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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Jan 06. 2022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13화 : 슬로맨 이야기

  #슬로맨 이야기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이 없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다. 사실 웃기는 사람도 없다. 그저 다들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입꼬리만 부드럽게 올려 웃는 시늉을 할 뿐이다.

  나는 여기 안 오려고 별수를 다 썼지만 소용없었다. 


  “나도 너 같은 아들 데리고 가긴 싫지만, 어쩌겠니? 꼭 너 데리고 오라는데.”


  엄마가 초대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후명이 엄마가 보낸 초대장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하는 모임만 해도 골치 아픈데, 누군가 전국대회에서 수상하거나 비공식 시험에서 전교 1등 할 때처럼 축하할 일이 생기면 비정기적으로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모임에 빠졌다가는 중요한 정보를 놓칠지도 모르니까 다들 열심히 참석한다. 


  엄마는 새끼손가락을 들고 와인 잔을 우아하게 잡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붉은 와인이 잔 속에서 빙글 돈다. 엄마는 코를 살짝 대어 향기를 맡은 뒤, 흐뭇한 미소를 띠고 한 모금 마신다. 가글을 하듯이 엄마의 볼이 한쪽씩 부풀었다가 가라앉는다. 


  엄마는 평소엔 맥주만 마신다. 냉동실에 컵을 얼려두고, 샤워가 끝나면 캔 맥주 하나를 따서 거기 부어서 원샷한다. 공룡처럼 “크아아!” 소리 내는 것도 잊지 않고. 무슨 맛이냐고 물어봤더니, “뼛속으로 빙하가 떠내려오는 맛”이라고 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맛이람. 어쨌든 엄마는 여기선 맥주를 주문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하얀 실크로 만든 식탁보 위에 저염 버터와 빵이 놓여 있고 어른들 앞에는 와인 잔이, 아이들 앞에는 금방 짜낸 오렌지 주스가 한 잔씩 있다. 이다음에는 스프가 나오고 달팽이요리나 연어구이를 먹고 나면 한 주먹도 안 되는 스테이크, 그다음에는 샤베트나 아이스크림, 혹은 초코 푸딩이 디저트로 나올 것이다. 모든 식사를 마치기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 


  빵을 더 먹고 싶어서 손을 뻗자 옆에 앉은 엄마가 식탁 밑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꼬집었다. 엄마는 내가 허겁지겁 먹지 못하게 하려고 여기 오기 전에 집에서 미리 저녁을 먹게 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도대체 왜 음식을 찔끔찔끔 주는 거야? 이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오늘도 귓속말로 잔소리를 듣겠지.


  “소리 내어 씹지 마.”

  “샐러드용 포크와 스테이크용 포크는 다르다고 몇 번을 말했니? 맨 바깥쪽 포크부터 안쪽으로 순서대로 사용하란 말이야.”

  “식탁에 팔꿈치 대지 말고.”


  로얄 패밀리 모임이라니 도대체 이름은 누가 붙인 걸까? 누가 보면 신라 귀족의 후예들인 줄 알겠다. ‘패밀리’라지만 엄마들과 아이들만 모인다. 딱 일곱 가구로 정해져 있다. 엄마는 이 모임에 가입하려고 엄청 노력했다. 엄마는 매년 가입이 미뤄지는 건 오로지 내가 문제라고 했다. 엄마, 아빠의 직업, 학력, 재산은 다 조건에 맞는데 내 성적이 문제라는 것이다. 


  “승마에 테니스에 어학연수 경험에, 다른 조건은 다 맞췄는데 너 성적이 부족해. 이번에는 상위 4% 안에는 들어야 한다. 알았지?”


  엄마는 과외 선생님을 또 바꾸면서 얘기했다. 상위 4%면 전교 6등 안에 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나도 조건을 걸었다.


  “6등 안에 들면, 일주일 동안 게임 하게 해 줄 거죠?”

  “들기만 하렴. 뭐든 다 해 줄게. 우리 아들.”


  컴퓨터는 최고 사양의 것을 갖고 있다. 엄마, 아빠는 어떤 취미 생활을 하든 내가 기죽지 않도록 최고급의 것으로 하드웨어를 깔아준다. 


  그러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컴퓨터가 아무리 좋아도 부팅할 시간조차 없다. 엄마가 만들어놓은 빡빡한 공부 스케줄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사립학교도 워낙에 방과후 수업이 많기로 유명한데, 학원에 과외에 모든 숙제까지 해내려면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란다. 분명 나같이 자란 사람이 처음으로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을 거라고 믿는다. 자신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 엄마 욕심을 채워줄 빠릿하고 똑똑한 존재가.


  결국 엄마의 바람대로 성적을 올려 로얄 패밀리 모임에 들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다음 목표는 국제중 입학이라고 했다. 모임의 모든 엄마들은 꿈이 똑같았다.   


