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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Dec 28. 2021

[동화연재]궁극의 레벨 업

11화 :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다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다


  저녁을 먹은 뒤 자유시간에 우리 조는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교육 자료로 나누어 준 종이의 뒷면에 렐크 캐릭터를 그렸다. 천사, 무사, 해골 종족 각각의 캐릭터가 스무 개씩이어서, 총 60개를 모두 그리는 데 한참 걸렸다.


  방바닥에는 매직으로 렐크의 배경을 그렸다. 하늘, 지상, 지하의 특징을 꼼꼼히 기억해서 그렸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수풀과 지하세계로 통하는 우물, 하늘에 떠 있는 세모 모양의 구름을 그렸다. 곳곳에 갑자기 등장해서 싸움을 붙여 에너지를 빨아가는 꼬마 도깨비들을 넣고 양쪽 끝에는 성을 커다랗게 그린 뒤 클로버 모양의 구멍이 달린 성문을 그렸다. 


  종이에 그린 캐릭터들은 가위로 오려내어 종족별로 정리했다. 원래는 상대팀까지 합쳐 모두 여섯 명이 필요한 게임이지만 렐크를 모르는 알거지를 빼고 둘씩 팀을 짜서 놀았다. 마치 실전 게임처럼, 로그인하는 시늉을 하고 배경음악을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캐릭터를 골랐다. 흐물거리는 종이 캐릭터에 입체적이지도 못한 맵일 뿐인데도 재미있었다.


  이 놀이를 생각해낸 것은 슬로맨이었다. 렐크 게임을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면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할머니가 화투 한 장이 사라졌다면서 장판 아래며 텔레비전 밑이며 온갖 구석구석을 다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내 공책의 빨간 표지를 싹둑 잘라간 것이 문득 떠올랐다. 다 그게 그것 같은 화투패의 어떤 그림이 사라진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할머니는 볼펜을 들어 쓱쓱, 단번에 그림을 그렸다. 검은 쌀알 같은 것이 흩어져 있는 이상한 모양의 그림이었다. 


  나중에 옷장 아래에서 화투 한 장을 찾아냈는데 할머니가 그려놓은 것과 똑같은 거여서 놀랐다. 할머니는 어떻게 단번에 화투 모양을 기억할 수 있었던 걸까.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니 할머니가 이해되었다. 나도 60개의 캐릭터를 단 하나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마다 가진 궁극기와 목소리, 자주 하는 몸짓과 배경 이야기까지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한참 우리만의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안내 방송이 들렸다.


  “두 번째 미션을 시작하겠다. 이번 미션은 오늘밤 9시까지, 힌트가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은 뒤 그 사람과 관련된 숫자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 숫자가 오늘 시청각실 문을 여는 비밀번호가 된다.”


  “재미있겠다!”


  알거지가 눈을 반짝였다.


  “시청각실에는 10만 원이 충전된 카드가 있다! 그걸 먼저 가져간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10만 원!”


  모두 입을 떡 벌렸다. 


  “그 돈이면 코코콜라가 몇 개야!”


  온 몸에 코코콜라가 가득 차서 출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도서실과 태블릿을 이용하여 답을 찾도록. 각조 조장은 지금 관리실로 와서 태블릿을 받아 간다. 태블릿 사용 시간은 전원을 켠 시각으로부터 단 10분간만이다.”

  “뭐? 태블릿이라고?”

  “대박 아이가.”

  “거기 게임 깔릴까?”

  “10분뿐인데 그럴 리가 있겠냐.”


  태블릿에, 10만 원이 든 카드라니. 갑자기 이곳이 좋아지려 했다. 


  “이겨서 코코콜라 실컷 먹자.”

  “하루에 열 캔 씩 먹어 보는 게 소원이야!”


  슬로맨과 내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요셉슈타인이 종이로 만든 좀비 캐릭터를 내려놓았다. 고깔모자가 목을 다듬더니 말을 덧붙였다.


  “답을 못 맞힌 팀들은, 내일 있을 서바이벌 게임에서 페인트 총알의 개수를 승리한 팀의 절반만큼만 받을 것이다.”

  “그건 안 돼. 얼마나 기다렸던 서바이벌인데!”


  슬로맨이 머리를 감싸 안고 흔들었다. 


  관리실에 갔던 요셉슈타인이 태블릿과 도화지 크기의 종이를 한 장 들고 왔다. 우리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았다. 태블릿을 한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두 번째 미션 힌트>


  (1) A나 B 중 한 가지 방법만으로도 찾을 수 있다. 

  A : 37. 574813, 126. 993952 

  B : ㅈㅅ의 ㅇㄷ 18-32


  (2)

  나는 A에 없는 자 

  B에서는 내 편이 없지

  죽어서도 밥을 먹을 수 없네 

  빛나는 것을 열 번째로 쓰던 날이 암호라네

  그 해로 돌아가고 싶어라


  (3)

  나는 ㅅㅈ 과(와) ㅈㅈ 사이에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와 관련된 비밀번호는 무엇일까? 


