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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Dec 13.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9화 : #카더라 이야기

  #카더라 이야기


  기억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날고 있었다.


  마치 그랑쥬떼(발레 동작에서 두 다리를 일자로 펼치며 뛰어오르는 것)를 하는 기분이었다. 전봇대마다 팽팽한 전깃줄이 하늘에 좍좍 줄을 긋고 있었다.

  뭔가 허전하고 간지러운 느낌. 갑자기 까매진 하늘. 그게 전부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닷가에서 장난을 칠 때 하듯이 몸의 반을 모래 속에 묻어 놓은 줄 알았다. 허리에 힘을 주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두 다리에 모두 석고로 깁스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하기로 한 어린이 무용 공연은? 나는 벌떡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팔로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엄마! 엄마! 소리를 지르자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엄마는 내 얼굴에 볼을 부비며 감사하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내 다리 와 이카는데?”

  “다리사 괘안타. 니가 무사한기 중요하지.”

  “뭐라카노? 내일 공연있다!”

  “묘석아, 잘 들으래이.”


  공연은 사흘 전에 끝났다고 했다. 그럴 리가. 내가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무용 영재원에서 나온 게 토요일인데. 내일 아침 일찍 공연장에 가서 리허설을 하기로 했는데. 만화도 아니고 어떻게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수요일이냐고.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건 그때뿐이었다. 그 뒤로는 반년이 나무늘보처럼 지나갔다. 열두 살에 기저귀를 다시 찼다. 울퉁불퉁 못난 발가락에 새 살이 돋았다. 늘 나자마자 빠지곤 했던 엄지발톱도 분홍빛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런 건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무릎에 박은 철심을 제거하고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는 무용의 ‘미음’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어린이 무용 영재단의 친구들이 면회를 오는 것도 막았다.


  나는 다시 무용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몸으로 알았다.

 세 살 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해 현대 무용을 익히기까지,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다했다. 남자가 무슨 무용이냐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대해도, 무용복이 너무 몸에 딱 달라붙는다고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아도, 나는 춤을 추는 게 좋았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었다.


  내 몸으로 우아한 선을 만들고, 그 선을 가지고 노는 게 행복했다. 발레 학원에서도, 무용 영재원에서도, 나는 유일한 남자아이였다. 나는 발끝과 손끝에 힘을 모을 줄 알았고, 어깨선과 허벅지선을 생각하면서 점프할 줄 아는 애였다. 선생님들은 내가 한국을 이끌어 갈 천재적인 소년 무용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문에도 내 기사가 여러 번 실렸다.


  ‘한국의 무용계를 책임질 천재 유망주, 피묘석!’


  이렇게 쓸모없는 몸이 되어 버릴 줄 몰랐다. 오랫동안 몸을 써 온 사람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사뿐하게 날아오르고 힘 있게 착지하고 우아하게 멈춰 있는 것이 안 될 거라는 걸.


  예술중학교 누나들마저 구경하러 오던 내 연습 시간, 발가락 사이에 생 소고기를 붙이고 춤을 추던, 연습벌레인 나는 그날 이후 사라졌다.


  게임을 알게 된 건 다른 병실에 있던 중2 형 때문이었다. 그 형도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쳐 입원했는데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부터는 휴게실에서 노트북을 갖고 놀았다. 할아버지 말고는 찾아오는 가족도 없었다.


  “축구 선수 될라 캤는데.”


  나는 그 형이 하는 게임을 물끄러미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힘을 키우고 나쁜 놈을 부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갔다.


  “형아, 나도 좀 갈쳐주면 안 되나?”


  “치아라. 얼라들 하는 게임 아이다.”


  며칠 뒤에 나는 형보다 더 좋은 노트북을 갖고 휠체어를 탄 채 옆에 자리잡았다. 울고불고 하던 내가 드디어 뭔가에 취미를 갖나 보다 싶었던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양 좋은 노트북을 사준 것이다.


  그렇게 렐크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할 일이라고는 게임밖에 없었다. 형은 내가 게임을 배우는 속도에 놀랐다. 집중력과 체력 하나는 원래부터 강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레벨을 올렸고 형을 따라잡았다. 무용 말고도 재미있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근육을 다칠까 봐 축구도 농구도 해본 적이 없었고 자세 나빠질까 봐 남들 다 하는 게임 한번 한 적이 없던 내게,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다시 학교에 가게 되자, 엄크니 피딸이니 만렙이니 하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평소 나를 놀리기만 했던 애들과 순식간에 친해졌다. 가끔 예술중학교 교복을 입은 누나나 형들이 길에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어차피 내가 다시 갈 수 없는 세계였다. 내 몸은 레벨 업이 되지 않았다. 부활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디에도 메디크는 없었다.   


 오직 렐크의 세계 안에서만 나는 날고 뛰고 인정받았다.



  #게임중독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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