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c National Park, Washington State
이번 가을엔 어디로 갈까 계획을 세우던 중 작년 가을이 생각났다. 매년 9월 몇 주간 휴가를 내서 어딘가로 떠났었는데 작년엔 2주간 미국 워싱턴주 올림픽 국립공원을 다녀왔었다. 이곳은 부지런을 떨면 밴쿠버에서 차로 당일치기도 가능한 거리인데, 제대로 국립공원에 파묻혀 보려고 2주를 넉넉하게 잡았었다. 조금이라도 그 여행의 기억이 남아있을 때 남겨보려고 얼른 사진첩을 뒤졌다. 미국 서부 시애틀이 있는 있는 워싱턴주에 위치한 올림픽 국립공원은 영화 트와일라잇 (Twilight)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사이즈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우선 최단 거리로 봤을 때 Port Townsend라는 항구로 페리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그동안 시애틀은 차로 여러 번 내려왔었지만 이렇게 중간에 해변 도로로 빠져서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길도 경치도 너무 예쁘고 낭만이 가득한데 우린 왜 그동안 이 길을 한 번도 안 와봤을까. 페리 시간만 아니면 중간중간 세우고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열심히 달려서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작은 규모였다. 그리고 우리처럼 예약을 안 한 차는 저쪽 라인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찮다.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출발 전에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뒤에 캠핑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상태라서 온라인 사전 예약이 불가능했다. 직원이 직접 전체 길이를 줄자로 재고 거기에 따라 요금을 부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눈앞에서 몇 대의 페리를 놓치고 어두 컴컴한 저녁이 돼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하긴 덕분에 페리 안에서는 끝내주는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첫날밤은 캠핑장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깜깜할 때 페리에서 내린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저녁 늦게 도착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Port Angeles의 월마트 주차장에서 무료로 하룻밤을 지낼 계획이었다. 고맙게도 이런 외곽의 월마트나 카지노 주차장 같은 곳은 무료로 차박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Port Angeles 도 참 아기자기한 예쁜 항구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캐나다의 밴쿠버 아일랜드로 곧장 가는 페리를 탈 수도 있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주하며 첫 번째 캠핑장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크레센트 호수를 끼고 있는 Fairholme Campground이다. 이 호수는 워낙에 커서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에 휴양지나 예쁜 별장도 많았다. 이곳에 며칠 있으면서 물놀이도 하고, 카약도 타고, 근처의 트레일도 가고, 산꼭대기에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Hurricane Ridge 도 갔었다. 산 밑에는 분명 더운 날씨였는데 미리 정보를 알지 못하고 반팔을 입고 갔다가 너무 춥고 바람이 세게 부는 바람에 10분도 채 못 있고 차 안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들은 용케 알고 완전 무장을 하고 왔던데...
그다음 캠핑장은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는 Kalaloch Campground였다. 똑같은 태평양인데 밴쿠버에서 보는 바다와 왜 좀 달라 보이는 걸까. 뭐랄까.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라 해야 할까? 역시 이곳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바닷물이 빠지고 엄청 넓어진 해변을 한참을 걸었다. 이런 멋진 자연 속에 우리가 속해있다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그렇게 신선놀음을 며칠 하고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Ocean Shores Beach. 이곳은 또 다른 매력이 있는 해변이었다. 새로운 캠핑장에 트레일러는 세워놓고 차로 근처를 돌다가 발견한 곳인데 모래사장까지 차들이 계속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도 되나? 하면서 다른 차들을 따라갔는데 남편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긴 모래사장 위를 오프로드 트럭들이 마구 달리는 것이었다. '우와 ~~ 이런 데가 있었네' 하며 우리도 달리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빠지고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지금 이 시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크게 심호흡하며 바다 공기를 즐겼다.
이곳에서 너무 재미있었던지라 다음 날 먹을 것을 싸들고 다시 왔는데, 하필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날처럼 모래사장 위를 차로 달리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어제 안 왔으면 어쩔 뻔? 그런데 이번엔 또 전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래도 근처에 빌려주는 곳이 있는 것 같은데... 물어보니 조금만 나가면 빌려주는 곳이 많다고 한다. 남편은 또다시 흥분하며 당장 빌리러 갔다.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탈 수 있다며 한 시간 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해변에 누워 책을 보고, 남편은 혼자 아주 신나게 타고 왔다.
이렇게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정은 마치고 밴쿠버로 올라오는 길에 도시들을 들렀더니 도시는 역시 또 도시만의 매력이 있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
몇 달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데 아 ~~ 또 가고 싶다. 여행은 중독이라고 하더니 가면 갈수록 더 가고 싶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