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디지털 디톡스 여행
사실 아이슬란드에 와서 제가 할 일은 대학 졸업식을 준비하는 거였다. 주인공은 단 6명. 이 작은 대학교는 Hrafnseyri(하랖세리)에 위치한 작은 박물관 옆에서 제1회 졸업식을 열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위해, 우리는 하랖세리의 낡은 건물들을 쓸고 닦았다.
하랖세리의 유일한 주민이자 박물관지기인 Valdimar(발데마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발데마르는 약 10여 년을 덴마크에서 살다가, 이혼 후 아이슬란드로 돌아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발데마르의 말에 따르면, 더 이상 의욕 없는 학생들을 가르칠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랖세리에서 박물관과 함께 살면서, 차로 2-3시간 정도 가면 있는 좀 더 큰 마을에서 도자기 공예를 하는 할머니와 연애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 군인이었다가, 선원이었다가, 인도의 한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이 멋쟁이 아저씨가 나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졸업식 행사가 있기 전까지, 우리가 주로 한 일: 낡은 헛간의 페인트를 벗겨내고 다시 칠하기, 잔디 다듬기, 그리고 박물관과 교회 청소
난생처음 해보는 페인트칠은 쉽고 재미있고 예술적인 일이었다. 커다란 붓에 걸쭉한 페인트를 한가득 묻히고, 건물에다 색을 입히는 작업은 자주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니까. 건물 벽에 낙서를 하려면 조마조마하게 사방을 살펴야 하겠지만, 이 커다란 페인트 붓을 손에 드니, 무슨 특별한 권한이라도 부여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내 노동의 결과가 아주 아름답게 눈에 보여서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있는 부분으로 가기 위해서는, 낡은 페인트를 벗겨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벽을 둘러싼 낡은 페인트를 벗겨내지 않으면, 새로 바른 페인트가 벽에 깔끔하게 달라붙지 않고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일은 페인트칠과는 달리 아주 힘들고 지루하다. 벽에 붙은 낡은 페인트를 끌 판이나 쇠꼬챙이 같은 것으로 긁어내다 보면 마른 페인트 가루가 머리에 푸스스 떨어지기 십상이었고, 힘을 주어 일하다 보니 손이 도구 손잡이 모양대로 굳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다만, 어쩌다 커다란 페인트 덩어리가 툭 하고 잘 떨어져 나가면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적다 보니 지금 일에서 재미없는 부분도 이겨낼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먼 곳으로 날 보낸 몇 주 전의 지친 나 자신에게 감사하며, 행복한 노동을 이어갔다. 워크앤라이프 밸런스가 확실한 유럽 아이들과 꼬박꼬박 휴식 시간도 가졌다. 수다를 떨면서 시답잖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종종 발데마르가 간식을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한창 눌어붙은 페인트를 떼어내고 있는데, 뒤에서 '푸우~'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서 뒤돌아보니 고래 떼가 놀고 있었다. 맙소사! 기대치 못한 장관에 다들 넋을 잃고 고래 떼를 구경했다. 자연스레 이어진 휴식 시간 동안에는 서로가 앞다투어 이 놀라운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며칠에 걸린 작업의 결과물은 아주 뿌듯했다. 숙소 앞 잔디를 고르는 일이나, 건물 청소를 하는 일도 즐거웠다. 나는 잔디를 고르는 일을 좋아했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갈퀴로 지푸라기를 긁어모으면 푸른 잔디가 나타나는 것도, 잔디 깎는 기계를 카트카처럼 몰고 다니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머리 아픈 일이 생기면 이때가 생각난다. 노동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즐기고, 순수하게 내 손과 발을 써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나 싶다.
드디어 대망의 졸업식 날! 약 250명 정도가 참석한 단란하고 훈훈한 졸업식을 끝으로, 우리는 뒷정리를 마치고 한 자리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저녁 시간,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저 멀리 보이는 폭포까지 드라이브를 갔다. 눈으로 보기는 가까웠지만, 피요르드 해안의 특성상 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갔다. 폭포의 이름은 Dynjandi(딘얀디)였는데, 폭포 주변에 날파리가 정말 너무너무너무 많아서 우리는 딘얀디가 아이슬란드어로 날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폭포는 높이가 100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폭포를 하염없이 감상했다. 마구잡이로 튀는 물방울은 매번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게 된다. TV도, 인터넷도, 전화도 잘 안 되는 이곳에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들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다.
노동의 즐거움이란, 나의 땀이 만들어낸 변화를 눈으로 보고, 그 결과물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생한 나에게 주는 소소한 보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밤에 뜬 햇살에 부서지는 딘얀디 폭포의 물방울을 보면서, 뻐근한 근육통을 훈장처럼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