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와이너리 투어
2년 전쯤 지인이 Saturna Island라는 곳에 있는 와이너리를 샀다고 했다.
밴쿠버에서 거의 20년을 살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섬이었다. 밴쿠버 아일랜드 근처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워낙에 작은 섬이라 한 번에 가는 페리도 없고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몇 번을 초대받았지만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2년이 흘러버렸다.
갑자기 생뚱맞게 웬 와이너리? 우리보다 몇 살 위인 백인 부부인데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주중에는 밴쿠버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이 섬에서 머물며 와이너리의 농장 일을 한다고 한다. 왔다 갔다 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다 싶었는데 페리 대신 sea plane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15분이면 온다고... 그래도 매주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 변호사로 많이 성공하긴 했나 보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 여름이 지나기 전 하루 가볍게 당일 여행으로 다녀오자 하고 아침에 출발했다. 휴가철이라 페리 타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몇 주 전에 미리 예약을 해뒀기에 별 무리는 없었다. Galiano Island에서 내려서 다음 페리를 기다렸다. Saturna Island로 들어가고 나오는 배는 하루에 두 번씩이다. 낮에 한번 저녁에 한번. 우리는 오후 1시 30분 도착했다. 이 작은 섬에는 그럴듯한 식당도 가게도 없다고 하니 아마도 페리 터미널 근처가 제일 번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전화나 데이터 연결이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미리 구글맵을 작동시키고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니 비포장 도로가 나왔는데 살짝 당황한 순간 우리를 데리러 나온 지인을 발견했다. 페리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시골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반가워해 줘서 우리도 너무 고마웠다.
지인의 이름을 딴 "Sage Hayward Vineyards"라는 간판이 보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시골 와이너리 풍경이 펼쳐졌다. 한 달 전에 식당도 오픈했다고 하니 우리가 타이밍은 잘 맞춰서 온 것 같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주인장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된 스토리를 들으니 아주 뜬금없는 투자를 한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이 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삼촌, 작은 아버지 등 남편 쪽 식구들이 이미 오랜 시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기간에 대도시를 피해 성인이 된 두 아들을 포함하여 온 식구가 친척들과 함께 이 섬에서 몇 달을 지냈는데 그때 와이너리가 싼값에 매물로 나왔다고 한다. 몇 년간 방치되어 있었기에 해야 할 일은 엄청 많았지만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딱이라는 느낌이 온 것이다. 물론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되니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은 사람 상대하는 변호사 일을 하다가 주말에 이곳에서 몸으로 농장 일을 하니 스트레스도 없고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한다. 교수인 부인은 주로 마케팅 쪽을 담당한다며 그 일도 아주 잘 맞는다고 한다.
식사 후 와이너리 투어를 하며 각종 실패담과 성공담을 들었다. 직접 포도송이 하나하나 만져가며 어찌나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는지 한 시간도 넘게 이곳저곳을 들여다본 것 같다.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니 수익이 날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리겠다 싶지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그거면 됐지 뭐. 작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와인들을 몇 병 사고 작별인사를 했다. 원래도 친절이 몸에 밴 가족이지만 멀리까지 와준 손님이라고 하도 극진한 대접을 해줘서 우리가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전에 섬을 한 바퀴 돌아봤다. 워낙 작은 섬이라 특별한 관광지는 없지만 East Point Park라는 해변가를 가보라고 했다. 어차피 캐나다는 어디든 아름다운 자연이 관광지이니 예상했던 바이다. 같은 태평양이지만 이쪽 섬에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멋진 구름과 바다와 귀여운 등대가 어우러져 살짝 신비롭기까지 했다.
해변을 둘러보고 캠핑장을 둘러봤다. 우린 또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여기는 어떤가 한번 봐줘야지. 구글 네비가 안내한 곳이 마침 페리 선착장과 가까워서 와봤더니 너무나 허접한 사설 캠핑장이다.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고 꽤 괜찮아 보이는 캠프그라운드를 발견했지만 완전 반대 방향이라 갔다 오기엔 시간이 좀 빡빡하다. 그쪽을 먼저 갔었어야 하는데 아깝다. 페리에서 캠핑 가는 사람들을 꽤 봤는데 거의 그쪽으로 갔지 싶다.
하긴 밴쿠버 아일랜드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단기 여행에 RV Trailer를 끌고 페리 타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연결되는 트럭과 함께 길이로 계산을 하기에 편도로 몇백 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라 나중에라도 트레일러를 끌고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긴 하다.
저녁 8시 출발 페리를 탔더니 마침 해가 멋지게 넘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밖에서 오래 즐기진 못했지만 옆에 있던 호탕한 아주머니가 굳이 우리 사진을 뒤에서 찍어주겠다고 하셔서 작품사진 하나는 남겼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페리를 두 번 갈아타고 밴쿠버를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돼간다. 당일 여행으로는 좀 힘든 일정일 수 있지만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곳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