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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30.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8화 : 모두가 잠든 밤에

 모두가 잠든 밤에




  운동장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커다란 잎을 펄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두운 방으로 달빛이 들어왔다가 또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시골 동네의 밤은 너무 깜깜해서 달빛이 플래시처럼 불을 켰다 껐다 하며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다.


  벽에 붙은 약도를 보면서 건물의 구조를 익혀 두었다. 수련원 본관은 3층까지 있고 계단은 건물의 중앙에 있다. 1층에는 공동 샤워실과 해골조, 무사조 방들, 2층에는 관리실, 보건실, 천사조의 방, 3층에는 시청각실과 도서실, 개방되지 않은 몇 개의 방들이 있다.


  우리 방은 1층의 계단 바로 옆에 있고 무사조는 1층 왼쪽 복도 끝에, 천사조는 우리 바로 윗방인 2층의 계단 옆에 있는 방을 쓴다.


  나는 주머니에서 드라이버의 날을 꺼냈다.


  “정말 이게 열쇠가 맞을까?”

  “구멍에 넣어보면 알겠지.”


  요셉슈타인만 빼고, 모두 코코콜라 한 캔씩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걔는 탄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혓바닥 아픈 음료를 왜 먹는 거냐?”하며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를 싫어하다니.


  층층마다 놓인 시퍼런 색의 커다란 자판기는 바깥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자판기의 초록 화면에 카드를 대면 ‘해골조’라는 이름과 함께 무엇을 몇 캔씩 먹었는지, 남은 금액이 얼마인지가 표시되는 게 특이했다.


  다른 조 방을 감시하기로 했던 카더라가 들어왔다. 카더라는 어두운 방에 들어오느라 현관과 방을 가르는 턱에 발이 걸렸다.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더라는 놀라운 반응 속도로 두 팔을 탁 벌리더니 균형을 잡았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컴컴하데이.”


  조용한 밤에 들으니 카더라의 사투리가 더 올록볼록한 느낌이었다.


  렐크에도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죽이니껴!”, “퍼뜩퍼뜩 움직이라 안 캤나!”, “깃발 꽂으라 했데이.” 이순신 장군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남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슈~”라고 외치면 어떨까. “그래유~”하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얼른 본체가 있는 장소를 찾아서 이순신 캐릭터로 전투에 나가고 싶다. 황금 갑옷을 입고 독수리 화살과 드래곤 기술을 쓰고 싶다. 황금 갑옷 아이템을 사면 1분 동안 모든 공격으로부터 이순신을 방어할 수 있다.


  독수리 화살은 딱 세 번 쏠 수 있는데, 시위를 당기면 평범하게 생긴 화살이 날아가다가 갑자기 독수리로 변한다. 엄청나게 날카롭고 긴 발톱으로, 스파이 무사를 찾아낸 뒤 낚아채 하늘 멀리 날아간다.


  이순신 캐릭터가 최후에 쓸 수 있는 궁극 기술이야말로 게임의 압권이다. 궁극기르 쓰려면 알트 키와 에프7을 동시에 눌러야 한다. 이순신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거대한 용으로 변하는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지게 멋지다.


  용이 날아오르면 주변이 온통 회오리치는 물바다로 변해서 적의 지하통로를 잠기게 한다. 거세게 파도가 치는 소리,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화면과 둥둥둥 북이 울리는 소리가 뒤섞여서 마치 내가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든다. 얼른 컴퓨터를 켜고 이순신을 보고 싶다.


  진짜 멋지게 한 판, 해보고 싶다. 아아아!


  “출발하자.”


  요셉슈타인의 비장한 목소리에 공상이 날아갔다.

  벌써 밤 12시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주의사항을 몇 가지 들은 뒤 방으로 돌아와 미리 잠을 잤다.

  수련원의 모든 불이 꺼지고 비상구 표시등만 초록빛으로 빛났다. 우리 조의 옷이 검은 색이어서 다행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클로버 모양의 도톰한 홈을 만져 보았다.    


  오늘 밤, 성문을 열 수 있을까?


