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혼란
어센던트, 반격, 그리고...
절망 가득한 뉴욕 상공으로 한 줄기 밝은 구름이 유유히 다가왔다.
그것은 서서히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며 웅장하고 강인한 자태를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또다른 적인가?”
“혹시 EQI에서 보낸 지원군 아니야?”
8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림하는 천사.
EQI 다목적 전술 비행체 어센던트(Ascendant) 였다.
어센던트의 양자 플라즈마-에테르 드라이브 4기에서 눈부신 푸른 섬광이 터졌다.
지이이잉~
절망에 잠긴 시민과 병사들의 시야가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시민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적이 아니길 기도하는 일.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마치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동시에, 어센던트 기체 전면에 EQI 로고가 거대한 홀로그램 형태로 투영되었다.
뉴욕 상공에.
‘아… 신이시여.’
로고는 은하수를 넣어놓은 구슬 모양.
금빛과 은빛의 고리 띠가 교차하는 형태로 마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듯 했다.
고개를 들고 로고를 쳐다보는 에피머들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어센던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포인 고출력 양자 플라즈마 캐논 2문을 가동했다.
쿠구우웅! 쿠쿵. 쾅 쾅!
잿빛 하늘 아래, 붉은 폭발이 버섯구름처럼 피어올랐고, 맹렬히 날뛰던 놈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전까지의 어떤 공격보다 강력하고 뜨거운 화력이었다.
연이어 부포의 미사일 포드 8문에서 정밀 유도 폭격이 쏟아져 나왔다.
어센던트는 하늘의 심판자처럼 에피머 밀집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끔찍한 울음소리는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맹렬한 기세로 날뛰던 에피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그리고 어센던트의 하부 해치가 열리며 붉은 조명 아래 강하 패키지를 착용한 20명의 사람들이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제라프 전술팀 파이어레인.
제 2전술팀 스톰 브레이커.
강하!
강하 패키지의 역추진 엔진이 불을 뿜으며 강하 속도를 조절했다.
요원들은 숙련된 솜씨로 에피머들이 날뛰는 곳을 향해 전자 유도 미사일을 발사했고, 공중에서는 어센던트의 압도적인 화력 지원이 쏟아졌다.
하르켄 팀장을 선두로 한 파이어레인 팀원들이 K26 전자소총을 겨누며 사방으로 산개했다.
푸른 광선이 맹렬하게 작렬하며 에피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인원.
하지만, 200마리가 넘는 에피머들을 눈 깜박할 사이에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시민들과 군인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는 죽지 않는다.”
“도시를 지켜내자!”
절망의 끝에서 제라프라는 희망이 강림한 순간이었다.
“제라프, 여기는 뉴욕 자치부대 알렉스입니다.”
알렉스 자치부대 사단장의 굵은 목소리가 무전기를 탔다.
“허…헉헉, 여기는 제라프, 말씀하세요.”
하르켄 팀장의 헐떡이는 숨소리.
뉴욕 중심부 격전의 치열함이 짐작되었다.
알렉스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머쓱해져서 목소리 톤을 낮췄다.
“현재 전황은 어떻습니까?”
잠시 뒤, 차분하게 정돈된 하르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울렸다.
“뉴욕 중심부 진입 완료.
에피머 60% 잔존 확인.”
헉헉…
“알렉스 지휘관님?”
“네. 제라프 말씀하십시오.”
“EQI의 권한으로 지금부터 자치부대는 저희 제라프의 지휘를 받습니다.”
“알겠습니다.”
“각 방어선은 즉시 반격을 개시해 주십시오.
후속부대는 시민 구출 작전과 병행해서 진행합니다.”
“뉴욕 자치부대. 제라프의 명령을 따릅니다.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사방에 울리는 제라프의 명령은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뉴욕 상공을 굳건히 지키는 어센던트의 위용.
지상에서 맹렬히 활약하는 제라프 팀의 전자소총 사격음.
그것들이 에피머들의 광기 어린 울음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뉴욕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생존한 병사들은 다시 무기를 움켜쥐고 에피머 잔당들을 향해 돌격했다.
제라프 팀이 뚫어놓은 활로를 따라 시민 대피도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이전까지 절망에 젖었던 시민들은
제라프 대원들의 압도적인 전투력과 다시 일어선 병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드디어 작은 희망의 불씨를 되찾았고,
공포가 서서히 물러갔다. 그들의 몸은 공포와 절망으로부터 자유를 찾았다.
그 시각 EQI 본부.
EQ는 실시간으로 전장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전술지원과 후방 지원에 집중했다.
메를린 릴리 본부장은 현장 지휘권을 제라프 팀에 위임하고 스크린의 데이터만 주시했다.
그녀의 지시는 하나였다.
“어센던트는 제라프 팀의 요청에 따라 각 자치도시 상공에서 화력 지원에 집중해 주십시오.”
뉴욕에서의 성공적인 반격.
이를 시작으로 각 자치도시에 배치된 어센던트들이 번개처럼 기동했다.
캔자스시티 상공에 나타난 어센던트.
지상에는 이미 제라프 3팀과 4팀이 투입되어 있었다.
폭발의 섬광이 땅을 뒤흔든 후에, 전자소총의 푸른 전자 탄환이 쏟아져 나오며 잔당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제라프의 섀도우 워커와 아이언 포스 팀이 왔습니다!”
“후퇴하지 마!”
“우리도 반격해야 합니다!”
