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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Dec 24. 2021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10화 : 코코콜라 교육

  코코콜라 교육


  수련원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본체 열쇠는 딱 두 번만 썼다. 돌아가면서 시간을 나누어 쓰기로 했다. 

  알거지가 먼저 컴퓨터를 켰다. 그 아이는 소중한 시간에 노래만 들었다. 김광석이라는 아저씨가 부른 노래였다. 우리는 1분 1초가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노래 따위에 컴퓨터를 사용하다니. 


  그 다음으로는 슬로맨이 사용했다. 슬로맨은 다섯 개의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눈이 열 개라도 되는 듯이 한꺼번에 보았다. 그중 하나는 렐크 게임을 해설해주는 동영상 사이트였다. ‘토끼몰이’와 ‘부처멘탈’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두 사람이 붙은 올해 렐크 챔피언 결승전의 인기 장면이 나왔다. 


  인기 프로게이머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이머인 부처멘탈은 나처럼 이순신 캐릭터를 주로 쓴다. 같은 캐릭터를 쓰는데도,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서 볼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진다. 부처멘탈이 패하기 직전에 용 궁극기를 쓰면서 역전할 때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언제쯤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벽에 걸린 숫자판은 이제 18:00에 멈췄다. 마치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은 아쉬운 시간이었다. 


  언제쯤 다음 미션을 줄까? 이번에도 이기면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줄까?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할 자신이 있는데. 모두 다음 미션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일주일은 약을 올리듯 평범하게 지나갔다. 소나기가 몇 번 쏟아졌고 잠깐 시원해졌다가 쨍하게 더운 오후가 반복되었다. 평범한 식사가 끝나면 시청각 교육이 이어졌다. 


  고깔들은 ‘게임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자주 보여주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가 렐크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동영상이었다. 드라큘라와 가네샤가 지하통로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면 모두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집중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절대 중독된 아이일 리가 없었다. 드라큘라가 장착한 회색 망토 아이템은 가네샤의 코끼리 코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즙이 닿자마자 증발되기 때문이다. 가네샤와 싸울 때는 황동 망토를 사야 한다. 중독될 정도로 게임을 많이 한 애가 그런 기본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주인공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신나게 대화를 했다. 우리가 재미있어해서 그런지 고깔들은 비슷한 애니메이션을 반복해서 틀어주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주인공이 게임을 하는 장면마다 콜라를 마시는 모습이 나왔다. 코코아를 탄산음료와 섞어서 만든 ‘코코콜라’였다. 콜라의 뚜껑을 뽁, 하고 따는 소리와 싸아아- 하며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시원한 소리, 통통 튀는 신나는 음악이 같이 나왔다. 시청이 끝나면 고깔모자들이 설문지 같은 걸 줬다. 


  거기엔 ‘코코콜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게임을 할 때 어떤 음료를 몇 회씩 먹습니까?’ ‘동영상을 보는 동안 주인공이 코코콜라를 몇 번 먹었는지 기억 납니까?’ 같은 질문들이 있었다. 우리가 설문지에 체크하면 고깔들은 1회용 음료 카드를 주면서 “음료를 먹고 싶은 사람은 지금 먹어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럼 모두 자판기로 달려가 버튼을 팍팍 눌렀다. 


  교육이 시작된 첫 주에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는 네다섯 명만 콜라를 뽑았는데, 점점 많이, 더 자주 먹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마법에 걸린 듯 왠지 콜라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입안에서 자그마한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톡톡톡 터지는 탄산을 빨리 느껴보고 싶었다. 목구멍을 간질이며 넘어가는 달콤한 코코콜라를 먹는 동안에는 게임을 할 때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뽁, 소리만 들어도 콜라 생각이 먼저 났다. 코코콜라는 흰 색, 빨간 색, 검은 색 세 종류가 있는데 흰 색이 제일 탄산이 약하고 부드러웠고 빨간 색은 좀 더 톡 쏘는 맛이었다. 마지막 검은 색 코코콜라는 한 입만 마셔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독하고 진하게 달면서도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만 검은 색 코코콜라에 손이 갔다. 이제 흰 색은 초코우유처럼 순하게만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요셉슈타인만 빼고 모두 검은 색 코코콜라를 집는 횟수가 늘었다. 검은 색 코코콜라에는 ‘파워 2배 업!’이라고 적혀 있고, 가격도 두 배 비쌌다. 하지만 왠지 그걸 마시면 기분도 두 배로 좋아지는 것 같았고 정말 힘도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의 음료 같았다. 하지만 이제 팀 별로 받은 카드에 든 잔액이 0원이었기 때문에, 다음 교육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깔모자들은 교육이 끝날 때마다, 자판기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수첩에 뭔가를 슥슥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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