  주머니에 든 것이 진짜 열쇠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열쇠를 찾지 못한 척 연기하기로 했다. 위치만 확인하면 매일 밤 순서를 정해 몰래 컴퓨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1층과 2층은 둘, 셋씩 짝을 지어 수색하고 3층은 마지막에 같이 살펴보기로 했다. 나와 알거지는 1층을 맡았다.


  “이거.”


  요셉슈타인이 빨간 손잡이가 달린 손전등을 건넸다.


  “어디서 났어?”

  “여긴 수련원이잖아. 당연히 비상탈출용 손전등이 있어야지.”

  “역시 슈타인.”


  카더라가 엄지를 척, 올렸다.


  수련원 본관은 일자형으로 된 건물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운동장이 보이는 유리창이 죽 달렸고 오른쪽에는 여러 개의 방들이 있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방들은 하나하나 열어보고 확인했다.


  신발장과 옷장 안까지 샅샅이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땀 젖은 셔츠가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손짓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알거지가 고개를 끄덕했다. 2층으로 가자 카더라가 두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였다. 알거지는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자꾸 몸을 긁었다. 요셉슈타인이 3층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조용조용히 계단을 오를 때였다. 위쪽에서 탁! 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동작을 멈췄다.


  손전등을 껐다. 다다다다, 소리가 이어졌다.  


  맨 앞에 있던 요셉슈타인이 갑자기 뛰어 올라갔다. 거친 숨소리가 이어지고 투닥투닥 하며 뭔가를 쓰러뜨리는 소리에 이어, 작은 금속이 바닥에 챙!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위로 올라갔다.


  3층에는, 아까 식사시간에 열쇠를 흔들며 우리를 약 올렸던 천사조의 엄크가 주저앉아 있었다.


  뾰족한 턱에 귀가 커서 연잎을 뺨에 붙인 요괴 같았다. 요셉슈타인이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주워들었다. 당근에 박혀 있었던 그 열쇠였다.


  “너 혼자 컴퓨터 차지하려는 거지? 반칙이잖아.”

 

  내가 쏘아붙였다.


  “그러는 너희는 왜 이 새벽에 몰래 다니고 있는 건데?”


  엄크가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드라이버를 꼬옥 쥐었다. 요셉슈타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우린… 압수해 간 휴대폰이랑 게임기가 있는 곳을 찾고 있었어.”


  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거짓말이었다.  


  “그런 건 관리실에 있어. 박스를 옮기는 걸 봤어.”


  엄크가 말했다.


  “그럼 본체도 관리실에 있어?”

  “본체는 다른 데 있지. 그런데 이 열쇠가 안 맞더라고. 내일 자유시간에 밭을 더 파볼 생각이야.”


  모두 숨을 멈추었다.


  “본체가 어디 있는지 넌 알고 있다고?”


  슬로맨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척 어물쩡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그런 건 알아서 뭐해.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알거지가 은근슬쩍 말리는 시늉을 했다.


  “눈앞에 컴퓨터가 있는데도 열쇠가 없어서 못 쓰다니, 완전 그림의 떡이네.”


  내가 짜증이 난 척 투덜거리자 엄크가 우릴 보며 피식 웃었다. 전략이 먹히는 것 같았다.


  “그럼 한번 구경이나 가봐. 어차피 쓰지도 못할 거. 대신 날 본 건 비밀로 해 줘.”


  엄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3층 복도 왼쪽 맨 끝, 청소도구실이라 적힌 창고야.”

  “그래? 키보드 한번만 쓰다듬어 보고 가야겠다.”


  알거지가 말했다.


  “그러든지.”


  엄크가 콧방귀를 뀌었다.


  청소도구실은 창문 하나 없는 좁고 작은 공간이었다. 불을 켜는 스위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비추자 백만 년은 떨어져 있었던 것만 같은 그리운 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보드와 본체를 넣어두는 곳이 따로 있는 평범한 컴퓨터 책상 위에 모니터가 있었다. 선반처럼 생긴 것을 앞으로 당기자 키보드가 나왔다. 너도나도 손을 내밀어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나는 알트키와 에프 7을 반복해서 눌렀다. 시커먼 모니터 화면에 당장이라도 이순신 장군이 등장할 것만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드라이버를 꺼냈다. 카더라가 손전등으로 본체의 열쇠구멍을 비추었다.   

