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이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 여기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 는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익히 알고 있듯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착근되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는 특정 개인의 임의적, 독점적 권력 사용을 막고 인민 대중의 삶과 기본권을 지키는 사상적, 실천적 원천으로 존재해 왔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속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의해 초래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인 위기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항상 갈등에 직면하며 그러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기에 이번에 마주한 위기 역시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 위기로부터 민주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제도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문서(헌법, 텍스트 등)’의 차원에서 개념적, 이념적으로는 존재했지만, 제도적인 차원에서 안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국민적 의식의 차원에서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듯 한편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독재를 가리기 위한 그럴듯한 가면으로 전용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운동’의 차원에서 존재했을지언정, 일상적, 교육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 온전히 착근하지 못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운동’의 물결이 대학가를 휩쓸었지만, 1987년 이후 그 물결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 증발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이번 내란 사태는 실상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썰물처럼 빠져버린 ‘87년의 민주화’가 남겨 놓은 모종의 ‘결락’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우리는 이 결락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차원은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화’라는 공식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는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화’라는 공식이 자리 잡으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실현되었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실상 이번에 윤석열에 의해 계엄이 선포되었지만, 그러한 내란 시도가 신속하게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은 ‘계엄은 이제 구시대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심지어 군부에 이르기까지)에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폭압적인 계엄을 저지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윤석열의 사례는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화’라는 공식이 전혀 들어맞지 않으며, ‘from 후진 to 선진’과 같은 선진 사회로의 단선론적 진화론이 매우 안이한 사고 방식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민주주의가 권력자에 의해 일순간에 정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윤석열은 한국과 같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 속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특정 인물이 그 권력을 쥐었을 때, ‘87년 체제’가 증명한 것으로 ‘오인’되어 왔던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주의의 안착/정착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매우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윤석열은 민주주의가 결코 경제 수준의 제고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것이 아니며, 언제라도 특정 권력자에 의해 중단, 파괴될 수 있다는 ‘현실’을 우리에게 드러내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 혹은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화라는 안이한 공식은 자칫 윤석열과 같은 인물이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인식론적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두 번째 차원은 민주주의의 일상화, 의식화다. 이 두 번째 차원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차원으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이기도 한데, 실상 한국 사회는 그간 ‘경제 발전에 따른 민주화’라는 도식에 기댄 채, 민주주의를 일상적, 의식적 차원에서 착근시키는 것을 소홀히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상적 차원에서 착근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교육의 영역을 보면 그 즉시 명확해진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이른바 ‘민주화’ 이후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식민 교육 관념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더해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교육에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더해지면서 더욱 격화된 경쟁의 논리가 교육 본연의 역할을 집어 삼키고 있다.
이 두 번째 차원은 민주주의가 결코 ‘나쁜 정치인 VS. 선량한 시민’이라는 구도에서 안착될 수 없다는 세 번째 차원으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듯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운동의 물결은 ‘대통령 직선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는 이미 이룩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 성과를 즐기는 것 뿐’이라는 인식이 이른바 ‘포스트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이 흐름을 타고 대중문화 - 그 결과물이 이른바 ‘K-컬쳐’다 - 는 극단적으로 발전했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 의식의 저변이 과연 어느 정도로 형성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결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아둔함과 어리석음이 사회 전체를 구렁텅이 빠뜨린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 자체, 나아가 우리 각 개인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지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추출해야 할 근본적인 교훈은 민주주의가 결코 시위 혹은 운동의 차원에서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그저 ‘사악한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위기의 반복으로 귀결될 뿐이다.
황망한 계엄령 선포로 인해 온 나라가 위기에 빠져 있는 이 와중에 국민의 힘 윤상현 의원이라는 인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다 잊고 다시 뽑아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윤석열의 멍청한 계엄 시도보다 윤상현이라는 사람의 이 말이 더 무섭다. 앞서 언급한 윤석열이 제기한 민주주의에 관한 과제는 ‘탄핵’보다 더 어렵고 근본적이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바마도 이야기했듯 ‘민주주의는 어렵다.’ 하기에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라는 과제’를 이번 기회에 좀 더 깊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만약 또 다시 누군가를 권좌에서 끌어내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다시 뽑아줄 것’이라는 악마적 예언은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