  아이들끼리는 겉으로만 친하게 지냈다. 같은 선생님한테 과외를 받고 같이 해외탐방을 갔지만 비밀을 털어놓는 사이가 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똑같은 수업을 받았는데 영어토론대회나 수학경시, 논술대회 같은 데서 누군가 더 뛰어난 성적을 받으면 다른 아이들이 걔를 미워했다. 우리는 웃으면서 미워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다른 남자아이들끼리는 모여서 여자친구나 게임에 대해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런 얘기 대신 다음 대회, 다음 시험, 다음 점수 얘기만 했다.   


  내가 시험을 잘 치자, 엄마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놀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얻은 방학이었다. 나는 엄마의 신분증으로 아이디를 만들어서 성인용 렐크를 했다. 피가 튀고 팔다리가 쓱쓱 잘려나가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핏자국이 아른아른거렸다.  


  처음에는 게임 레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일주일 만에 블루 레벨1에서 10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점점 속도가 더디어졌다. 레드10까지 간 뒤에 브론즈에서 실버로, 골드로, 플래티넘에서 다이아, 화이트 다이아, 핑크 다이아, 마스터 레벨까지 갈 길이 너무 까마득해 보였다. 느릿느릿한 성격이 게임에서도 약점이 되었다. 


  초조해졌다. 렐크를 잘 하는 반 친구들에게 전략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가 점점 늘어났다. 공부벌레인 줄 알았는데 게임도 해? 하며 다가왔다. 로얄 패밀리에서 만난 애들보다 훨씬 재미있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욕을 섞어서 한 마디씩 뱉을 때마다 친구들이 깔깔 웃으며 좋아해 주었다. 아빠, 엄마가 집을 비울 때는 몇 번 학원을 빠지고 피시방에 갔다. 거긴 천국이었다. 온갖 음료에 라면에 제육덮밥, 자장밥, 스낵 들까지 먹을 것도 넘쳐났다. 팔걸이가 달린 폭신한 의자에 몸을 묻고 헤드셋을 낀 채 라면 면치기를 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 피시방 의자에서 나는 가죽 냄새, 컴퓨터 키보드를 닦는 소독제 냄새도 좋았다. 


  피시방은 또 다른 온실이었다. 나한테 딱 맞는 온실. 나는 거기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임은 길고 지루하다. 어른들은 이런 게 뭐가 재미있어서 자꾸 만나는 걸까.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아빠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컴퓨터를 켜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참, 전희가 요새 게임을 많이 한다던데요?”


  오늘 모임의 주인공인 후명이네 엄마가 말했다. 후명이는 이 모임에서 유일하게 나랑 같은 반인 애다. 친하지는 않다. 매일 서로 비교당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후명이가 전국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동상 받은 걸 자랑하려고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자랑 안 해도 다 아는데 굳이.


  “애들이니까요. 스트레스도 풀어줘야죠.”


  엄마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스트레스를 꼭 게임으로 풀어야 할까요? 애들 교양에 나쁜 영향을 줄 텐데.”


  후명이네 엄마가 작정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 시험에서 내가 1점 차이로 후명이를 이긴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벌써 반에 소문이 다 났더라구요. 전희가 학교에 오면 게임 얘기만 하나 봐요.   그것도 좀 폭력성이 높은 걸 한다고…….”

  “한창 그럴 나이잖아요. 안 그래요?”


  엄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전희 엄마, 우린 아이들 취미도 관리해주는 그룹이에요. 서로서로 좋은 영향만 주면서 자랄 수 있도록. 잘 알고 있죠?”


  다른 엄마들이 이번에는 홍홍홍, 하고 점잖게 웃었다. 후명이네 엄마는 와인 잔에 묻은 립스틱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한번 문지른 다음 무릎에 놓인 냅킨에 우아하게 그 손을 닦았다. 


  “그래서 말인데, 여길 한번 보내보는 게 어떨까요?”


  후명이네 엄마가 광고지처럼 생긴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미리 준비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에는 <렐크 게임 중독 학생을 위한 위플러스캠프 참가자 모집!>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방학 동안 내 공부를 방해하려는 전략일 거다. 방학 동안 학원 수업을 받는 것보다 캠프 가는 게 백 배 낫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애써 쌓아온 레벨이 무너진다. 렐크는 게임에 일주일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레벨이 훅훅 추락해 버린다. 내가 어떻게 쌓아올린 공든 탑인데. 피시방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을 거다. 나는 엄마가 내게 한 것처럼 엄마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하지만 엄마의 옆모습을 보니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와인 때문일 리가 없다. 엄마 주량은 내가 더 잘 아니까. 


  “다 전희 미래 생각해서 이러는 거잖아요. 우리 모임에 계속 들어오려면, 협조해야죠.”


  아줌마가 마지막 킥을 넣었다.   

  다른 엄마들이 목각인형처럼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명이가 나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입 속에서 달팽이가 톡, 으스러졌다. 





  #청소년 게임중독  #게임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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