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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27.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7화 : 새로운 셔틀의 시작

  새로운 셔틀의 시작




  전학 온 첫날이 떠오른다.

  나는 교탁 옆에 엉거주춤 서 있다. 교실 맨 끝에 앉아 있는 승진이와 우연이, 정현이가 눈에 띈다. 선생님 앞에서도 껄렁껄렁하게 몸을 흔들면서 자리에 앉아 있어서 한눈에도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애들인게 분명해 보인다.


  “자기소개 해 보자, 철봉아.”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철봉입니다.”


  아무 반응이 없다. 조용하다. 흔하게 생긴 얼굴에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뭐 잘하는 거나, 친구들이 철봉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것도 같이 소개해보는 게 어떻겠니.”


  내가 잘하는 거? 그런 건 없다. 공부도, 운동도, 노래도 평균이다. 365일 내내 도보여행에 빠져서 이혼 당한 아빠가 좀 특이하지만 그런 소개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서도 재미없는 학교생활을 하기는 싫고……. 그래, 어차피 나를 아는 애들도 한 명 없는데 거짓말을 좀 보태야겠다.


  “저는 게임을 잘 합니다. 지난 학교에서 렐크 순위로 전교 1등이었습니다. 특히 이순신 캐릭터로…….”

  “아니, 그런 거 말고 다른 건전한 취미 활동은 없을까?”


  선생님이 당황한 듯 말을 끊었다.


  “오직 성문만을 열 뿐입니다.”


  승진이네 무리가 파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애들이 조심스럽게 키득거렸다. 내가 한 말은, 렐크를 하는 사람만 알아듣는 말이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첫날부터 친구들이 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세 명이 내 책상을 둘러쌌다.


  “너희 학교 렐크 탑이었다는 거, 진짜야?”


  씨름부 아이처럼 몸집이 큰 승진이가 물었다. 툭 불거져 나온 뱃살이 걸을 때마다 출렁였다. 곱슬머리 우연이와 팬더처럼 눈 밑이 검은 정현이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잘 나가는 애들 같았다. 이런 애들이랑 친해져야 학교생활이 편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는 무리수를 뒀다.


  “어. 진짜야. 완전 게임 천재라 불렸지.”


  나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전적 확인해 줄 수 있어?”


  그거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사촌형이 군대 가기 전 같이 피시방에 가서 형 아이디로 렐크를 배웠기 때문이다. 형은 “나는 이제 철이 들었다”면서 모든 게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내게 넘기고 갔다. “이 정도 레벨이면 어디 가서 기죽지는 않을 거”라며 내내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형이 쌓아 올린 화려한 레벨과 승리의 횟수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사촌형은 프로게이머를 키우는 회사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게임은 취미로만 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단칼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하여간 혼자 멋진 척은 다 했다. 어쨌든 난 형 덕분에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승진이 무리와 함께 피시방에 가서, 사촌형의 아이디로 접속해 전적을 확인해 주었다. 689전 641승 20무 28패. 승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니 친구가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 집에 있는 컴퓨터가 사양이 더 좋아서, 굳이 피시방에서 돈 낭비 안 해. 전적 확인했으니 이만 가 볼게.”


  게임을 할 돈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 실력이 들킬까 봐 쿨한 척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앞으로도 렐크에서 욕 하다가 영구 정지를 먹었다거나 이제 흥미가 없다고 하면서 렐크 근처에도 안 가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피시방에 가게 되면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임인 자동차 경주 게임을 하면 되고.


  내 생각이 토끼 꼬리보다 짧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그 순간에는 승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연이와 정현이도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친구 사귀는 게 이렇게 쉽다니. 투명인간 이철봉의 흑역사는 다시 쓰일 것이다!


  승진이가, 고등학생 형들도 건드리지 않는, 만라초등학교 전체 일진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꿈속에서 나는 계속 전학 온 첫날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이철봉입니다. 잘하는 취미 없을까? 저는 독서가 유일한 취미입니다. 저 멀리서 승진이가 큰소리로 묻는다. 렐크는 어때? 잘해? 나는 순진무구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렐크가 뭐야? 처음 듣는데…….


