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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Feb 13. 2022

<성서를 읽다> -박상익

역사학자의 성경 해석


나는 무신론자다.

불가지론이 아니라 신이 없고 '자연히 그러함'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릴 때는 주류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강렬한 체험들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신학을 공부하시다가

생계 때문에 목사의 길을 안 가셨는데(은행원이 되셨다),


어머니는 천주교

아버지는 기독교

같이 사는 할머니는 뿌리깊은 불교여서

온갖 문화를 경험해 본 것 같다.

그래서

깊이 믿는 자의 마음도 알 것 같다.

그건 어떤 안경을 선택해서 세상을 보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어서,

한번 안경을 쓰고 나면 벗기가 어렵다.

그 안경을 쓰고 있을 때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엾게 내려다보던 마음도.


종교가 없더라도

선한 영향력을 주고 겸손하게 살고 이웃을 돕는 것, 자기 긍정을 가지는 것, 생명을 학대하지 않는 것,

이런 마인드를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종교 책들을 읽어봤지만

불교는 비교적 그 사상에 깔린 가치관이 보편적인데 비해

이슬람이나 기독교는 특수한 부분들이 많았다. 

회심한 자나 종교인이 직업인 사람들이 쓴 것은 그 객관성을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잘 나가다가 간증으로 빠지거나 타 종교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책을 덮었다.


반면 유유에서 나온 이 책은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한 것이라서 교양서로 읽기에 적절하다. 서양 사회에 헤브라이즘이 끼친 영향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고, 구약을 왜 동양의 우리가 이 시점에 읽어야 하는지도 타당하게 설득한다.


오래 전에 맥그로드에서 한 한국인 중년 전도사를 만났는데, 선교를 목적으로 온 분 같았다.

그 남자는 시종일관 굳이 영어로 성서의 문장을 암기하고 그걸 풀이하다가, 자신과 아들이 티베트에 가보니 티베트인들이 오체투지를 하더라며, 그걸 보면서 자신의 신께 감사드렸다고 말했다.


뭐가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온몸을 더럽혀가며 고생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되게 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했다.


티베트를 거쳐 육로로 인도에 왔던 나로서는,

그들이 온몸으로 기도하는 현장을 지나왔던 나로서는, 그 말이 경박하게 들렸다.


따뜻한 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그 한 그릇의 값이 없어서 동전을 모으던 그들을 보고

단 한번도 그것을 가치없는 고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길 위에서

지프차가 일으키는 먼지 너머로

그저 한 걸음씩 간절하게 걷던 그들을 보며

저런 기도라면,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 기도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리라고,


세상에 그런 기도가 많아진다면

세상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구원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 아닌 몸으로 섬긴 그들에게 오히려

그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더는 그에게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리를 떴다.


내게 신을 전하려던 사람들은 주로 그런 식이었다.


배척하고

내려다보고

혀를 끌끌 차며

글자에 매달려있던 사람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던 시기에는 예배당이 없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그때만큼 신과 가까웠던 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책을 읽고 나니

남쪽에 있는 전국 3대 암자 중 한곳에 갔을 때

스님이 스피커를 통해 기도하는 걸 듣고 웃음이 터졌던 때가 떠오른다.


서울특별시 ㅇㅇ동 ㅇㅇ팰리스 ㅇㅇㅇ 아들 합격 기원~어쩌고 하는 식의 주문(?)이 내내 들려왔기 때문이다.

기도를 들어주기로 용하다는 곳이었다.


기도를 잘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름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확률의 문제인데,

한 100만 명쯤 오는 사찰이라면 100명만 오는 사찰보다 신도가 많으니 기도도 많고

그 정도로 멀리 가서 돈을 부어가며 기도할 요량이면 일상에서도 지극할 테니,

기도빨은 돈빨이고 확률빨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푸른 바다의 빛깔마저

염불과 기도에 색이 바랜 것 같았다.


사람을 거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세계는 없는 걸까.


어쨌든 이 책은

신에 대한 거리감이 깔끔해서 좋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종교를 차갑게 다루는 책이 필요했다.

종교는 이미

철학이고 사회학이고 경제학이니까,

다각도에서 들여다보면서

이 오래된 신과 인간 사이의 애증의 관계를 읽어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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