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지하도시

by 훌륭하다

[알림: EQI 네트워크 불안정 - 로컬 서버 어센던트X 전환]


육중한 강철 문이 열리자, 비릿한 혈향과 기계기름 냄새가 뒤섞인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준은 어둠이 일렁이는 심연을 응시하며 신형 제복의 깃을 바로 세웠다.



“팬텀은 정찰, 제라프는 나를 따른다.”



상준의 명령과 동시에 뒤를 따르던 제라프 전술팀이


보조 부대와 함께 이동 캡슐에 몸을 실었다.



백 개의 캡슐들이 수직 통로를 향해


푸른 화염을 내뿜으며 투하되었다.



상준과 팬텀 팀은 캡슐 없이 자유 낙하로 그 선두에 섰다.



“블랙나이츠, 전투 모드.”



공중에 부유하던 일곱 기의 블랙나이츠가 기체 구조를 비틀었다.


철커덕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3m 높이의


육중한 강철 기사로 변모한 그들은,



낙하하는 관성을 유지한 채 통로 벽면을 차고


내려가며 지면에 착지했다.



칠흑 같은 장갑 위로 AID 에너지가 혈관처럼 흘렀다.



콰앙-!



착지와 동시에 사방에서 붉은 눈들이 일제히 점멸했다.


100마리의 알파들이 내지르는 고주파 비명에 맞춰,


벽면과 천장에서 끝도 없는 에피머 군단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셀렉션 전개.”



상준의 나직한 한마디에 자칼과 팬텀 팀의 손목 장갑에서


고밀도로 압축된 푸른 내공 칼날이 뻗어 나왔다.



스으으윽- 콰아앙!



공중을 가르는 푸른 궤적마다 에피머들의 사지가 종잇장처럼 절단되었다.


반면, 캡슐에서 내려 합류한 제라프 5개 팀은


아직 팬텀처럼 BS(신내공 시스템)를 구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입받은 CF 모듈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각기 독특한 움직임으로 괴물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단장님, 11시 방향! 침식된 자들입니다!”



에피머들의 틈새를 뚫고 30개의 검은 그림자가 쇄도했다.


그들의 검은 보랏빛 궤적을 그리며 제라프 팀의 방어선을 종이처럼 찢어발겼다.



“이놈들은 내가 맡지.”



상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바닥의 강철판이 찌그러지며 푸른 파동이 퍼져 나갔다.



[ AID 6급: 에너지 조작 ]



상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에너지가 공간을 장악했다.


그의 앞에는 1.5m의 검이 생성되었고,


투명할 정도로 맑은 고밀도의 에너지가 검신에 서렸다.



스걱-!



비명조차 없었다.


상준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침식된 자들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위협적인 공격들이 정밀한 내공 칼날 앞에 허무하게 부서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정적만이 남았다.



지하 1,500m.



마지막 게이트를 파괴하고 들어선 침투 팀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이 아닌, 찬란한 은백색의 문명이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천장에는 거대한 AF 코어들이 박혀


기괴한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마천루들이 숲을 이루고,


소음 없는 자기 부상 트레인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아래 흐르는 것은 담담해서 더 소름 끼치는 공포였다.



“이게… 휴머니스가 사는 방식인가.”



상준의 시야에 들어온 거리의 풍경은 거대한 사육장이었다.


똑같은 회색 단복을 입은 시민들은


정밀하게 설계된 기계 부품처럼 움직였다.



그들의 목 뒤에는 예외 없이 붉게 점멸하는


AF 동기화 칩이 박혀 있었다.



길가에서 아이가 넘어져 울어도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부모로 보이는 이들도 감정이 소멸된 눈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도처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미소 짓는


마더 휴머니스의 영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복종은 안식입니다.


의심은 곧 고통입니다.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지어진 이 도시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된 영혼의 감옥이었다.



5억 명의 인간이 자아를 잃고


오직 시스템의 생존을 위한 생체 부품으로 전락해 있었다.



상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전율이 일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이 공포의 시스템을 마주하자 살기가 들끓었다.



“리나, 유스폴과 아멜리의 신호를 탐지해.”



[리나: 중앙 AF 타워 최상층.


그들이 5억 명의 정신을 하나로 묶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준의 눈에 푸른 안광이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5억 명을 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군.


그 연결된 뇌를 뽑아버리는 것.”



지하 도시의 화려한 조명 아래, 상준과 팬텀 팀,


그리고 5개의 제라프 전술팀이 무기를 고쳐 쥐었다.



5억 명의 동기화된 인간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상준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텅 빈 눈동자가 일제히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시스템: 시가지 전투 모드 돌입]


[경고: 시민의 뇌파가 단일 주파수로 동기화됨]



붉은 눈을 한 수만 명의 시민이


일제히 상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기도, 갑옷도 없었다.


오직 광기에 젖은 눈빛과 시스템에 조종당하는 육신뿐이었다.



자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것도 잊은 채


침투 부대를 향해 몸을 던지는 인간 파도였다.



“단장님, 명령을…”



자칼의 외침에 상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5억 명의 생체 부품.


유스폴은 이들을 살아있는 방패로 내세운 것이다.



“살상은 금지한다.


전원 비살상 모드로 전환.”



상준의 사자후가 울려 퍼졌다.


제라프 전술팀과 보조부대는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췄다.



“3팀 섀도우 워커, 전방 지면 충격파 전개!


4팀과 6팀은 측면 화망 구성!