“저놈들의 목을 물어뜯으러 가자!”
캔자스시티의 자치부대 병사들은 제라프 요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그들의 전투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유기적이었다.
병사들은 제라프 팀 뒤에서 화력망을 형성했다.
요원들은 후방 지원을 받으며 에피머를 향해 진격했다.
마이애미, 시카고, 덴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도시 상공의 어센던트에서 정밀 폭격이 쏟아졌다.
이미 투입된 제라프 요원들과 사기가 오른 자치부대 병사들이 지상에서 에피머들의 기세를 꺾었다.
무너졌던 방어선은 재정비되었고, 자치부대 병사들은 제라프의 지휘 아래 통일된 전술로 에피머들을 밀어붙였다.
도시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비명.
이제 전투의 함성과 병사들의 격앙된 외침으로 바뀌어갔다.
“단숨에 밀어버려!”
릴리 본부장은 실시간 전황도를 응시했다.
검은색으로 물들었던 도시들의 색깔이 점차 푸른색으로 바뀌어갔다.
승리의 빛이 보였다.
그녀는 EQ로부터 각 전선에서 격퇴되는 에피머의 수와 아군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예상대로 에피머들의 웨이브는 순수 공격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패턴을 파악했습니다.”
EQ의 음성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현재 추세라면 오늘 밤 안으로 자치도시가 안정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EQ의 목소리에는 다시금 긴장감이 스쳤다.
“릴리 위원장님! 새로운 EP-Core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이번 웨이브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입니다.”
EQ의 경고는 곧이어 현실이 되었다.
안정화되던 전황이 순식간에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뉴욕 상공의 어센던트 스캐너에도
엄청난 규모의 적 신호가 포착되었다.
“하르켄입니다. 릴리 본부장님!
지금 대규모 인원이 뉴욕으로 접근 중입니다!
에피머 1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하르켄 팀장의 무전 보고가 울렸다.
본부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10만? 휴머니스 놈들이 진짜 공격을 시작하는군.”
릴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 메인 스크린에 새로운 존재가 포착되었다.
마치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을 아는 듯 냉혹한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휴머니스 간부.
그리고 그의 뒤에서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의 존재들.
오히려 악명높은 간부보다 더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10개의 그림자.
“하르켄 팀장! 즉시 철수하라.
그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릴리의 다급한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하르켄 팀장은 이미 새로운 위협의 중심에 있었다.
“늦었습니다, 위원장님. 시민들을 후방으로 안전하게 대피하게 해 주십시요.”
하르켄의 목소리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제 뒤에 있는 드리트리 노땅좀 데려가세요.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아니 저 영감은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EQI 본부에 처박혀있는 날이 없어요.”
하르켄 팀장 뒤에서 드리트리가 계속 말을 거는 듯했다.
하지만 하르켄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전방만을 응시했다.
10만 마리의 에피머 무리들이
검은 파도를 이루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중에 몇 마리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가 통제가 되고 있는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르켄은 아군을 둘러보았다.
어센던트 1기.
파이어 레인. 스톰 브레이커.
3만에서 1만 2천이 된 뉴욕 자치부대.
하르켄은 목이 마른지 침을 한번 삼키고 무전기에 명령을 내렸다.
“제라프에서 뉴욕에 전달한다.
자치도시에 남아 있는 모든 전투인원은 각자 위치를 사수하라.”
아군들 뒤로 저 멀리 시민들이 보였다.
“우리 뒤에는 대피 중인 시민들이 있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옛썰!”
“뉴욕 자치부대는 시민들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팀장님 말씀 들었지?”
“파이어레인 총원 방어 포지션!”
“스톰 브레이커! 이곳은 우리가 막는다.”
항상 선두에 섰던 상준.
하지만 오늘은 하르켄이 선두에 섰다.
“민준아. 팀장님 일 좀 하시는 거 같은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흐흐… 멍청한 놈. 미국은 서쪽에서 떠. 그것도 모르냐.”
“시끄러워 멍청한 놈들아. 헤이~ 로버트 수아랑 첸 잘 챙겨.”
“크큭. 까딱하면 다 죽게 생겼는데? 가능하다면...”
“아니 선배들은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저 정도 숫자면 거의 확실히 죽는 거 아닌가요?
으흐흐. 분위기 보면 동네 마실 온 것 같이 느껴지는데요.”
수아의 허세를 가장한 떨리는 목소리. 그 떨림이 무전을 타고 흘러나왔다.
팀원들의 농담 속에서도 그녀의 불안감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르켄은 상준에게 단독 암호화 통신을 신청했다.
상준이 허락하자 진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한…
“부팀장. 아니 상준아 듣기만 해라.
너도 느끼겠지만, EQI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
“…”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아.
터널 사건 이전에 이미 위원장님하고 드리트리 영감과는 이야기가 되었었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EQ 만은 믿어라.
사람은 흔들리지만, EQ는 흔들리지 않더라고.”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저는 팀장님을 의심 했었다구요.”
상준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통신을 타고 울렸다.
“미안하구나.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서 위장 좀 한 거지. 뭐, 꽤 재밌기도 했고 말이야.”
“살아나가기만 해봐요. 엉덩이를 걷어차줄 테니까.”
“하핫. 그래. 그래.
자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꼭 살아남아라 상준아.”
“팀장님도 꼭 살아서 보자구요.”
지옥의 문이 아가리를 벌리는 곳.
옆으로 길게 뻗은 전장이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