  어디선가 두구두구두구, 하고 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드라이버의 앞쪽 끝을 열쇠 구멍에 넣자 모양이 딱 맞았다. 순간, 그냥 여기서 멈춰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모두의 간절한 눈빛이 느껴졌다. 본체를 넣어둔 수납장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내 탓일 것만 같았다.


  “어서 해.”


  슬로맨이 부추겼다.

  눈을 딱 감고 오른쪽으로 드라이버를 돌렸다.


  딸깍.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소리 없이 환호를 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숨을 죽인 웃음소리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퓌쉬쉬 흘러나왔다.


  동그란 버튼을 누르자 파란 불이 들어왔다. 띡, 소리를 내며 모니터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팬이 돌아가는 소리, 모니터에서 나는 지이잉 소리가 들리면서 파란 바탕의 윈도 화면이 나왔다. 모두의 얼굴에 푸르스름한 빛이 번졌다. 빠른 부팅 속도로 봐서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벽에 있던 뭔가에 팟, 하고 빨간 불이 들어왔다.


  30:00

  숫자였다.

  29:59

  29:58

  29:57


  쳐다볼수록 벽시계처럼 생긴 판에 적힌 숫자가 달라졌다.


  “아!”


  모두가 깨달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30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급히 본체의 버튼을 눌러 컴퓨터를 꺼보았다. 그러자 숫자도 멈췄다.


  “폭탄도 아니고 이게 뭐야.”


  슬로맨이 실망한 듯 말했다. 열쇠만 있으면 계속 몰컴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짠돌이 고깔들.”


  카더라가 투덜거렸다.


  “게임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렐크 정도의 용량은 다운로드 하고 설치하는 데만 10분은 걸리잖아.”


  요셉슈타인이 말했다. 몇 초만에 그걸 파악하다니, 역시 마스터 렙은 다르다. 렐크는 워낙 액션이 화려해서 웬만한 사양의 컴퓨터에는 깔리지도 않는다. 렐크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새로 사는 애들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에 자기 수준에 맞는 팀원과 연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상대팀 애들까지 총 여섯 명이 온라인 대기실에 모여야 하는데 애들이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 시간에는 비슷한 레벨끼리 모이기가 더 힘들다.


  또, 세 종족 중에서 각각 자기가 선호하는 종족을 하나씩 골라야 하는데 같은 팀의 다른 애가 똑같은 종족을 선택하면 서로 양보하고 조정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다시 각 종족마다 스무 개나 되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걸 고르고, 기본 아이템을 장착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렐크는 발암게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막상 게임을 시작해도 ‘엄크’를 당하면 힘들게 모인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게임 이용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바로 그 엄크이다. 엄크는 몰래 게임을 하는 동안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열어서 잔소리 폭격을 할 때 이용자가 급히 컴퓨터를 끄고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 캐릭터는 좀비처럼 서서 공격도 방어도 소용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그걸 ‘탈주’라고 한다. 엄크를 당해서 탈주한 애가 있으면 그 게임은 이길 수 없는 승부가 된다. 성문을 열어 깃발을 꽂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탈주를 한 아이디는 신고를 당해서 한 달씩 이용 정지를 당하는데다 레벨을 올리는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다. 게임을 끝까지 못 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금쪽같은 30분을 렐크에 쓸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작전상 후퇴다.

 

  “아, 속상하다.”


  슬로맨이 말했다.


  “기분도 꿀꿀한데 코코콜라 하나 마실까?”


  내 말에 슬로맨, 알거지, 카더라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코코콜라가 몸 안으로 들어와 톡톡 터지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나아졌다.


  “무슨 색?”

  “당연히 시커먼 걸로.”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잔액이 든 카드를 들고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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