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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Jul 17. 2022

형제의 일본 여행기 (2)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며, 싫다고 이사를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일본은 이웃이며, 싫다고 이사를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나의 경험을 들은 형님이 말했다. 

 “과거의 식민지 역사에 대해 두 나라의 인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일본의 조선 주둔군 사령관 우쓰노미야는 3.1 만세운동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조선인이 전국적으로 격렬히 저항하자 그는 윤치호를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조선을 아내, 일본을 남편으로 비유하였다. 조선을 ‘자기 의지에 조금 어긋나게 결혼한 여성’으로, 일본을 ‘거칠고 사려 깊지 못한 남편’으로 비유했다.

 ‘조선에게는 중국이나 러시아는 바람직한 남편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돈 많고 멋있는 엉클 샘(미국)이 있지만 조선을 정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마도 첩으로 삼을 것이다. 조선은 거친 남편과 별거를 원하지만 혼자서는 살아나갈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남편과 타협하고 사는 게 최선이 아닌가’하고 말했다. 이 대화 내용이 조선 지배에 대한 현재까지 일본 사람 대다수의 해석인 듯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자기 의지에 조금 어긋나게 결혼’하였다는 전제는 한국사람과는 다른 인식인 거죠.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 건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합방당했고, 저항을 해도 폭행하고 겁박하여 죽지 못해 함께 사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조선은 고대로부터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수했어요. 건달의 선대가 글을 모를 때 처녀 집안이 글도 가르치고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나중에 힘이 세어졌다고 그 집안을 통째로 삼킨 셈입니다.”  

 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덕분에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냐.’ 하며 ‘한국이 고마워해야 한다’는 일본 사람의 인식과 한국사람이 느끼는 심정은 대한해협만큼이나 간격이 있지.”


 날이 어두워져 와카야마의 남단 작은 섬에 위치한 우라시마 호텔에 묵었다. 섬 전체가 호텔이어서 리조트 전용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 호텔의 명물은 동굴 온천, 망귀동(忘帰洞)이다. 집에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동굴이다. 예전 이 지역의 영주가 이곳의 경치에 매료되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과연 몸을 뜨거운 탕 속에 두고 동굴로 파고드는 철썩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망망대해 태평양의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니 오감이 즐거워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온천 후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안에서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150미터가 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니 섬의 정상 전망대로 가는 산책길이 나온다. 일본과는 과거사와 독도가 분쟁의 주요 원인이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형님에게 물었다. 

 “일본 사람들은 독도문제에 대해서 ‘국제재판소에 가서 해결하면 될 터인데 한국은 왜 국제재판소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나? 뭔가 약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외교관들은 어떻게 대응하나요?” 


 형님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독도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해 주고, 마지막에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독도는 명백히 우리 땅인데 왜 그걸 재판에 가서 따지겠니? 누가 내 아내를 두고 ‘너의 마누라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고 재판정에서 내 아내가 맞는지 따지겠니?”

  형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떠있는 주변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항구는 방파제로 잘 둘러 쌓여 있어 태평양에서 올라오는 거친 태풍에도 배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게끔 되어있다. 

 일본이나 우리는 싫다고 이사를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좋든 싫든 이웃으로 살아야 한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과거사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대감을 조장하여 지지율을 올리려는 발상은 퇴행적이다. 


 한일 두 나라는 경제적인 측면이나 안보적인 측면에서 서로의 협력이 점점 중요하다. 그래서 투 트랙으로, 과거사는 과거사 문제대로 처리해가면서 한일 간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신숙주는 일본을 방문하여 해동제국기를 쓴 뒤, 선견지명을 가지고 죽기 전에 당시의 임금인 성종에게 일본과의 화평 관계를 깨트리지 말도록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로 가까운 이웃은 멀리 사는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함께 번성하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일본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형님과 더 가까워지고 정을 더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2018년 11월) 




*아빠와 아들, 남편과 아내, 아들과 부모, 아들의 군대, 자녀의 결혼, 여행과 영화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위 글과 비슷한 감성 에세이는 브런치 북 ( https://brunch.co.kr/brunchbook/yubok2 ), 브런치 매거진  ( https://brunch.co.kr/magazine/hwan )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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