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나라가 만나는 식탁

아이슬란드 디지털 디톡스 여행

by koboimda

우리는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했다.


주 메뉴는 파스타나 스프, 샌드위치 등이었지만, 돌아가며 자국의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음식을 먹어만 봤지, 만들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랖세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시내 마트에 한국 음식 재료가 있을리 만무했다.


IMG_7333.JPG 아이슬란드에서 한국 요리 고민하기


발데마르의 숙소 한 켠, 작은 민트색 부엌에서 나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다행히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떠올랐다. 추석과 설날에는 그렇게 귀찮았던 만두 빚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만두피를 구할 수는 없었고, 직접 반죽을 하고 냉장고에 숙성을 시켜뒀다. 채식주의자인 카르멘을 위해 소는 야채로 만들었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하랖세리에서 믿을 건 감 뿐이었다.


빚어둔 만두의 반은 냄비에 물을 끓이고, 체에 얇은 면을 덮어 찌고, 나머지 반은 팬에 구웠다. 간이 맹맹해서 간장을 같이 냈더니 덴마크에서 온 미켈이 치트키를 쓴다고 놀려댔지만 나에게는 매우 뿌듯한 성공이었다.


IMG_6973.JPG 발데마르의 부엌
IMG_4341.JPG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하랖세리의 박물관지기인 발데마르를 제외한 우리 7명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다. 카르멘은 독일에서, 마티나는 체코에서, 미켈은 덴마크에서, 알렉산드라는 슬로베니아에서, 클라우디아는 룩셈부르크에서, 그리고 예브게니아는 러시아에서 왔다. 일곱 개의 나라가 만나는 식탁에서, 우리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덴마크에서 온 미켈은 'medro(멜호)'라고 부르는 '식사 중의 침묵(food & silence)'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 구글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조금 의심스럽긴 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거니 미켈...


룩셈부르크에서 온 클라우디아는 토블레론 초콜렛을 녹여 우리를 살찌우는 초콜릿 무스를 만들어줬다. 디저트 시간을 따로 갖는 유럽식 문화 덕분에 아이슬란드에서의 2주는 아주 포동포동했다.


IMG_7086.JPG 우리를 살찌우는 클라우디아


우리는 주로 영어를 썼고, 내가 주로 서양 문화에 맞춰 생활했다. 하지만 한국어만큼은 인기 최고였다.


어느 날은 옹기종기 모여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각자의 실력을 뽐내다가, 내가 한국인의 기본인 종이학접기를 알려주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한국어로 알려달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고 있으면 편안해진다고 녹음을 해가기도 했다.


P6230019.JPG 6개국어 모음집


모두가 이방인이었던 아이슬란드에서, 한 식탁에 모인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고, 우리끼리 터지는 인사이드 조크가 있었다. 예브게니아와는 러시아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던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길을 걸었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약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다양한 한국 요리를 선보일 수 있겠지만, 그 때 서툴게 빚은 만두를 함께 먹은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물론 클라우디아의 초콜릿 무스는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포동포동하게 오른 살과는 깔끔하게 이별했다.


IMG_7336.JPG 아이슬란드,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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