7, 10팀은 뒤에서 지원한다.


보조부대들은 30미터 뒤에서 재정비하라.”



“넵, 단장님.”



“뭘 꾸물거리나. 빨리빨리 움직여.”



“아…, 누가 한국 도시출신 아니랄까 봐.”



콰아아 앙!



블랙나이츠가 전방에서 거대한 음파 방어막을 형성했다.


달려들던 시민들이 물리적인 충격에 튕겨 나갔으나,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는 끝이 없었다.



그들은 넘어진 동료의 몸을 짓밟으면서도


오직 상준을 찢어발기기 위해 전진했다.



“비열하군.”



상준은 공중으로 도약했다.


셀 에너지를 발끝에 집중해 건물의 외벽을 타고


마천루 사이를 가로질렀다.



슈슈슉-!



그때,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판 뒤에서


Iron March의 저격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 섞여 은폐하고 있었다.



“단장님, 7시 방향 저격 감지!”



리나의 경고와 동시에 상준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궤적을 그리며 날아온 고열의 레이저 탄환이 상준의 망토 끝을 스쳤다.



“제라프 3, 4팀은 시민들의 발을 묶어라!


6, 7, 10팀은 상층부의 저격 포인트 점령!”



상준의 지시에 제라프 팀원들이 슈트로 중력을


조작하며 건물 벽면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BS(신내공)는 없었지만,


고도로 훈련된 전술 기동으로 적의 허를 찔렀다.



[중앙 AF 타워 하부 구역]



타워에 가까워질수록 적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이제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AF 주술로 공격력이 강화된


에피머 알파들이 마천루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기습을 감행했다.



“블랙나이츠, 최대 출력!


AF 타워까지 길을 뚫어라!”



일곱 기의 블랙나이츠가 원형 진을 짜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살상 고주파 탄환이


시민들을 잠재웠고, 손에 쥐어진 거대 소드는


에피머들만을 골라 도축하듯 베어 넘겼다.



[시스템: 고주파 정신 간섭 감지]


[알림: 환각성 AF 입자가 살포되었습니다]



갑자기 지하 도시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은백색의 세련된 도시는 온데간데없고,


상준의 눈앞에 피칠갑이 된 과거의 전장들이 나타났다.



죽어간 동료들, 담담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르켄의 환영.



“겨우 이 정도인가?”



상준은 냉소하며 셀 에너지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AID 6급: 셀 폭풍]



푸른 안광이 폭사하며 환각의 장막을 찢어발겼다.


환각이 걷힌 자리에는 AF타워가 있었고,


꼭대기에서 아멜리가 와인 잔을 든 채


상준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어머, 총 단장님. 여긴 어때요?


지상보다 훨씬 평화롭지 않나요?


누구도 굶지 않고,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완벽한 시스템인데.”



“평화? 자아가 거세된 세계를 그렇게 부르나?


지금부터 진짜 세계를 알려주지.”



상준은 타워의 외벽을 타고 치고 올라갔다.



“막아라!”



수직의 벽면을 평지처럼 질주하는 그의 뒤로 푸른 잔상만이 길게 남았다.


아멜리의 날카로운 비명과 동시에 타워 상층부의


은폐 포탑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고열의 레이저가 상준의 경로를 차단하려 했으나,


그는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탄막 사이를 실처럼 빠져나갔다.



찰나의 순간,


상준은 테라스 난간을 박차고 아멜리와 유스폴의 눈앞에 착지했다.



쿠웅-!



착지의 충격으로 고급 대리석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아멜리는 당황한 듯 손에 든 와인 잔을 떨어뜨렸고,


그 옆을 지키던 유스폴이 육중한 기계 갑옷의


출력을 높이며 에너지 해머를 휘둘렀다.



“단장, 여기까지가 네 한계다!”



유스폴의 해머가 상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상준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을 뻗어 해머의 자루를 흘려보냄과 동시에,


오른손에 생성된 AID 6급 에너지 빔으로


유스폴의 가슴팍을 정확히 관통했다.



치이이익-!



기계 장갑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보랏빛 불꽃을 튀겼고,


유스폴은 비명과 함께 타워 외벽을 뚫고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멜리뿐이었다.



“아멜리 뒤부아. 네가 설계한 이 정교한 사육장도 여기서 끝이다.”



상준의 서늘한 검 끝이 아멜리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녀의 손은 이미 5억 명의 뇌를 과부하시키는


살상 프로토콜 레버에 가 있었지만,


상준의 눈빛은 그녀의 의지보다 빨랐다.



“레버에서 손 떼라. 네 손가락이 움직이기 전에


네 영혼을 먼저 절단할 테니까.”



아멜리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떨리는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상준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자신의 계산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시인하듯 고개를 떨궜다.



“... 후회하게 될 거예요, 상준.


지옥보다 더한 진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상준은 그녀를 제라프 팀에게 인계하며 차갑게 대꾸했다.



“진실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리나, 중앙 제어권을 탈취해라.


시민들의 동기화 칩을 즉시 파기한다.”



[리나: 마스터, 제어권 장악 완료.


5억 명의 정신 구속 프로토콜을 파기합니다.]



타워 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괴한 붉은 신호가 꺼졌다.


광기에 젖어 달려들던 시민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실이 끊긴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붉게 타오르던 그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상준은 무너진 타워 난간 너머로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5억 명을 구했다는 안도감보다,


타워 최하층에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거대한 살기가 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인류 최후의 전쟁은 이제 시작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