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잼잼 대소동
34화 잼잼 대소동
준이가 독감에 걸렸다.
초등학생이 된 뒤로는 웬만한 감기쯤은 기침 한 두 번 하고 뛰어다니는 튼튼한 아이였는데 이번 독감은 달랐다.
39도를 넘나드는 열에 온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평소 같으면 “ 괜찮아!”라며 씩씩하게 굴던 준이가 웅크려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마음이 아팠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독감이라 링거 한 번 맞아야 될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준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 엄마… 링거… 그거 진짜… 맞아야 해…?”
말 끝이 떨렸다.
5~6살 이후로 그렇게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던 준이에게 링거는 거의 어른들만 맞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게다가 링거는 주사보다 조금 오래 붙어 있어야 하고 ‘바늘이 달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준이에겐 공포였다.
우리는 링거실로 들어갔다.
흰 커튼, 낯선 냄새, 기계음.
그 모든 것이 준이에게는 공포로 다가온 듯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 준이는 반사적으로 나에게 딱 붙었다.
“엄마… 나 무서워… 많이 아플까…?”
그 모습이 귀엽고 짠해서 나는 손을 꼭 잡아주며 속삭였다.
“괜찮아, 준아. 엄마 여기 있어. 아프지 않게 해주려고 선생님이 온 거야.”
그러자 간호사 선생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준이야, 안 아프게 해줄게. 우리 먼저 ‘잼잼’ 해볼까?”
그런데 준이의 반응은 우리를 빵터지게 했다.
준이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울먹이면서 입으로만 아주 처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잼… 잼……잼잼…!!!”
간호사 선생님도 순간 멈칫.
나도 놀랬다.
그러다 우리는 동시에 빵 터졌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운 것도 있었지만
입으로만 "잼잼"이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아이가 안스러웠다.
팔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외치는 “잼잼.”어찌나 짠하고 웃기던지..
하지만 당사자인 준이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공포와 긴장으로 눈은 흔들리고 볼은 발갛고 콧물은 살짝 나와있었다.
간호사님이 웃음을 참고 다시 말했다.
“아니, 준이야. 손을 이렇게 쥐었다 폈다 하는 거야. 이렇게! 잼잼 해봐~”
그리고 간호사님이 시범을 보여주자 준이는 그제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아주 결연한 얼굴로
“아… 이거…?”
하고는 손을 움직였다.
문제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으로..
반대 손으로 쥐었다 펴고 쥐었다 펴고
진지한 얼굴로 “잼… 잼… 잼잼…”을 외쳐댔다.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이 어느 손으로 잼잼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우리의 눈에 그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너무나 웃겼다.
우리는 이제 참을 수없어서 박장대소 하며 한참을 웃어 댔다.
준이는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반대 손으로 혼신의 잼잼을 시전하며 자기 스스로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지만 그 와중에 잼잼은 계속되었다.
“잼…잼…잼잼…”
마치 주문처럼.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처럼.
아마 준이에게 잼잼은 무서움과 싸우는 최후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간호사 선생님은 드디어 웃음을 꾹 참고 바늘을 살짝 넣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준이야, 다 됐어.”
그러자 준이는 잼잼을 멈추고 마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살아있지…?”
“그럼, 준아. 너무 잘했어. 진짜 용감했어.”
준이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기 때문에 다들 웃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챈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엄마… 내가 왜 웃긴 거야…?”
나는 준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왜냐하면, 준이가 너무 귀엽고 용감해서 그래. 그런 모습을 보면 미소가 나오는 거야.”
준이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진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링거를 맞은 뒤 준이는 놀랍게도 금세 기운이 돌아왔다.
얼굴빛도 좋아지고 열도 조금씩 떨어졌다.
병원 밖으로 나오며 준이는 약간 으쓱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진짜 용감했지?”
“그럼! "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아픔을 통해 조금씩 자라고 두려움을 겪으며 용기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어른들을 크게 웃기고 또 크게 울린다.
겁이 나도 도망치지 않고 잘못해도 다시 해보려고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두려움에 맞서던 그 아이.
그 모습은 오히려 어른인 나에게 더 큰 용기를 주었다.
이 아이는 훌쩍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