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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Jan 06. 2022

[동화연재] 궁극의 레벨 업

14화 : 이상한 밤

  이상한 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딛기가 힘들다. 발에 무쇠를 달아 놓은 것 같다. 나는 황금 갑옷을 입고 있다. 등에 손을 대자 독수리 화살이 만져진다. 아! 여긴 렐크 게임 안이고, 나는 전투 중인 이순신이다!


  갑자기 포카혼타스가 바위 뒤에서 나타났다. 포카혼타스의 궁극기는 머리카락 전법이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갑자기 보아뱀으로 변해 무사를 삼켜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포카혼타스를 이기려면 무사조에서 칼을 든 캐릭터가 나와야 한다.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려야 도망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카혼타스의 시커먼 눈동자가 나를 노려본다. 자세를 바꾸면서 기합을 넣고 있는 걸 보니 곧 궁극기를 쓸 모양이다. 이번 게임에서 우리 팀의 천사 종족이 선택한 캐릭터는 하필 황금박쥐다. 구름에 매달려 단단한 황금똥을 툭툭 싸서 적을 기절시키는 게 궁극기인 이상한 캐릭터이다. 상대팀이 투구나 모자 아이템을 쓰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술이다.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며 똥을 피해 다니는 상대를 보는 게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캐릭터를 선택하는 애들이 꼭 있다. 


  포카혼타스가 무서운 목소리로 괴성을 지른다. 끝장이다. 시커먼 머리카락이 날아온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톡-싸아아-톡-싸아아- 머리카락이 코코콜라처럼 너울너울, 부풀어 오르더니 보아뱀으로 변신한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갑자기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고개를 돌리니 화면 밖에 있는 승진이의 커다란 얼굴이 보인다. 키보드가 부서져라 알트키와 에프7을 파바박 눌러대는 승진이의 시뻘건 얼굴.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


  “레벨 업 해놓으라고 했지!”


  승진이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퍼져나간다. 


  톡-싸아아-


  벌떡 일어났다. 


  톡-싸아아-렐크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성문이 열립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불빛이 모두 꺼진 방은 포카혼타스의 머리카락처럼 어두웠다. 


  톡-싸아아-코코콜라는 맛있어요-황금박쥐 똥이닷-꺄아- 꺄아-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둥둥둥둥 투투투투 파바바바박-


  렐크 게임을 할 때 나오는 익숙하고 그리운 소리였다. 

  소곤소곤 조그맣게, 그러나 끊이지 않고 소리가 계속되었다. 벽을 더듬어 스피커 아래로 가자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비상 손전등으로 복도의 벽에 걸린 시계를 비추어 보았다. 새벽 3시 30분이었다. 누군가 뒤척이는 소리, 코 고는 소리에 섞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 소리 때문에 게임하는 꿈을 꾼 건가? 

  나는 자고 있는 요셉슈타인의 어깨를 가만가만히 흔들었다.


  “안 먹어요!”


  요셉슈타인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뭘 안 먹어?”

  “어? 철봉이, 너야?”


  요셉슈타인이 숨을 고르더니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었다. 나는 안경을 찾아서 녀석의 손에 쥐여 주었다.


  “벌써 아침이야?”

  “쉿. 이 소리 들려?”


  …코코콜라는 맛있어요-푸슈푸슈-성문이 열립니다……


  알거지는 코코콜라가 가득 찬 호수에서 헤엄치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다. 


  “잠깐.”


  요셉슈타인은 갑자기 휴지통을 뒤져 빈 콜라 캔을 꺼내더니 뭔가를 유심히 읽었다.


  “콜라 먹고 싶다.”


  그걸 보던 슬로맨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중얼거렸다. 


  “나 꿈에 황금박쥐가 되어서 날아다녔어. 황금똥이 똥구멍에서 나올 때마다 어찌나 아픈지. 나 변비 걸렸거든. 그래서 그런 꿈을 꿨나 봐.”


  슬로맨이 배를 쓰다듬었다.


  “정신 차려.”


  요셉슈타인이 슬로맨 어깨를 툭 쳤다. 


