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있다면 분명 이렇게 생겼을 거야

아이슬란드 디지털 디톡스 여행

by koboimda

아이슬란드의 수도 Reykjavik(레이캬비크)의 공기는 스위스에서의 기억만큼 차가웠다. 도심 길 끝에 그림같이 바다가 보였는데, 매우 생경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워크캠프 대기 숙소를 찾았다. 담당자랄 게 따로 없이 워크캠프 봉사자들이 드나들며 운영하는 이 대기 숙소는, 봉사자들이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워크캠프를 시작하기 전에 머무르는 곳이다. 문 앞에 웬 동양 여자애가 캐리어 하나 끌고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빈 침대를 찾아 쓰라고 했다.


짐을 풀다가 말을 튼 친구와 동네 구경 겸 산책을 했다. RPG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만약 했다면 봤을 법한 독특하게 생긴 교회 건물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돌아온 대기 숙소는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항상 음악소리가 나고, 함께 요리한 음식을 나누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맥주도 마시고 수영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마침 다 읽은 책 한 권은 무료한 누군가를 위해 라운지에 기부했다.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대기 숙소의 모습


아이슬란드 땅을 밟은 이틀 째, 사진 속 친구들과 함께 대형 마트에 들러 일주일치 장을 봤다.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약 7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Nupur(누푸르)를 향해 떠나기 위해서다. 대기 숙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제한도 있고, 최종적으로 가야 할 Hrafnseyri(하랖세리)까지는 더 먼 길이라 우선 누푸르에서 3~4일 정도를 머무르기로 했다.


누푸르로 가는 길에 배가 고프면 텅텅 빈 도로에 차를 세우고, 분화구나 바다를 보면서 트렁크를 부엌 삼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향해 달리던 그때의 기분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해가 지지 않는 시간,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어디서나 멈춰 설 수 있는 텅 빈 도로


누프르에서 머물 곳은 폐교 건물이었다. 실내 농구장 바닥에 낡은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하면, 길고양이가 들어와 잠자리를 휘젓고 다니곤 했다. 아침에는 들꽃으로 임시 식탁을 장식하고, 함께 요리를 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Velvet Underground의 Sunday Morning이라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늘어져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풍경과 분위기가 떠오른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곳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지만, 누구의 것도 없어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항상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고, 날씨도 환상적이었다. 인터넷도 없고, TV도 없고, 휴대폰도 거의 터지지 않았지만 정말 행복했다.


여기가 천국인가 봐
우리와 함께 지낸 고양이


누푸르에서의 하루 일과: 배가 고프면 잠에서 깬다 - 해를 쬐고 가볍게 산책을 한다 - 음악과 함께 간단한 아침과 커피(또는 차)를 마신다 - 낯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 - 각자 도시락을 싸들고 탐험을 시작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산, 바다, 하늘, 들판 뿐. 길이랄 것도 없고, 가로막는 것도 없다 보니 "저기 꼭대기에 가보자" 하고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녹지 않은 눈얼음도 만나고, 계곡도 만나고, 산에 올랐다 내려오기도 한다. 그 누구의 발길이 닿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야생의 땅을 밟아나갔다. 엄청난 경사의 자갈산을 미끄럼 타듯 내려오기도 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등에 멘, 아무도 없는 행성 위를 걷는 탐험대였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시즌이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다가, 길을 잃으면 종이 지도를 꺼내 보고(주변에 건물이 없다 보니 지도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가져온 음식도 꺼내 먹고, 지치면 잠깐 누워서 쉬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이런 우리를 쳐다보는 양들에게 인사도 하고...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뻗어서 꿀잠을 잤다.


저 꼭대기에 가볼까?
걷다 보면 어딘가의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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