  모두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 숫자들은 뭐야?”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우리는 렐크 캐릭터들을 바닥에 하나씩 줄지어 놓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도서실에 가서 뭐라도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셉슈타인은 태양왕 루이14세 캐릭터를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궁극기는 왕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광선과 금화 태풍이다. 광선은 상대의 눈을 1분간 멀게 만든다. 그런 뒤에 붉은 빛깔의 망토에서 금화가 회오리치며 쏟아진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무기를 휘두르다가 금화에 부딪히면 금화 하나가 부서질 때마다 100개의 은화가 날아온다. 그 은화를 부수면 은화 하나가 100개의 청동 동전이 되어 쏟아진다. 동전 폭풍이 끝없이 날아오는 식이다. 그래서 공격을 계속하다 보면 무지막지한 양의 동전에 파묻히게 된다.


  “빛나는 것을 ‘쓴다’고 했으니까 이건 왕관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요셉 슈타인이 루이 14세의 왕관을 만지면서 말했다. 종이가 얇아서 왕관은 금세 찢어질 것처럼 달랑거렸다.


  “A에 없는 자라고 했으니까, 장소나 그림일 거야.”

  “왕관을 쓴 사람들이 모인 장소나 그림…….” 

  “왕과 관련된 장소가 어디 있지? 경복궁? 박물관?”

  “아! 이거! A는 좌표인 거 같아!”


  슬로맨이 갑자기 내 등을 소리나게 때리며 외쳤다.


  “야, 아파!” 

  “미안 미안. GPS 좌표 말야. 위도, 경도.”

  “위도, 경도?”

  “그래! 이 숫자를 알면 장소를 찾아갈 수 있잖아.”


  요셉슈타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유럽 여행 갔을 때 길 찾기 맵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있어.”


  슬로맨이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빠른 속도로 말을 했다.


  “그럼 이게 어느 장소를 나타내는 좌표인지 어떻게 알아보지?”

  “이걸 쓰면 돼.”


  나는 태블릿 전원을 켰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태블릿 화면이 밝아졌다. 너무 오랜만에 이런 휴대용 기기를 봐서 그런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태블릿 화면 위에서 10:00 이라는 숫자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시간이 줄어들었다.


  길찾기맵 사이트에 접속해 좌표 번호를 적자, 우리나라 지도가 점점 확대되더니 빨간 색 화살표가 한 곳을 가리키며 깜박였다. 화살표를 보고 있으니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몇 초가 흐른 뒤 화살표 옆에 말풍선처럼 생긴 네모칸이 떴다. 그 안에는 ‘종묘’라는 글자와 설명이 적혀 있었다.


  “종묘?”


  화살표는 종묘를 가리키며 계속 깜박이고 있었다. 슬로맨이 설명을 읽었다.


  “유네스코 문화재에 지정된 종묘는 조선시대 죽은 왕들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여긴 그럼 제사를 지내는 곳이네?”

  “두 번째 힌트에 나온 시에 ‘나는 A에 없는 자’라고 했어.”

  “죽어서도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했으니까 종묘에 모셔지지 않은 조선의 왕을 찾으면 돼.”

  “검색하면 된다아이가.”


  그때, 태블릿 화면에 갑자기 코코콜라 광고 팝업이 떴다. 


  “뭐지, 이건?”

  “클릭하면 쿠폰을 준대. 코코콜라 10개 교환 쿠폰!”

  “오! 좋은데?”


  마음이 흔들렸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팝업이 계속 깜빡거렸다. 지금 누르지 않으면 다시는 누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데! 어떡하지?


  ‘렐크 퀴즈를 풀면, 코코콜라 20개!’

  ‘해골조 캐릭터 문제 다섯 개를 연달아 맞히면 새 스킨을 드려요! 렐크 최초!’

  ‘이순신 궁극기는 뭘까요?’


  나도 모르게 그걸 클릭해 버렸다. 이순신 문제를 내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팝업창이 전제 화면으로 변하더니,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순신이 나왔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나는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순신이 용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궁극기야!”


  모두 미션을 잊어버리고 이순신에 빠져 들었다.


  “정신 차려!”


  요셉슈타인이 우리를 흔들었지만, 슬로맨, 카더라, 내 눈은 태블릿 화면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잠깐, 여기 뭐라고 적혀 있는데?”


  겨우 얼굴을 들이댄 요셉슈타인이 팝업창 아래에 적힌 작은 글자를 가리켰다.


  ‘팝업창을 클릭할 경우 태블릿 사용 시간은 5분으로 줄어듭니다’


  “뭐? 뭐?”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태블릿 화면이 뚝 꺼졌다. 


  “함정이었나 봐!”


  슬로맨이 소리쳤다. 아까는 그런 글자를 보지 못했다. 봤더라면, 팝업창을 누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진짜, 안 눌렀을 자신은 없다. 그래도 고민은 해보지 않았을까. 아무리 내 사랑 최애 캐릭터가 이순신이라고 해도, 지금 콜라를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아니다. 그래도 게임 캐릭터가 우선이지. 아니다. 콜라가 우선. 아, 모르겠다. 둘 다 좋은데. 나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고 뜯는 시늉을 했다. 너무 괴로웠다. 흥분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검은 색 코코콜라를 한 캔만 딱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잖아.”


 요셉슈타인이 드라이버 열쇠를 꺼냈다. 


 “3층에는 시청각실이랑 도서실 때문에 아이들이 많을 텐데 몰컴 할 수 있을까?”

 “분명 여우같은 엄크가 따라붙을 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나한테 맡겨.”


  알거지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잠시 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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