  “그런데 넌 뭘 보고 있는 거야?”

  “우리가 매일 먹었던 ‘코코콜라’ 말이야.”

  “그게 왜?”

  “여길 봐.” 


  캔 아랫부분에 ‘제조사 LK’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요셉슈타인이 말했다.


  “코코콜라 본사가 어딘지 알아?” 


  요셉슈타인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카더라도, 슬로맨도, 알거지도 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코코콜라 회사를 알아서 뭐 하나?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지.


  “렐크 게임 회사가 소속된 그룹 이름이 LK잖아.”


  요셉슈타인이 말했다. 


  “그거야 알지.”


  그러자 요셉슈타인이 코코콜라의 정보 표기에 적힌, ‘LK’라는 글자를 보여주었다. 


  “여기, ‘판매처 코코음료, 고객상담 LK본사’라고 적힌 거 보여?”


  정말 그랬다. 집중해서 보자,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LK라고 적힌 글자가 나타났다. 그나마 그 글씨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아래쪽에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흑갈색으로 희미하게 새겨졌다. 


  “응? 콜라 회사랑 게임 회사가 같은 곳이라고?”


  알거지가 콜라 캔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코코콜라 본사가 LK야? 도대체 콜라를 왜 만드는데?”


  슬로맨이 물었다. 요셉슈타인은 “글쎄…….”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 하고 무릎을 쳤다. 다들 “왜?”하며 나를 돌아봤다.


  “편의점에서 코코콜라를 살 때마다 렐크 포인트를 적립해 준 거 기억나?”

  “그냥 둘이 콜라보 한 줄 알았는데.”


  초코빵을 사면 빵 봉지 안에 든 스티커에 새겨진 번호로 포인트를 모아서 게임 아이템을 사게 해 주는 프로모션도 있었다. 어떤 덕후가 계산을 해봤는데 그 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아이템인 ‘황금 갑옷’을 가지려면 초코빵 870개를 먹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프로모션 기간은 한 달뿐이었는데도. 


  거기 비하면 코코콜라 프로모션은 일 년 내내 참여할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난 용돈이 부족해서 많이 못 사 먹은 탓도 있고, 할머니 휴대폰으로 아이템을 사는 것에 맛을 들여서 필요 없기도 했지만, 다른 애들은 종종 코코콜라를 사서 포인트를 알뜰살뜰히 모았다. 


  렐크 게임에 나오는 유일한 어린이 캐릭터인 ‘별님반’의 궁극기가 떠올랐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다른 손에는 콜라를 들고 있다가 동시에 입에 넣으면 마치 화염을 뿜듯이 거대한 콜라 거품이 튀어나온다. 그 끈끈한 거품 대포에 맞으면 5초간 스턴이 걸리고, 물속 깊은 곳에서 걷고 있는 것처럼 1분간 동작이 아주 아주 느려진다. 온몸에 묻은 찐득한 거품 때문에 세척제 아이템을 구해 씻기 전까지는 꼼짝도 못하는 셈이다. 


  별님반이 콜라 공격을 하는 이유가 다 코코콜라 때문이었나?


  “흠. 렐크에 중독된 애들을 모아놓고 렐크 본사에서 파는 코코콜라를 준다? 뭘까, 이게?”


  요셉슈타인이 코코콜라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곳이잖아, 여긴.”


  알거지가 말했다. 그렇지, 하고 요셉슈타인이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뭐, 그냥 맛있게 먹으라고 주는 거겠지.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콜라나 먹게 해 줘. 마음껏. 콜라가 가득한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슬로맨이 다 귀찮다는 듯이 말하면서 드러누웠다. 나는 그런 슬로맨을 다시 일으켰다. “살 좀 빼.”하고 중얼거리자 슬로맨이 “콜라 살이야.”하며 몸에 더 힘을 주어 누우려고 했다. 


  “그 방송은 뭐야, 도대체?”


  나는 슬로맨을 안다시피 한 채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는 뭐하는 데꼬?”  


  우리는 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해 방을 나섰다. 잠이 싹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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