는 생각보다 잎도 가지도 억세고 단단했다. 시장에서 사온 아무 야채들이나 다 땅에 대충대충 파묻어 놓은 것 같았다. 


  굳이 이런 수고를 하다니. 고깔들도 참 이상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목표를 하나 주고, 아이들은 그 목표가 인생의 전부라도 되는 양 매달리고, 어른들은 팔짱을 낀 채 쉬면서 구경하는 그런 보물찾기.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낙이 될 만한 거라고는 자판기에 든 색색의 음료들과 컴퓨터밖에 없다. 식욕과 게임욕. 오로지 두 개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을 정도로. 


  땅에 손을 쑥 집어넣자 가지가 손아귀에 들어왔다. 라텍스 베개처럼 부드럽고 껍질이 반들반들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쥐고 있으니 순하고 어린 동물의 발바닥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엄마가 길에서 주워 와서 기르다가 데려간 고양이 치치가 문득 생각났다. 


  여행만 다니는 아빠나 집에서 기르는 것은 사람 빼고는 다 잡아먹는 건 줄로만 아는 할머니에게 치치를 맡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닌 치치를 선택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 보고 무책임한 히피라고 했고, 아빠는 엄마 보고 꽉 막힌 꼰대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아빠는 꿈과 자유를 찾아 철없는 도보여행가가 되었고, 엄마는 매일 10원 단위로 가계부를 쓰는 깐깐한 세무사에서 변한 게 없으니까. 엄마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일탈이 아빠와 결혼한 거라고 그랬다. 연말에 산더미 같은 일에 치여 잠시 멘탈 붕괴가 왔을 때, 거리 공연을 하던 아빠를 만나 그 여유로운 웃음소리에 정신을 놓았다고. 


  “그건 사실 ‘여유로움’이 아니라 ‘대책 없음’이었는데. ‘순수’한 게 아니라 ‘세상물정 모르는’ 거였는데. 어휴, 내가 내 발등을 찍었던 거지.” 엄마는 아빠에게 매달 양육비를 보내주는 조건으로 합의이혼을 하고 훌훌 떠났다. 


  하지만 아빠는 바로 그 양육비로 여행을 다니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이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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