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를 조작한 민수를 장(杖) 백 대를 때리고 제주의 관노로 내쳤다
19살의 젊은 임금 예종은 원숙강에게 물었다.
"너는 임금의 허물에 관한 기록은 남기고 재상의 허물은 삭제하였으니,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냐?”
"대신을 거스르면 그 화(禍)가 빠르게 미치기 때문에, 신이 삭제하였습니다.”
임금이 분노하며 말하였다.
"너는 대신에게는 아부하고,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신이 어찌 그리 하겠습니까?”
"너는 선왕의 허물을 적은 것은 남기고, 대신의 허물만을 지웠다. 네가 재상에게는 아부하고 나를 어린 임금이라고 얕보고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원숙강은 임금의 꾸짖는 말에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임금은 의금부에 지시하여 원숙강을 ‘임금보다 대신들을 더 무서워했다’는 죄목으로 참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원숙강의 할아버지 원호(元昊)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살아서 절개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다. 원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으나 단종이 수양 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영월로 쫓겨 가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원호는 손자가 벼슬길에 올라 사화(史禍)로 참형을 당하자 손자의 글과 자신이 쓴 책을 꺼내어 모두 소각하였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학문을 닦더라도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침)은 탐하지 말라고 유언으로 남겼다.
예종은 의금부에 지시하여 사초를 민수에게 내어준 강치성을 법에 따라 참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처음 사초를 빼내어달라고 청탁을 받았던 이인석은 사실을 알면서 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곤장 1백대를 때린 후, 고향에서 군역을 치르게 하였다.
왕은 민수를 불쌍히 여겨 참형은 면하게 해 주었다.
"과인이 세자 시절부터 민수를 봐서, 그의 사람됨을 잘 안다. 민수는 장(杖) 1백 대를 때려서 제주의 관노에 배속시켜라.” (예종실록, 예종 1년 4월 27일)
조선 최대의 사초 조작 사건을 역사에서는 ‘민수의 옥(獄)’이라 부른다. 대신들이 대개 실록 편찬을 책임지는 고위직인 실록청 당상이므로 이들이 자신의 글을 보고 필화를 입을까 두려워 사초의 내용을 고치다가 일어난 사건이었다. 사관으로서 역사가 내리는 평가보다 인사권을 가진 대신들의 평가를 더 중하게 여겨 생긴 비극이었다.
사(史)라는 글자는 만들 때부터 손(手)으로써 중심(中)을 잡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사관이 사실대로 쓰지 않고 가필이나 곡필을 하면 어찌 역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실록은 사관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관은 지위는 낮지만 만세의 공론(公論)을 쥐고 있으니, 위세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사사롭게 아부해서도 안 된다. 크게는 사관은 임금의 득실과 작게는 대신의 선악을 붓을 잡고 기록하니, 위엄 있고 당당하되 무례해서는 안 된다. 사관은 진실로 정승들의 부하가 아니다.” (중종실록, 중종 11년 8월 1일)
사관은 춘추필법으로 준엄하게 직필을 해야 한다. 사관은 오로지 역사와 후세 사람들의 평가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관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쓴 것을 지우거나 아예 쓰지도 않는다면, 임금이나 대신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날에는 날씨 외에 사관이 기록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날에 있어서도 다시 읽고 새길만한 실록의 기록이다.
"새 도끼 자루는 헌 도끼 자루를 보아 법으로 삼고, 뒷 수레는 앞 수레를 거울삼아 경계한다고 하니, 대개 이미 지나간 흥망(興亡)의 자취는 실로 앞으로 오는 미래에 권고하고 경계함이 됩니다.” (문종실록, 재위 1년 8월 25일)
“사관은 지위는 낮지만 만세의 공론(公論)을 쥐고 있으니, 위세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사사롭게 아부해서도 안 된다. 사관은 임금의 득실과 작게는 대신의 선악을 붓을 잡고 기록하니, 위엄 있고 당당해야 한다.” (중종실록, 재위 11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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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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