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따 써먹어

1장 (2) 교육은 원래 점진적인데, 우리는 ‘한 줄 출발’을 좋아한다

by 작가

교육은 원래 점진적인데, 우리는 ‘한 줄 출발’을 좋아한다


교육이란 본래 천천히 단계적으로 아이의 속도에 맞춰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 교육은 출발선 앞에서부터 엉뚱한 신호를 보낸다.


“자, 모두 똑같이 출발하세요. 하나, 둘, 셋!”


마치 육상 경기 같다.

같은 나이에 같은 학년으로 올라가고 같은 시기에 똑같은 진도를 뛴다.


3월이면 1단원, 4월이면 2단원. 5월 단원평가는 3단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을 똑같이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 아이”,

어쩌면 “부모가 관심 없는 아이”가 된다.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는 이런 말들이 많이 오고 간다.


“얘는 벌써 1학년 수학 다 풀었어요.”

“사칙연산은 끝냈고, 지금은 곱셈 들어갔어요.”

“국어는 문제집 두 권 돌렸고요, 받아쓰기도 백 점만 받아요.”


아니, 입학은 다음 달인데 왜 벌써 1학년 2학기 수학을 풀고 있냐고요?


그야 ‘한 줄 출발’은 이미 허상이니까요.


한국 교육의 스타트 라인은 언제나 조용히 앞당겨져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은 공식적으로 3월이지만 비공식 입학은 유치원 초반부터 시작된다.

‘예비 초등’이라며 한글 떼기, 덧셈 뺄셈, 시계 보기, 교과서 문제 풀이까지 쭉쭉 나간다.


1학년 교실에 앉으면 이미 반 아이들 절반은 “저건 다 배웠어요” 상태다.


그러니 진짜로 학교 수업을 처음 듣는 아이는 어리둥절하다.

“이게 왜 처음 배우는 게 아니지?”

“왜 다들 알고 있는 걸 난 지금 배우고 있지?”


그 순간 부모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혹시 내가 너무 준비를 안 시켰나…?”

“다른 집은 저만치 갔는데, 우리 애만 뒤처진 건가?”


이 조급함이 결국 또 다른 과열 경쟁을 만든다.


이쯤 되면 교육은 점진적인 것이라는 원칙은 조용히 퇴장한다.

대신 슬로건은 이렇게 바뀐다.


“1학년은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부터 ‘중반’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출발선은 같지만, 속도는 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두 발 앞으로 어떤 아이는 여전히 출발선 근처에서 주변을 살핀다.


하지만 교육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진도표는 달력과 함께 쭉쭉 나아가고 “이걸 못 하면 뒤처져요”라는 압박이 교실 안팎에서 밀려온다.


그래서 아이보다 부모가 더 뛰고,

부모보다 사교육이 더 앞질러 뛰고,

결국 아이는 수업 시간엔 지루하고 학원에선 숨차고 집에 오면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라는 말을 꺼낸다.


우리는 교육을 마라톤이라 말하지만 현실은 100미터 전력질주를 매일 반복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건 빠른 출발일까?

아니면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속도일까?


‘한 줄 출발’이라는 말은 어쩌면 어른들의 안심 버튼일지 모른다.


“그래, 시작은 공평했어.”라는 착각.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이 한 명 한 명의 리듬이다.


교육은 기다려줘야 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언제 출발했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가느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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