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마음 한쪽에서 억울함이 계속 올라왔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버티며, 조금씩 균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내 마음을 정리해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직전에 올린 글의 핵심은 ‘결이 맞는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교회에 가는 길,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유료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비슷한 감각과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에너지 소모가 적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유유상종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예배시간이 되었다. 담임 목사님은 외부 일정으로 처음보는 부목사님이 강단에 오르셨다. 처음에는 설교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에 하는 일들이 머릿 속에 여러가지 모양으로 엉켜있어, 그것들을 도면으로 그리고, 내리고 하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순간 설교 말씀이 내 귓가에 또렷이 들렸다.고린도후서 6장 1절부터 13절이었다. 말씀을 듣는 동안, 아침에 올렸던 글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유유상종적 부족주의를 깨라는 내용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남으려고 하고, 결국 공동체는 제 기능을 잃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침에 쓴 문장이 곧바로 연결됐다.
‘결이 맞는 사람들만 함께하고 싶다.’
이 말이 결국 나 스스로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
갈등을 줄이고 싶어서 안전한 사람만 남기려는 마음.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와 비슷한 사람만 들이려는 마음.
내가 말한 ‘결’은 어느새 선별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말씀은 분명했다.
“우리에게 마음을 넓혀 달라. 너희 마음이 좁아진 것이다.”
그 구절이 조용히 마음 안에 머물렀다.
모임 만들며 늘 했던 말이 있다.
“사람은 연결될 때 변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닮은 사람들끼리 모여 안정적인 틀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쉬프트소사이어티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편안함을 찾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결을 넓혀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변화는 늘 조금의 불편함에서 시작되고, 그 불편함이 있어야 내가 확장될 수 있다.
예배가 끝나고 부모님과 걸어 나오면서 오늘 말씀이 왜 하필 오늘 들려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커뮤니티의 방향을 다시 잡으라는 신호였다.
결국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것은
‘누가 나와 맞는가’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다루고 확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오늘의 말씀은 그 단순한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이것이 쉬프트의 진짜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