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발냄새로 배운 협상술
33화 발냄새로 배운 협상술
검도장에서 전화가 왔다.
“준이가 요즘 운동을 자꾸 안하겠다고. 힘들다고 해요.”
한숨이 나왔다.
‘또… 요령을 피우는건가?.’
하지만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하는 법.
나는 준이의 안 좋은 태도를 고치려고 협박을 해 버렸다
“수업시간에 떼쓰지않고 열심히 할 때까지 게임은 금지야.”
그날 저녁 준이는 눈이 촉촉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엄마… 게임 좀 하게 해주세요. 제발…”
처음엔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안 돼 약속했잖아. 검도 다시 열심히 하면 그때 생각해보자.”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준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때까지 못 기다리는데 다른 열심히는 없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나는 도망치듯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곧 수학경시대회 있지? 모의고사 70점 넘으면 게임하게 해 줄께.”
“진짜요?”
“응.”
그때부터 준이는 문제를 풀어댔다.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며 중얼거렸다.
“바로 70점 받을 꺼야.”
결과는 44점.
두 번째 도전은 52점.
세 번째는 64점이었다.
시험지를 받아든 준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다시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돼?…”
그 표정이 너무도 억울해보여 나는 차마 뭐라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에는 분노, 실망,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밤이 깊고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나는 불을 끄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불 위로 살짝 올라오는 발소리.
그리고 코끝으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낯선 기운.
“준아… 뭐 해?”
대답 대신 무언가가 내 코 가까이에 들이밀어졌다.
그것은 바로 준이의 발이었다.
나는 놀라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준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도 그럼 내 발냄새 맡아. 나도 힘들단 말이에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준이는 진지했다.
억울함과 서운함 그리고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발냄새와 함께 섞여 있었다.
그때 남편이 조용히 다가왔다.
상황을 보던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없이 내 반대쪽 콧구멍에 자기 발을 갖다 댔다.
“아빠도 도와줄게.”
그 순간 나는 웃다가 눈물이 났다.
둘이서 내 얼굴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발냄새 연대’라니.
이보다 강력한 가족 단합이 또 있을까?
“알았어 알았어! 15분만 게임해!”
내가 외치자 준이는 번개처럼 달려가 게임기를 켰다.
그 얼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하고 또 따뜻해졌다.
그날 밤 내 코 밑에는 희미한 발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건 하루를 버텨낸 아이의 냄새 가족이 싸우고, 웃고, 화해한 흔적 같은 냄새였다.
며칠 뒤 검도장 선생님이 말했다.
“요즘 준이가 열심히 해요. 표정도 밝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자라는구나.’
아이의 성장에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다시 해보려는 마음이 부딪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의 코끝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