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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25.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5화 : 성문을 여는 창

  성문을 여는 창



  “뭐 좀 찾았어?”


  말없이 푹 푹 땅을 쑤시고 여기저기 둘러 보고 있던 슬로맨에게 물었다. 우리는 슬로맨에게 “야, 호미 좀!” “삽!” “바구니!” “물티슈 좀 가져 와!”하며 심부름을 시켰다. 슬로맨은 열쇠를 찾으러 다니면서 우리 심부름도 하느라 땀 범벅이었다.


  “밭이 너무 넓어.”


  슬로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지친 얼굴이었다.


  “힘을 다 빼서, 게임 생각을 못 하게 하는 전략인 걸까?”


  슬로맨이 속삭였다.


  “그럴지도 몰라. 어쩌면 밥에 수면제를 탈지도 몰라. 게임 생각도 못 하고 잠 들게 하려고.”


  알거지가 말했다.


  “근데 깃발 색깔도 그렇고, 해골, 천사, 무사로 조를 나눈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 게임 중독 캠프인데 자꾸 게임 생각나게 하잖아.”


  내가 애들에게 말했다.

  아까부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런 캠프를 처음 와 봤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룰로 진행되는 건지 알지 못한다는 게 찜찜하고 답답했다.


  게임에서는 내가 상대팀 전력을 파악하고 전투 전략을 짠 뒤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고깔들의 전력도 궁극기도 분석할 수 없으니 힘이 빠졌다.  


  “일부러 그러는 거겠지.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사탕을 많이 먹는 아이한테 일부러 사탕을 엄청나게 많이 줘서 그걸 끊게 하는 치료 기법이 있대. 그럼 사탕에 질려서 안 먹게 된다나 봐. 그래서 우리한테 게임을 생각나게 하는 뭔가를 자꾸 보여주고 질리게 만드는 거 아닐까?”

  

  슬로맨이 골똘히 생각한 끝에 말했다. 그런 전략이라면 우리에게 게임을 24시간씩 억지로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게임 고문은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게임에서 본 적이 없는 존재가 있었다.


  “근데, 캠프 관리자들은 왜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거지?”


  그때 스윽, 요셉슈타인이 앉은걸음으로 다가왔다.


  “고깔은 화이트다이아 이상의 레벨에서 전투할 때 비밀 채팅창으로만 나오는 세 명의 요정이야.”


  요정이라니. 사각턱과 우락부락한 근육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요정들이 뭘 하는데?”


  “진실과 거짓과 농담을 상징하는 요정들이지. 마법사들처럼 소환해서 전투에 대한 충고를 들을 수 있어. 요정을 딱 세 번 소환할 수 있는데, 상대팀 전력이나 현재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종류, 약점 같은 걸 물어볼 수 있어. 세 번의 대답 중에 하나는 백퍼센트 진실이고 하나는 백퍼센트 거짓말이고 하나는 농담이야. 그걸 잘 구별해서 전투를 해야 되는 거지.”


  “머리 아프겠다. 역시 아무나 그 레벨에서 노는 게 아니네.”


  화이트다이아 레벨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익숙하지가 않았던 거다. 게임방에서도 그런 레벨의 고수는 본 적이 없고.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경기에서도 요정들은 나오지 않는다.


  “챔피언전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묻자 요셉슈타인이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그 정도 고수들은 상대팀 전력을 다 꿰고 있어야 하니까! 굳이 요정의 힘을 빌려 물어보는 게 중계되면 얼마나 창피하겠냐? 거짓말과 농담을 걸러내야 하는 것도 생각보다 까다로워. 거의 피시방 용인데 진짜 잘 하는 애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안 써. 아마 다음 렐크 버전에서는 고깔들이 제일 먼저 사라질 거야.”


  “그건 그렇네.”


  슬로맨이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요셉슈타인을 보았다. 그래서 한번도 고깔들을 본 적이 없었던 거였다.

  요셉슈타인이 훔친 양파를 우리 대야에 쏟아 부으면서 중얼거렸다.


  “성문을 여는 창…….그게 힌트였지.”


  알거지는 불안한 얼굴로 귀를 파기 시작했다. 모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렐크 게임의 최종 목표는 상대방이 쌓아놓은 성으로 들어가서 우리 팀의 깃발 세 개를 꽂는 것이다. 깃발을 꽂자마자 초콜릿 빛 성이 무너져 내리면서 게임이 끝난다.


  성에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천사 종족은 하늘 길로 날아서 간다. 무사 종족은 걸어서 지상으로 가고, 해골 종족은 지하 세계를 통해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세 사람이 한 팀이고 각각의 종족에서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서 움직이지만 성문을 열 때만큼은 반드시 세 종족이 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천사 종족의 날개와 무사 종족의 창과 해골 종족의 얼굴을 합친 다음…….


  “성문의 손잡이에는 세 잎 클로버 표시가 있지. 그걸 창끝과 맞춰서 오른쪽으로 돌리면 열리는데.”


  “게임에서는 좀 큰 드라이버처럼 생겼어.”


  그때, 슬로맨이 갑자기 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밭과 밭 사이로 달려갔다. 우리가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달려가서 이것저것 집어오던 장소였다. 슬로맨은 단번에 길쭉한 뭔가를 집어 들고 다시 뛰어왔다.


  “그건 뭐야?”


  “내가 아까 봐 둔 거야. 저런 걸 왜 저기 뒀나 싶었는데.”


  슬로맨이 천천히, 손에 쥔 것을 들어 올렸다. 그건 날이 20센티미터쯤 되는 대형 드라이버였다. 손잡이에는 마치 중세시대에 기사들이 쓰는 창처럼 손을 넣을 수 있는 빈 틈이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클로버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었다. 우리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찾았다!”


  그때, 천사조의 누군가가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천사조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었다. 당근에 박혀 있던 열쇠가 햇볕에 번쩍였다. 평범하게 생긴 열쇠였다. 세 고깔모자가 일제히 그 아이를 바라보는 사이, 나는 드라이버의 손잡이를 재빨리 돌려서 분리했다. 밭이랑에 던지자 카더라가 발끝으로 흙을 툭툭 차서 손잡이를 묻었다. 나는 둥근 날만 주머니에 넣었다.


  슬로맨은 우아한 몸짓으로 냅킨을 뽑아 입을 닦았고 알거지는 손가락으로 자꾸 귀를 팠다. 맞은편에 앉은 무사조 아이들이 알거지를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요셉슈타인이 훔쳐 온 채소들 덕분에 우리가 압승을 거뒀다. 무사조는 2등, 천사조는 꼴찌였다.

  천사조 애들은 아주 작은 접시를 하나씩 받았다. 접시 위에는 알약 모양, 젤리 모양, 스틱 모양 등의 여러 영양제들이 놓여 있었다.


  고깔모자가 즐거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타민A, 비타민C, 칼슘과 미네랄, 단백질 캡슐과 탄수화물까지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완벽한 식단의 영양제들이다. 물과 함께 먹도록.”


  굶지도 않으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닌 천사조 애들의 식사는 3분 만에 끝났다.   

  천사조가 먼저 일어나 급식실 밖으로 나갔다. 그 아이들 중 고약한 표정의 ‘엄크’가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엄크는 우리에게 열쇠를 흔들며 약을 올렸다.   우리는 단체로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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