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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Jul 23. 2022

고2 아들이 보낸 편지

이제 혼자서 설 때가 거의 되었어요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반갑게 맞으며 오늘 좋은 일이 있다고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게 했나 보네.”

학교 덕택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형편과 생각을 글로 살필 수 있어서 반가웠다.


어른들은 겪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이 세상 힘든 시기 아닌가.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큰 아이가 보낸 편지를 펼쳤다.





어머니, 아버지께


요즘 들어 봄이 더 짧아지고 벌써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는듯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요즘 더위가 견디시기 힘든 것은 아닌지요. 벌써 모기들이 물기 시작하는데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아버지, 늘 지혜로운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옳고 바른말로 지도해주시는 아버지가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집에 올 때 항상 밝은 모습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그 모습 보면 힘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아빠의 모습이 이상적 아빠의 모습과 상당히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들어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니, 제가 학원에서 늦게 들어오고, 아빠보다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뵙지 못해서 그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출장을 자주 안 가시니 그나마 낫네요.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시고 보살펴주세요.  


이제 제가 혼자서 설 때가 거의 되었어요. 

그다음에는 아빠가 말씀하시던 세계 골프 여행도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어머니, 요즘 잘 지내시지요.

예전보다 어머니 얼굴을 더 뵐 수 있어서 좋네요. 어머니가 방금 지어주신 밥도 먹고, 요새 엔도르핀이 잘 도는 것 같아요. 책 쓰시는 것 잘 되기 바라고, 애들 영어 가르치는 것도 잘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늘 즐겁고 유쾌하십니다. ‘You are the most pleasant person I've ever met.'라는 말 기억해주시고 앞으로도 늘 밝고 편안한 모습 보여주세요. 


이제 시험기간이 다가오니,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고, 노는 것도 덜 놀아야겠죠. 시험기간이 되더라도 공부하는 핑계로 부모님께 소홀히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늘 건강히 지내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05년 6월 22일 

장남 올림





아들이 세계 골프 여행을 들먹이는 것은 요즘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중년의 아들이 죽음을 앞둔 아빠를 모시고 세계 명문 골프장을 순례하는 책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져서, 아들에게 책 읽은 소감을 이야기한 결과다. 

언젠가 아들하고 골프장 순례를 다니는 그런 날들을 꿈 꾸어 본다. 


즐거운 상상을 했다가 '혼자서 설 때가 다 되었다'라고 말한 구절에 다시 눈이 갔다. 

“혼자서 설 때가 다되었다고 말하다니, 이제 다 컸네......”






(일러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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