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따 써 먹어

1장 (3) 진도 경쟁은 엄마들부터 시작된다

by 작가

진도 경쟁은 엄마들부터 시작된다

<학부모 단톡방>

이 단어만 들어도 약간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딘가 조용한 듯 하면서도 뭔가 터질 듯한 긴장감.

처음에는 정말 조용하다.
처음 가입하면 다들 서로 인사도 잘 안 한다.
닉네임은 “00이엄마”로 통일돼 있고, 프로필 사진은 대개 아이 사진이나 애니 캐릭터다.
모두가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
마치 폭풍 전야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조용히 누군가 한 마디를 툭 던진다.
“혹시 이번 주 받아쓰기 몇 급 인가요?”

바로 그 순간!
그 조용하던 단톡방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읽씹 모드였던 엄마들 손가락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는 답을 복붙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아예 본인의 육성 해설까지 덧붙인다.
“이건요~ 지주 틀리는 문장이 세 개인데, 두 번째 문장에 헷갈리는 낱말이 두 개 있어요~ 참고하세요♡3”

그때부터 단톡방은 쉴 틈 없이 울려 된다.
“이번에 수학 단원평가 몇 단원이래요?”
“아니 벌써 평가 봐요? 지금 준비해도 될까요?”

그러다 누가 하나 불안한 톤으로 말한다.
“우리 애는 아직 거기 안 했는데… 큰일이네요ㅠㅠ♡3”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대화에 하트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정확한 정보와 함께 날아드는 공포같다.
그것은 늘 예의 바르게 전해진다.

“우와~ 너무 감사해요~ 진짜 도움 됐어요♡5”
“헉, 저희는 아직 그 진도 안 나갔는데… 초조해지네요ㅎㅎ♡2”

이쯤 되면 하트가 많을수록 불안감도 강력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트 하나당 긴장 지수 +5.
하트 5개면 거의 심장 쫄깃한 수준이다.

공식도 없다, 룰도 없다.

단지 하나의 무형의 룰만 존재할 뿐이다.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이 진도 경쟁은 사실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들 사이에서 먼저 시작된다.
학교는 교과서대로 천천히 가고 싶은데, 엄마들의 불안이 진도 경쟁을 불러온 샘이다.

누군가 한 마디 툭 하면,
“아, 아직 못 했는데…”
“어머, 그거 해야겠네요!”
“우리도 시켜야겠어요ㅠㅠ”
이렇게 서로 불안을 공유하면서 정보는 퍼지고 그 불안은 하트와 함께 복사된다.

그리고 재밌는 건,
진짜 급박한 사람은 단톡방에서 말하지 않는다.
개인톡으로 조용히 갠톡을 보낸다.
“혹시… 지난주 받아쓰기 사진 있으시면 좀…^^;;”

이 경쟁의 기묘한 점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경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국의 모든 1학년 엄마들이 비공식 마라톤을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진도를 걱정하고,
아이보다 엄마가 더 평가 날짜를 신경 쓰고,
아이보다 엄마가 더 먼저 지쳐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단톡방, 탈퇴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못 한다. 왜냐고?
“놓치는 정보가 있을까 봐요♡3”

이것이 대한민국 초등교육의 진짜 첫 번째 평가 과제다.

“단톡방 생존력 평가”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하트를 날리며 불안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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