  승진이는 매일매일 쉬는 시간마다 내게 와서 게임 이야기를 했다. 이순신이 궁극기 쓸 때 말야, 적팀 무사조에서 타이푼 캐릭터가 태풍의 눈 궁극기를 쓰면 용이 뿜는 화력을 반으로 낮출 수 있지? 해골조에 드라큘라 캐릭터는 망토 아이템을 사는 개수에 제한이 없어? 가브리엘 캐릭터는 너무 방어력이 약하지 않냐? 등등.


  그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딴소리를 하거나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승진이가 내게 말을 걸 때는 우연이와 정현이 말고는 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음에 좀 드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한 번도 말을 걸어볼 짬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급식도 승진이네 무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는 주변의 어떤 아이도 수다를 떨지 않았다. 고요한 사막에 뚝 떨어진 운석 조각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었다.


  “너, 부캐 좀 키워라.”


  전학 온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우연이가 내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뭐?”

  “승진이 부캐 좀 키우라고. 아이디랑 비번 알려줄 테니까.”

  “내가 왜?”


  내 질문에 우연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따라 웃는 척했다.


  “너 아직도 승진이를 모르는구나?”

  “뭘 몰라. 우린 친구지.”

  “친구?”


  우연이가 검지에 침을 묻히더니 그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찍고, 맛을 봤다.


  “이 자식이 맛이 가고 있구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마에 묻은 침을 슥 닦았다.


  “렐크 이제 할 만큼 해서 좀 질리거든. 부캐 같은 건 취급하지 않고.”


  나는 아무것도 눈치를 못 채고 끝까지 센 척을 했다.  


  내 진짜 실력은 레드8이었다. 사촌형에게 잠깐 배운 기술이 전부였다. 애들이 워낙 렐크만 하니까 그 게임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는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자동차 게임이 더 좋았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절벽을 뛰어넘고 펭귄을 피하고 빙하에 올라 바다 위를 질주하는, 내 또래 남자아이들은 유치해서 거의 안 하는 게임이었다.


  그날부터 지옥의 문이 열렸다.


  우연이는 급식시간에 내 밥에 물을 붓고 반찬을 섞어 못 먹게 만들었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행동했다. 승진이가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걔 옆에 앉으면 나는 ‘순삭’,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소시지나 돈가스 반찬은 승진이가 가져가서 먹었다. 정현이가 내 젓가락을 빼앗아서 숟가락만으로 쫄면을 먹기도 했다. 실내화 속에 돌멩이가 든 날은 그나마 편안한 하루에 속했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압정을 치워야 했으니까.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승진이네 무리는 다시 다정해졌다.


  나는 공식적인 ‘게임 셔틀’이 된 것이다.


  그 뒤, 숙제를 할 시간도 줄여가며 승진이의 아이디로 접속해 레벨을 올려주어야 했다. 나는 게임을 잘하는 축에 들지는 않았다. 뭐든 보통 수준인 아이니까 게임이라고 크게 다를 리가 없는 것이다.


  승진이는 저녁마다 SNS의 무료 통화 기능으로 전화를 걸어 게임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연속으로 지기라도 하면 다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기라고. 알아 들었어?”


  승진이는 어떤 수를 써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승진이의 닉네임은 ‘고고마스터렙’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가야 이 족쇄가 풀릴지 알게 되었다.    


  매일 렐크의 전략을 공부하고, 게임 방송을 보고, 다른 게이머들이 분석해놓은 자료를 읽었다. 사촌형 아이디로 아이템 종류를 파악한 뒤 다시 내 아이디로 전략을 시험해보고, 승진이 아이디로 접속해 전투를 했다. 주말에는 하루에 열한 시간씩 게임을 했다.


  어차피 승진이네 무리 말고는 친구도 없고, 날 말려줄 부모님도 없으니까 게임을 멈춰야 할 이유도 없는 셈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꿈속에서도 게임을 하게 되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만 둘 수 없었다.   이제는 멈추고 싶지도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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