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9) 창의성은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진다
창의성은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진다
“한국 교육은 창의성이 부족해요.”
많이 듣는 말이다.
무슨 토론 프로그램이나 국제 포럼, 심지어 카페 엄마 모임에서도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맞다.
시험문제만 푸느라 ‘왜’를 묻기보다는 ‘정답’을 외우는 데 익숙해졌고,
창의는 잠시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어, 창의야? 넌 잠깐만 있어봐~ 지금 기초부터 하자”
하고 스킵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물어보자.
창의성이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누가 그러더라.
“창의는 자유에서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 기초도 없이 자유만 있으면?
그건 창의가 아니라 막무가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부터 그림 작가 할래!”
하고 펜을 잡았는데, 선도 비뚤비뚤, 원도 찌그러지고…
“내 마음의 표현이야!” 할 순 있지만… 그건 유아 미술이지, 창의 미술은 아니다.
선을 곧게 그을 줄 아는 사람만 그 선을 일부러 비틀 수 있다.
정확한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만 의도적으로 파격적인 문장을 쓸 수 있다.
창의란 이렇게 생긴다.
기초가 탄탄해야 다양성이 살아난다.
그러니까 창의성은 기본기 위에 지은 이 층집 같은 거다.
1층이 없으면 2층은 허공이다.
한국 교육이 줄기차게 닦아온 그 ‘1층’,
수학 연산, 독해력, 과학 개념, 리듬 감각, 도덕적 판단력....
그게 없으면 아무리 자유로운 2층을 얹어도 휘청휘청, 삐걱삐걱, 결국 무너진다.
가끔 해외 사례를 보며 부러워한다.
“외국 애들은 발표도 잘하고, 생각도 자유롭고, 글도 자기 스타일로 써~”
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들 나름의 ‘기초’를 이미 끝낸 후라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예를 들어, 핀란드 교육을 보면 “와, 애들이 수업 중에 누워있어~!”
하는 장면에 감탄하지만, 그 애들은 이미 집에서 하루 2시간씩 책을 읽고, 학년이 오르기 전부터 기초 연산을 탄탄하게 다졌다는 걸 모른다.
미국 학생들이 “나는 이 주제를 이렇게 생각해!”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멋져 보이지만, 그 아이들도 에세이 쓰는 법을 3학년 때부터 매주 연습했다는 건 잘 안 알려져 있다.
창의성은 기초 위에서만 자란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반 확보형 사회’였다.
전 국민이 같은 교과서를 보고, 같은 단원을 따라가며, 국민 공통 교양을 쌓았다.
어찌 보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지식의 평준화 운동을 해온 셈이다.
반면, 선진국은 “네가 좋아하는 걸 해”, “그게 너만의 길이야”라며 개인의 만족, 자율성, 개성을 강조했다.
하나는 ‘사회 기반을 다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날개를 다는 길’이다.
그럼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순서는 있다.
기반 없이 개성만 강조하면 개성은 남들에게 설명도 못 하는 ‘혼자만의 언어’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방식이 틀린 게 아니라 그 위에 무언가를 얹어야 할 ‘순서’가 온 것뿐이다.
지금 한국 교육은 그런 전환점에 있다.
이미 우리는 웬만한 기반은 다 깔아놨다.
이제 그 위에 올릴 시간이다.
자기 생각, 개성, 창의, 독창성 같은 꽃들을 말이다.
기초라는 흙을 다졌으니 이제 꽃을 심을 시간이다.
비료는 창의성이고, 물은 자율성이다.
그리고 햇살은, ‘그래도 괜찮아’라는 사회의 응원이다.
그러니 창의성은 기초를 버리고 나서는 게 아니라 기초 덕분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튼튼한 바닥을 가졌다.
이제는 그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내 방식대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