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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라는 유령에 관하여

by gramscist

한국만큼 ‘새대론’에 집착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90년대 중반쯤 등장한 X세대 이후로 Z세대, Y세대가 등장했고, N세대가 있었으며, 이제는 MZ세대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다양한 방면에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집트 벽화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써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세대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온갖 용어를 만들어내 계속해서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인 것 같다.


일단 ‘MZ’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적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사실 ‘MZ’라는 단어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쳐 만들어진 합성어이고, 주로 한국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직 한국뿐이라고 한다. 또한 MZ세대는 애초부터 마케팅 목적으로 생겨난 개념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라는 개념은 본래 서양에서도 사용했던 개념이지만, 그것을 Z세대와 엮어 MZ세대라는 개념을 조합해낸 장본인은 ‘트렌드 코리아’라는 시리즈를 계속해서 펴내고 있는 김난도 교수다. 요컨대 MZ세대라는 개념에는 애초부터 그들을 ‘소비자’라는 범주 안에서 묶어 내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미디어가 그려내고 있는 MZ세대는 주로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그들은 문해력이 떨어지고 철저하게 이해관계를 따져 절대로 손해를 보려하지 않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데 더욱 중요한 것은 미디어에서 그려내고 있는 MZ세대를 바라보는 비MZ세대, 즉 어른 - 실상 이 ‘어른’마저 3, 40대 정도에 불과하지만 - 들의 태도 자체다. MZ세대를 소재로 삼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들 절대 다수는 그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이며 문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결코 비판적이거나 계도적 관점에서 다루지 않는다. MZ세대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쿨’한 태도로 받아주거나 희화화할 뿐이다. 미디어 속에서 ‘어른’은 속으로는 궁시렁거릴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정면에서 그들을 꾸짖거나 바로 잡지 않는다.


하지만 MZ세대의 무책임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모습이 미디어의 소재, 그것도 주로 코미디 장르 콘텐츠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상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관점 혹은 속마음을 이면에 깔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일반적인 스토리라인 그대로, 어른들이 MZ들의 무책임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문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MZ세대의 그러한 특성이 코미디의 소재가 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MZ세대를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는 시선에는 그들을 불편하면서도 경멸하는 시각으로 바라 보는 태도가 은밀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이야기는 결국 ‘요즘 젊은이들은 다 그래’라는 얼버무림으로 끝나고 만다.


더불어 MZ세대를 포착하는 시선의 편향성 역시 문제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MZ라는 개념 자체가 본래부터 소비트렌드를 포착하려는 의도에서 탄생된 용어다. 하기에 MZ세대는 또한 소비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MZ세대라는 개념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즉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가 그러하다고 판단하는 오류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특성이 본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의 주류 언론은 결코 소비 이외의 측면에서 MZ세대를 포착하지 않는다. ‘MZ의 성지’, ‘MZ의 핫템’ 등 MZ를 둘러싼 모든 것은 소비로 연계된다. 마치 MZ로 구분되는 나이대에 속하는 사람의 100%가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소비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의 편향성은 그것이 ‘사실’을 포착하는 것으로 넘어 오히려 반대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수준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미디어의 역할은 이미 단순히 사실을 전달해주는 것을 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단계로까지 강화,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젊은 세대의 현실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파악하는 데 있어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현 세대에게 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있는 MZ세대의 모습은 현상황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MZ세대를 만들어내고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무책임하고 위선적이며 나아가 착취적이기까지하다. 한국 사회는 MZ의 철없음을 비웃지만 그들을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 ‘요즘 애들 다 그래’라며 짐짓 그들을 쿨하게 인정해주는 척 하지만, 결국 MZ세대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무책임, 개인주의, 문해력 부족, 이 모든 것에 의해 초래되는 문제의 1차적인 책임은 MZ세대 본인이 져야 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무책임과 문해력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웃지 못할 사건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문제는 곧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MZ세대의 그러한 특성은 개그 소재에 그치고 있다.


또한 MZ세대를 소비세대로 몰아가는 미디어의 관점은 편향적이다 못해 악의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오직 소비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일방적으로 송출하면서도, MZ 스스로 자신들이 소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즉, 실업, 지역, 인구 붕괴 등등)으로 몰려 가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기에 한국 미디어의 MZ세대에 태도는 그야말로 착취적이다. 미디어가 MZ세대라는 ‘현실’을 만들어내 그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MZ세대다운 거야’라고 속삭이는 사이, 정작 그 세대는 소비의 늪에 빠져 스스로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하게 되었다.


짐짓 모든 사회는 세대를 아울러 통합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세대가 분열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세대간 갈등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그토록 집착하는 ‘세대론’은 통합은 커녕, ‘젊은 세대’를 방치하다 못해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MZ세대라는 개념은 세대를 포착하는 용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과 방치 그리고 위선과 착취를 응축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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