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찰 검열관을 책상 앞에 마주하고 글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1929년 가을, 취성좌에 입단하지 4년이 되었고, 내 나이 23세였다.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가 근대화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조선의 궁궐에서 개최한 박람회였다. 9월부터 10월 말까지 약 50일간이었다. 총독부는 대대적으로 박람회를 선전하여, 전국 각지의 명망가나 재력가들이 박람회 구경을 위해 경성에 몰려들었다.
취성좌는 단장과 단성사 박승필 사장의 친분 덕으로 박람회 기간 약 2개월간 단성사와 독점계약을 맺어 장기 공연에 들어갔다. 경성 인구가 이 기간 중 두 배로 늘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경성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중에 경성에서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이 꿈인 사람도 많았다. 극단은 이들 관객으로 매일 만원이었다.
박람회 기간이 끝나고 극단의 공연 수익을 배분할 때 문제가 생겼다. 단원들은 연일 객석을 가득 메운 성공적인 공연에 걸맞게 보수를 제대로 달라고 요구했다. 단장은 이익의 대부분을 극장 임대료로 주어야 하고 나머지는 빚을 갚는데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의 누적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빌린 돈의 이자 부담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공연시장의 불황으로 생활고에 시달려 온 단원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빚을 갚는 대신 수익을 나누어 가지면 취성좌는 곧 파산할 거라는 단장의 설득에도 단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가 어려웠다. 수익 분배 문제로 단원들이 단장에게 보내왔던 절대적인 존경심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단장에게 반기를 들었고, 단장은 그런 단원들을 질책했다.
“극단은 회사와 같은 곳이 아니야. 연극인은 돈이 아니라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
가정을 가진 단원들은 단장의 말에 절망하였다. 강상구는 단장의 말에 불복하고 취성좌를 떠났다. 몇 명의 단원들도 따라 나갔다.
단장은 남은 단원들을 불러 모아 분위기를 다잡았다.
“알다시피 지금 취성좌는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우리는 극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듯이.”
단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울한 마음으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만큼 이번 위기가 커 보였다. 침묵을 깨고 단장이 결의를 다지듯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은 올라야 해! 우리 무대에서 공연이 멈춰서는 안 돼.”
막간극은 점차 연극보다 인기가 높아졌다. 관객들도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나는 연극보다 막간극 보는 재미로 극장에 온 것이야.”
신문에 내보내는 광고도 막간극 내용을 연극보다 부각되게 소개하였다. 막간극의 진행과 노래 부르는 가수배우를 먼저 소개하고 남녀 주연배우가 소개되었다.
취성좌 가을 연극 ‘약혼한 처녀’
막간극 진행에 신난다, 독창에 이경화
주연배우: 김경환, 이경화, 이애리수
이경화와 함께 주연배우에 당당히 소개된 이애리수는 개성이 고향이라, 나와 전수린에게는 여동생 같았다. 12살에 소녀 배우로 취성좌에 들어왔으니, 전수린과 같은 해이고 나보다는 2년이나 입단이 빠른 셈이었다.
연극의 성수기인 연말이 다가오는데 취성좌는 연말 무대에 올릴 작품을 정하지 못했다. 단장은 나를 불렀다.
“연말에 관객들을 불러 모으려면 관객들이 본 적이 없는 창작극이어야 할 텐데, 신난다가 준비할 수 있을까? 예전에 검열 때문에 엎어진 그 희곡 말이야......”
“동방의 밝은 빛, 말씀입니까?”
동방의 밝은 빛은 내게는 잊어버려지지 않는 아픈 희곡이었다.
“그래, 그 희곡. 검열에 걸린 부분을 제외하고, 잘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면 호소력도 있고, 괜찮을 것 같기도 해.”
단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답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을 단장에게 말했다.
“동방의 밝은 빛은 전반부 내용이 불온하다고 여러 군데 검열에서 지적받았으니, 아예 전반부를 들어내고 후반부를 살리면서 새로운 희곡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열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나는 오랜만에 희곡 노트를 꺼내었다. 내가 쓴 희곡을 연극무대에 올리는 것은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지 못하고 늘 마음뿐이었다. 우선, 연극 제목을 ‘동방이 밝아온다’로 정했다. ‘동방의 밝은 빛’에 쓴 연극의 메시지는 남겨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람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계몽운동을 펼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에 역점을 두고 써내러 갔다. 항일 정서를 한 층 밑에 숨겨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조심하면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힘이 없게 되고, 조금 과감하게 표현하면 검열의 대상이 될 것이었다. 두드러진 내용은 알아서 들어내기도 하고, 자극적인 문구는 썼다가 지웠다 하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책상 앞에 일본 경찰 검열관을 마주하고 글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동방이 밝아온다’ 희곡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는데 극단에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경화마저 강상구를 따라 극단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강상구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의 주연 제의를 이번에는 받아들였다고 했다. 단원들은 강상구가 떠났을 때 보다 훨씬 충격을 받았다.
“이경화와 강상구가 역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맞네.”
“연극배우 자존심 운운하던 놈이 활동사진에 환장을 해서 이경화까지 데려가?”
혀를 차며 아쉬워하는 단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극단에서 짐을 싸러 온 이경화를 만났다. 나는 서운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말까지 더듬거려졌다.
“어, 어떻게, 연극을 버리고, 떠, 떠날 수가 있어요?”
