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넘어진 날
49화 넘어진 날
준이가 웃으며 등교했다.
그날 아침은 평범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아이의 뒷모습이 가벼워 보이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잘 다녀와!”라는 말 속에는 늘 그렇듯 아무 일 없이 돌아오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준이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 넘어져서… 다리가 다쳤어…”
짧은 말이었지만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크게 다친 건 아닐까 피가 나는 건 아닐까 혹시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은 쏟아지는데 확인할 틈도 없이 나는 약과 밴드를 챙겨 집을 뛰쳐나갔다.
숨이 찰 만큼 달려 도착한 곳에서 만난 준이는 생각보다 덜 아파 보였다.
무릎이 조금 까지고 바지가 더러워졌을 뿐이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상처 때문이라기보다 놀란 마음 때문인 듯했다.
“괜찮아, 엄마 왔어.”
그 말 한마디에 아이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처를 닦고 약을 발랐다. 손은 분주했지만 마음은 그제야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이 보였다.
이 장면이 결코 준이 혼자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준이를 발견한 이웃 동생이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멈춰 서서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근처에 계시던 할머니께 이 사실을 알렸다.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준이를 일으켜 세우고 괜찮냐고 물으며 자신의 전화를 빌려주었다.
또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설명해 준 동네 언니도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준이의 친구가 서 있었다.
이미 학교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을 텐데 준이가 가지 못하자 그냥 두고 가지 않고 옆에서 함께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 마음을 다 담기에는 너무 짧은 단어 같았다.
상처는 미미했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니 금세 끝났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금세 잊혀지지 않았다.
넘어졌던 순간보다 그 이후에 이어진 장면들이 상상이 되었다.
약을 다 바르고 나니 준이는 친구와 함께 다시 학교로 향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뒷모습을 확인하다가 집으로 돌아섰다.
조금 전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왔던 길인데 돌아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때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기 엄마.”
나는 돌아섰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는 넘어지고 크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은 짧았지만 깊이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조금 전까지 마음을 채우고 있던 걱정들이 그 한마디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래 아이는 넘어지면서 큰다.
다치지 않게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힘을 배우면서 크는 거겠지.
오늘 준이는 넘어졌다.
그리고 울었고 도움을 받았고 다시 걸어갔다.
어쩌면 나는 ‘넘어진 순간’만 크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 뒤의 장면들을 더 많이 준비해두고 있었다.
멈춰 서 준 아이,
알려준 이웃,
손을 내민 할머니,
그리고 함께 기다려준 친구.
나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까와 같은 길인데 풍경이 조금 달라 보였다.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괜찮다 잘 크고 있다.'
넘어졌지만 잘 일어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걱정보다 감사가 더 크게 남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