이경화는 그윽이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무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에요. 활동사진으로 인기를 얻어 다시 연극무대에 서면 돼요. 흥행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이경화는 싸늘하리만치 똑 부러지게 대답하고 떠났다. 나는 이경화가 떠나는 순간에 그동안 한 번도 내 마음을 그녀에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이 캄캄했다. 이경화가 더 이상 취성좌에 없다는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동방이 밝아온다’를 완성시킬지도 아득했다. ‘동방이 밝아온다’의 여주인공 박승희는 이경화였다. 똑 부러진 성격은 실제의 이경화를 생각하며 묘사했다. 예전에 단장이 여주인공 역할을 맡겼을 때 이경화가 단장을 원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성격 하고는 딴판인데, 무조건 맡으라니.”
그래서 박승희를 이경화와 똑 닮게 만들고 싶었다. 일상에서의 버릇조차도 이경화의 버릇이었다. 모든 게 틀어졌다. 이경화 없이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희곡 노트는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요즘 들어 단장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그동안 키워 왔던 극단의 간판 배우들이 항구에서 배가 떠나듯 등을 돌린 것이었다. 분노와 쓸쓸함이 얼굴에 보였으나 다짐하듯 말했다.
“힘내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야."
찰리 채플린의 말을 인용하며 마음을 다잡는 단장을 나는 마땅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단장이 나에게 결의를 촉구하듯 말했다.
“그래도 막은 올리고, 공연은 계속되어야 해! 알겠지?”
단장의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단장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경화는 갔지만 우리에게 이애리수가 있다.”
단장의 말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애리수는 요즘 연기가 물이 올랐어. 연기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것 같아.”
단장은 이경화를 지우려고 안간힘을 써는듯했다. 이경화가 없으니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여배우는 이애리수 밖에 없었다. 이애리수는 <약혼한 처녀>에서 이경화의 여동생 역할을 하였고 <카츄사>에서 카츄사 역을 이경화와 교대로 맡아 활약하기도 했다.
이애리수의 원래 이름은 이음전(李音全)이었다. 이애리수는 나를 따라다니며 졸랐다.
“전수린 오빠의 이름도 오라버니가 지어준 것이라면서요. 내 이름은 어감이 촌스러우니 세련되고 근사한 이름으로 바꿔주세요.”
나는 이음전이 미국 노래 ‘메기의 추억’을 즐겨 부르는 것을 보고, 미국 여자아이 이름인 앨리스의 한자식 표현인 애리수로 지어주었다. 그녀는 이애리수라는 이름을 받아 들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애리수는 이후 이름을 평생 바꾸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건 황성 옛터(荒城의 跡) 노래였다. 황성 옛터는 전수린이 고향인 개성에 내려갔을 때 고려의 옛 궁궐터를 둘러보면서 망해버린 나라의 슬픔을 곡으로 만든 것이었다. 전수린이 그 곡을 나에게 들려줄 때 조선 사람의 정서에 너무나 맞는 곡으로, 막간극에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를 부를 사람은 개성의 딸인 이애리수가 적격이라고 여겼다. 그녀의 노래실력은 보통이 넘고 가냘프고 구슬픈 목소리는 조선 정서를 발휘함에 가장 적합하였다.
단장과 이경화의 대역으로 이애리수가 제격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희곡 노트를 꺼내었다. ‘동방이 밝아온다’ 원고를 보니, 강상구에게 가버린 이경화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주인공 박승희를 가능한 이경화가 아닌 이애리수로 바꾸어 묘사하였다. 희곡은 초고가 거의 써진 단계라 힘을 내기로 했다.
드디어 ‘동방이 밝아온다’ 희곡을 완성했다. 원고를 받아 든 단장은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읽기 시작했다. 옆에서 반응을 살피며 서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옆에서 보고 있으면 신경이 쓰여. 가서 일 봐. 다 읽으면 부를 게.”
단장의 말에 머쓱해하며 물러나왔다. 단장의 호출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검열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떤 부분을 지웠다가 다시 배치했다 하기를 반복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단장이 불렀다.
“이거, 괜찮아. 몇 군데만 수정하면 되겠어.”
단장의 반응이 좋아 안심이 되었다.
“박승희가 농촌에서 벌이는 계몽운동을 일본인 군수가 방해한다는 설정과 주재소의 일본 순사가 꼬투리를 잡아 박승희를 구속했다는 이야기는 빼는 게 좋겠어.”
나도 그 부분을 지웠다가 넣었다가 하였다.
“이걸 넣으면, 검열 경찰이 모든 내용에 돋보기를 들이댈 거야.”
단장은 원고를 넘기며 마지막 부분을 지적하며 말했다.
“‘우리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 이 부분.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쥐어야 한다.’ 이 표현은 지우는 게 낫겠어. 이 구절 때문에 마지막 부분 전체를 통째로 들어낼 수가 있어.”
“주인공이 이 구절을 외치고 막을 내리는 건데, 이것을 지우면 연극 전체의 메시지가 약해져요.”
단장은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알아, 하지만 안 돼! 검열에 걸려 몽땅 들어내고 연극이 공연 전날에 취소되는 것을 또 보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해!”
아쉽지만 지우기로 했다. 단장이 ‘공연 전날에 취소’라는 말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단장은 주인공 정국 역할을 내가 맡으라고 했다.
“희곡을 만든 사람이 누구보다도 주인공을 잘 이해할 거야.”
<떠나가는 배>에 이어 이번 연극의 주연도 욕심이 났었다. 실상 이경화를 여주인공으로 상정하고 희곡을 썼을 때, 당연히 남자 주인공은 나였다.
취성좌에서 드디어 나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그 연극의 주연도 내가 맡게 되었다. 하지만 연극 ‘동방이 밝아온다’를 연말 무대에 올리는 것은 순탄하지가 않았다. 그 해 겨울, 극단 취성좌의 상황은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